8. 죽도록 사랑을 하고 싶은 걸까? 미치도록 미워하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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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은행나무
저번 주까지만 해도 파릇파릇하던 초록색의 무성한 잎들이 조금씩 물들기 시작했다. 거리 곳곳에는 은행나무의 일 년 염원이 담긴 열매들이 초라하고 무성하게 길바닥에 떨어져 있다. 은행나무는 알까? 본인의 결실이 길거리에 널려, 사람들은 코를 찡그리면서 밟지 않으려 요리조리 피하 다닌다는 걸. 마치 내 이력서 같다는 생각도 잠깐 한다. 불쌍한 은행나무. 그런데 난 은행나무의 많고 작은 결실들이 좋다. 냄새가 지독하다고 하지만, 난 그 시큼하고 쌉싸름한 냄새를 맡으면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 5~6살쯤 무렵, 엄마와 함께 주공아파트 단지에서 은행나무 열매인 은행을 열심히 주었다. 작은 손에 한가득 줍고 엄마에게 달려가 내가 주은 작은 은행들을 아주 대단한 일을 한 사람처럼 의기양양해 보여줬다. 그럼 엄마는 함박웃음을 지었고 우리는 그렇게 한동안 별것 아닌 은행들을 웃으면서 주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면 엄마는 은행을 프라이팬에 볶아줬다. 작고 뜨거운 은행을 입에 넣으면 시큼하고 뜨겁고 쌉싸름했다. 엄마와 텔레비전을 보면서 뜨거운 은행을 먹었다. 엄마와 은행 줍는 게 좋았던 건지, 아니면 정말 은행이 내 입맛에 맞았던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엄마한테 내일도 또 은행을 주으러 가자며 활짝 웃었다. 엄마도 내 미소를 보고 같이 빙그레 웃었었다.
그래서 난 은행나무가 그리고 냄새나는 은행이 좋다. 만유인력처럼 이건 어쩔 수 없는 거다.
2. 죽도록 사랑을 하고 싶은 걸까? 미치도록 미워하고 싶은 걸까?
나도 사람이지만, 사람들을 참 모르겠다. 사실 나도 날 잘 모르긴 하다. 사람은 정말 이상하다. 어쩔 때는 이름도 없는 물건에 이름을 명명하고 마치 혼이라도 깃든 양 사랑과 애정을 준다. 사람의 애정 대상은 생명 유무와 무관하다. 동물, 식물, 애착 인형, 잠옷, 애완 돌, 아이돌, 배우, 영화인물, 해리포터, 애니메이션. 이런 걸 보면 사람은 무엇인가를 죽도록 사랑하도록 그냥 그렇게 설계된 생명 같다. 이 사랑을 어떤 대상에 주지 않으면 곧 삶의 생기를 잃고 죽어버리는 그런 아름답고 안쓰러운 생명체. 그런데 또 미치도록 미워하고 싶어 할 대상을 찾는 거 같기도 하다. 어린아이, 외국인, 나와 다른 사람, 아이돌, 강아지, 고양이, 곤충, 회사 사람들. 생명이 없는 것에도 자의로 사랑과 애정을 주면서, 생명이 있는 것을 미치도록 미워하고 싶어 한다. 모르는 사람 비판하기, 헛소문 퍼트리기, 인신공격하기, 자신보다 작은 생명체 죽이기.
사람은 사랑이 하고 싶은 걸까? 미워하고 싶은 걸까?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걸까? 무관심하고 싶은 걸까? 나의 마음도, 사람의 마음도 종잡을 수가 없다.
3. 진실이라는 이름 아래에
진실과 거짓. 사실 관계. 내가 사실이며, 정의며, 신념이라 믿는 것들이 누군가에게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교 시절 들은 말이 생각난다.
"세상엔 사실이 없어. 네가 사실이라 믿고 싶은 것들만이 존재할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