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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imming Aug 05. 2024

나를 기르는 법 3_존재의 미상(未詳)

그냥 좀 살면 어때요?

“열심히는 누구나 해. 회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봐봐. 열심히 안 하는 사람이 있는지. 잘하는 게 중요한 거야”-김 00 이사 어록 중 발췌


이 세상은 나에게 자꾸 나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라 한다. 그럼 나는 나의 쓸모, 나의 가치를 증명해 내는데 모든 열과 성을 다 쏟아낸다. 그 후에는 알 수 없는 깊은 우울과 번아웃이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밥도 먹지 않고 현실에서 도망가듯 잠만 잔 며칠이 지나가면 몽롱해진 상태가 된다. 꿈인지, 현실인지, 지금 몇 시인지, 내일은 무슨 요일인지 따위에 대한 감각이 둔해진다. 그럼 누워서 손톱을 본다. 손톱 사이의 거스라미를 발견하면, 거슬리는 부분을 손으로 뜯는다. 연약한 살 사이에서 피가 나고 쓰라리다. 그럼 ‘아 아픈걸 보니, 현실이구나’를 느끼며 삶의 버거움을 몸 깊숙이 맞이한다.


사람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그 욕망이 내가 원하는 것인지 아닌지 구별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나 역시도 그렇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 삶은 타인의 욕망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외고를 목표로 했고 대기업에 입사하고 싶었고 5급 사무관이 되고 싶었다. ‘왜?’라고 질문하면 그냥 그래야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믿었다. 무엇하나 이루어지지 않은 지금, 그럼 불행한가? 를 돌이켜보면 그렇진 않다.


하지만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을 번다는 건, 곧 나의 쓸모를 증명하는 일로 쉽게 귀결된다. 원든, 원치 안 든, 좋아하든, 싫어하든 받는 월급의 가치를, 우리는 증명해내야만 하는 것이다. 최저시급을 받는 인턴 때부터 그랬다. 나는 총 3번의 인턴을 거쳐 중소기업 정규직이 되었다.



회사 잔혹기는 회계법인 재무팀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하며 막이 올랐다. 25살의 나는, 8살 아이가 초등학교라는 새로운 단체에 발을 디디는 것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회사라는 곳에 들어갔다. 그래도 은연중에 나의 똑부러짐에 대한 스스로 믿음이 있었다. 조기졸업을 하고 3년 우등생인 ‘내’가 잘할 수 있다는 생각. 나의 오만한 생각 때문일까? 나의 모든 것이 마음에 안 들었던지, 수시로 팀의 대리에게 불려 가서 서서 혼이 났다. 나중에는 본인 자리에서 업무 하는 걸 시연해 보라고 했다. 나는 벌벌 떠는 손으로 엑셀을 가지고 업무 시연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장 짐 싸서 나와야 하는 회사지만, 기가 죽은 나는 모든 잘못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마음고생을 심하게 해 2주 만에 3킬로 넘게 체중이 줄었다. 밥을 안 먹어도 살아진다는 게 드라마나 영화, 소설적 묘사가 아님을 체감했다. 2018년은 기록적인 폭염이었는데, 나는 물만 먹어도 속이 안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대리의 기준은 인턴으로 회사 생활을 이제 시작한 내가 맞출 수 없는 것이었다. 운 좋게 내가 기준을 충족했다 한들 나는 헤라클레스처럼 또 다른 시험에 들게 될 것임을 이제는 안다. 그 당시 나는 그녀의 또 다른 트로피가 되어가고 있었다. 인턴을 무섭게 교육해서 사람 만들었다는 대회 따위의 상을 받을 수 있는 그 대리가 전시할 수 있는 또 다른 트로피. 그 후 나는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기절했고 그곳에서 벗어났다.


시간은 흘러도, 기억은 남는다. 한 세대가 지나지 않았지만, 강렬했던 첫 회사의 기억은 내 DNA에 새겨졌다. 그 후 나는 어느 회사에 가든, 내가 원든, 원치 안 든, 좋아하든, 싫어하든 나를 증명하려고 부단히 애썼다. 완벽해야 했고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고, 수많은 밤 잠을 못 이루었다. 남보다 잘하는 걸 보이기 위해 경쟁해야 했고 성과를 만들어야 했다. 이렇게 모든 것을 소진한 후, 그 후 돌아오는 인정과 칭찬은 너무 보잘것없고 내게 중요치 않은 것들이었다. 이 모든 것에서 떠나고 싶은 나는, 세상 비극을 맞이한 동화 속 공주처럼 깊은 잠에 빠져버린다.


28년 타인의 삶을 살아 놓고, 남들이 세운 기준을 맞추기 위해 다시 자기 착취적 삶을 3년 살았다. 이렇게, 살다 보니, 나는 그냥 살고 싶었다. 누군가들이 세워 둔 기준과 욕망에서 벗어나 숨 쉬고 싶었다.

물 밖에 나온 금붕어처럼 나는 어떻게든 살고 싶어서 아가미와 몸을 처절하게 움직였다. 잘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나를 생각하든 상관없었다. 타인이 스스로 만들어내 생각하는 ‘나’라는 사람. 그건 그들의 상상 속에만 가둬진 허상의 나니까.  



나는 이제 그냥 산다. 누군가에게 나를 증명해 보이지 않는다. 가끔 오타도 내고 모자라보이고 상사에게 불려 가 쓴소리도 듣는다. 하지만 내 대단치 않은 삶, 누군가는 나를 싫어하고 인정치 않는 내 삶이 좋다.

우주에서 스스로 빛을 내다가 사라지는, 수많은 이름 없는 별처럼 그렇게,

얼굴이 새 빨게 지도록 발레를 하고, 동료들과 시답지 않은 이야기에 웃음을 짓고, 뜨개질을 망쳐서 실을 내팽개쳐두고,  출퇴근길 졸면서 책을 읽고 맛집에 가서 호들갑을 떨며 사진을 찍는다. 나는 이렇게 존재의 이유 없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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