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만소 Feb 26. 2023

[10] 황혼 다방

001.

 손목에 감긴 아날로그 시계가 묘시를 가리켰다. 나는 청량리역 플랫폼에 앉아 첫차를 기다렸다. 집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이대로 자려다 이곳은 왕래가 잦은 곳이었기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도파 백화점 건물 뒤로 두 블록 정도 들어가면 한쪽이 공사 중인 골목이 나온다. 그 골목 낡은 이 층 건물에 ‘황혼 다방’이라는 곳이 있다. 나는 힘겹게 소파를 끄는 것처럼 추위를 밖으로 밀어내며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이 다방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건 입구에 설치된, 오래된 입간판뿐이었지만 손님은 꽤 많았다. 대부분 다 아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묵례 후 늘 앉는 창가 구석에서 두 번째 자리에 눕듯 몸을 기댔다. 곧 사장이 왔다. 그녀는 치와와같이 생긴 노인이었다. 벌써 사십 년을 넘게 알고 지낸 사이다.

“커피? 와인?” 그녀가 물었다. 나는 잠시 커피를 마시는 상상을 하다가 위액이 역류하는 느낌을 받곤 와인이라고 대답했다. 코트 안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세 장을 건넸다.

 그녀가 고개로 옆을 가리켰다. 나는 눈만 그쪽으로 향해 와인 한 잔의 가격이 사천 원이 되었다는 문구를 확인했다. 좀 비싼 거 같다고 투덜대며 안 주머니에서 천 원 한 장을 더 꺼내려는데, 오천 원권밖에 없었다. 나는 잠시 계산해보고 와인 두 잔으로 주문을 바꿨다.

“혼자 와서 술 두 잔 따라 놓으면 재수 없으니까 다 드시면 한 잔 더 가져다드릴게요.” 그녀가 내 손에서 오천 원을 낚아채며 말했다. 나는 손님에게 못 하는 말이 없다며 농을 던졌다.

“세상에, 제가 여기에서 장사한 지 사십 년이에요. 언제까지 애 취급하실 거예요.”

그녀가 살짝 토라진 어투로 말했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나는 농담이라며 그녀를 달랬고 그녀는 짓궂다는 말을 남기고 카운터로 향했다. 나는 코트를 정갈하게 개어 놓고 건너편 자리에 올려 두었다. 방금 전보다 더욱 편하게 자세를 고쳤다. 간만에 푹 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새로운 종업원이 와요. 드디어 저도 갈 때가 됐나 봐요. 다른 차사님들은 다들 고생했다고 덕담도 해주시고 그러던데?”

새로운 종업원이 온다는 것은 그녀가 죽을 날이 다가왔다는 것을 뜻했다. 본인이 죽는다는 얘기를 웃으며 할 수 있는 사람은 간만이었다. 나는 무언가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다시 제대로 생각나면 그때 해주겠다며 대답을 피했다. 잠시 후, 그녀가 내 테이블에 와인을 올려놓았다. 나는 와인의 진동에 잠시 눈이 흔들리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저, 선배님.” 나를 깨운 건 까마득히 어린 후배였다. 나는 눈만 간신히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뜻이었다.

“가게 사장님이 방금 가셨답니다.”

“오늘 종업원이 새로 온다며. 이렇게 금방 가도 되는 거야?” 나는 집 앞 골목에서, 함께 주전부리에 반주를 하던 노인이 죽었을 때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후배가 내 물음에 알 길이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여기 사장이 타주던 커피가 참 맛있었는데.” 

차라리 커피로 주문할 걸 그랬다. 한 번도 입에 대지 않은 와인을 몽땅 털어 넣었다. 테이블 반대쪽에는 어느새 와인 한 잔이 더 놓여있었다. 그것을 본 나는 후배에게 그녀의 담당이 누구냐고 물어보았다. 나름대로 관계가 나쁘지 않은 차사였다. 

“이따가 저승 갈 일 있지. 그를 만나거든, 내가 얘기했다고 하고 그녀 앞으로 금괴 하나 내려줘.”

“그렇지 않아도, 사자에게 봉사한 인간은 저승에서 좋은 대우를 받는데요?”

“그냥 그렇게 해줘.” 나는 짜증을 섞어서 말했다. 그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고개를 잔뜩 꺾어 인사하곤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내버려 둬, 쟤가 정이 많아서 그래, 정이.”

동료 사자가 내 흉을 보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욕인지 칭찬인지 모를 그의 말에 실소했다. 다시 눈을 감고 한참을 그녀에 대해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다. 더 이상 잠자리가 편하지 않다고 느꼈다.

002.

 쨍그랑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정신보다 몸이 먼저 깨어나 주변을 살펴보았다. 앳되어 보이는 여자 하나가 너무 놀라 굳은 표정으로 내 앞에 서 있었다.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 정신을 붙잡고 다시 그 여자를 보았다. 사장은 아니었다. ‘참, 새로운 종업원이 온다고 했지.’ 나는 상황을 확인해 보았다. 내 건너편에 놓여 있던 와인을 깬 듯했다. 코트에 와인이 묻었는지 확인해보았다. 그건 아닌 듯했다.

“괜찮아요.” 나는 놀라서 거의 울먹이는 여자를 달래듯 말했다.

“안 드시는 것 같길래, 치워 드리려고…”

 나는 다시 괜찮다고 말했다. 그제야 안심이 된 지 그녀는 거의 직각으로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다. 기껏해야 열여덟, 열아홉 정도 되어 보이는데 벌써 저승사자와 함께 일을 해야 하다니. 신도 참 짓궂다고 생각했다. 이미 다른 손님들은 일하러 간 듯, 대부분 자리가 비어 있었다. 나도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어졌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오세요!” 다방의 문을 열고 나가려던 때에 뒤에서 인사가 들렸다. 저승사자에게 또 와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은 저 어린 여자가 처음일 것이다. 

 며칠 안 되어서 나는 황혼 다방에 다시 찾았다. 때마침 신설동에 볼 일이 있었고, 시간이 많이 늦었고, 또 오라는 소녀의 말이 뱀처럼 내 몸 어딘가를 꼬았기 때문이다. 배가 부르지 않은데도 고기의 마지막 한 점을 먹지 않은 기분이었다. 

 다방의 문을 열자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이 시간에 그러기도 쉽지 않은데 다른 의미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또 오셨네요!”

 바쁜 주인이 기르는 개는 몇 시간이고 하염없이 문 앞에서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말이 떠올랐다. 내가 가게에 들어서자 곧바로 카운터에서 일어나는 그녀의 모습 때문이었다. 늘 같은, 구석에서 두 번째 창가 자리에 앉자 그녀가 메뉴판을 들고 왔다. 이 가게에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녀는 화사하고 의욕 있는 표정, 마치 다른 꽃보다 일찍 피워버린 개나리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메뉴판을 읽지도 않고 커피를 달라고 했다.

“어, 어떤 커피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차사님?”

 그녀가 당황해하며 물었다. 나는 그제야 메뉴판으로 눈을 돌렸다. 요즘 새로 생긴다는 신식 다방에서 팔 것 같은 메뉴들이 가득하였다. 심지어 ‘블랙커피’ 같은 이름도 아니었다. ‘다른 저승사자들이 안 올만 하지.’라는 생각을 하며 맨 위의 것을 가리켰다. 모를 때는 제일 위에 있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싸기도 했고. 잠시 후, 그녀가 가지고 온 것은 그녀의 고사리 같은 손보다 작은 컵에 담긴 커피 원액이었다. 나는 거의 마시지도 못하고 누워 잠을 청했다. 불편함에 뒤척거리다 일어나자마자 가게에서 나왔다.

“어, 또 오세요!” 또다시 저주 같은 주문을 듣고 말았다. ‘황혼 카페’. 들어갈 때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어느새 가게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나는 입간판을 살짝 발로 차고 집으로 향했다. 

“제 이름은 소정이에요. 사장이 아니라요.” 그러나 나는 거의 날마다 그 가게에 갔다. 그녀는 내가 편해졌는지 가끔 말동무해주곤 했다. 

“저승사자가 이름을 부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하는 말이야?”

“세 번 부르면 영혼을 데려가는 그거요? 그거 진짜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살면서 저승사자라는 게 실제로 있는지도 몰랐는데요. 여기서 일하게 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몰랐다고요. 원래 제가 죽을 운명이었대요. 죽어야 하는데, 안 죽어서 이런 곳에서 일하는 거래요. 혹시 다른 곳에도 저 같은 사람이 있나요?”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에 전 사장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들은 제2의 삶을 부여받았으면서도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한 존재들이었다. 마치 우리 저승사자처럼.

“전 사장님은 어땠어요? 예쁘셨나요? 제가 얼굴도 못 뵈어서 들은 게 없거든요.” 

“사장과는 반대되는 사람이었지.”

 사실 지금 사장은 전 사장과 빼다 닮았다. 젊었을 때의 전 사장을 생각했다. 많은 저승사자 앞에서도 주눅이 들지 않고 꿋꿋이 일하던 사람이었다. 발랄했다고 해야 할까. 눈을 짓밟고 다니는 치와와 같은 사람이었다. 그녀의 행동에 우리는 휴식을 얻었다. 그 점에서는 건너편에 앉아 연신 수다를 떠는 이 여자와는 다른 사람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최근에는 손님들이 오셔요. 지금은 아무도 안 계시지만. 혹시 차사님이 소문 내주신 거 아니에요? 저희 가게 일등 단골이시잖아요.”

 어차피 저승사자들이란 떠돌이 같은 존재여서 결국 자신이 익숙한 곳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이 사장도 머리가 굵어지면 그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네가 노력한 덕이지.” 나는 쓸데없는 말을 생략하고 대답해주었다. 그러자 그녀가 눈물을 터트렸다. 나는 거의 10년 만에 당황했다. ‘당신은 사망하였소.’라는 말 의외의 말로 사람을 울린 것은 처음이었다.

“저, 노력했어요. 처음에 차사님도 안 오시고, 점점 다른 분들도 안 오고 메뉴도 바꿔보고 가게 이름도 바꿔 보았는데 결국 아무도 안 오시더라고요. 저승사자들의 쉼터를 맡아주겠냐는 말을 들었을 때는 재밌을 거라 생각했는데. 저 있잖아요. 죽을 운명이었대요. 근데 왜 살아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 싶었어요. 근데 알아주는 사람, 사람? 차사님이 한 분이라도 계시니 정말 행복해요.”

 중간에 나를 먹이는 듯한 단어가 섞여 있었지만, 꾹 참았다.

“퇴근하면 주로 뭐하지?” 상냥하게 위로해 줄 자신이 없어서 말을 돌렸다.

“주로 메뉴를 구상하죠? 집 근처 새로 생기는 카페도 가보고 소품도 구경해요. 꽃도 사요. 학생 때는 다음 날 먹을 밥을 구하는 것만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기타 교습도 받아요. 어, 혹시 데이트 신청인가요?”

 설마, 하고 내가 대답했다. 한껏 밝아진 목소리에 안심하곤 지갑에서 오천 원권 하나를 꺼냈다. 와인을 달라는 뜻과 동시에 이제 잠을 자겠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언제 울었냐는 듯 발랄하게 일어나 와인을 가지러 갔다. 흑연 냄새가 조금 나는 ‘피노 누아’ 한 잔이 나왔다. 테이블 중앙에 놓여있던 화분에 어느새 꽃이 핀 것을 보았다.

003.

 나는 일이 끝나면 가게에 갔다. 요즘은 다른 손님도 많고 가게의 장식도 화사하게 변했다. 전 사장의 경우 우리의 나이를 생각해서 최대한 단출하고 옛날 스타일로 가게를 운영했다. 그러나 이번 사장은 꽤 다채로웠다. 일주일에 한 번은 가게에 새로운 장식이 생겼다. 우리가 전혀 관심 없을 법한 식물들을 줄줄이 키우지 않나, 메뉴도 어린 인간들이나 좋아할 것 같은 것만 어디선가 배워 와 추가하곤 했다. 나는 그게 썩 나쁘지 않았다. 저승사자에게 생기라니. 참 웃기는 인간이었다.

“저는 가족이 없었어요.”

“우리 모두 가족이 없어.” 내가 새로 나온 ‘카페 라테’라는 메뉴를 마셔보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래서 지금도 이 일을 하기 전과 별로 다를 게 없는 것 같아요. 늘 같은 생각을 하며 잠을 자고, 같은 생각을 하며 일어나죠.”

“무슨 생각을 하는데?”

“그냥 이런저런 생각이요. 차사님들에게는 특히 말할 수 없는 생각이요. 참, 그거 맛있어요? 신작인데.”

 그 나이대의 고민이라면 사랑일까. 나는 한 모금 더 들이켜며 생각했다. 달짝지근한 게 씁쓸하기도 했다.

“맛있어.”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녀는 안심한 듯 가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어제는 청과물 도매시장에 다녀왔어요. 자주 다니는 꽃집이 거기 있거든요. 저 꽃도 거기서 사 온 거예요. 꽃 이름이요?”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찔레꽃이라는 꽃이에요. 길거리에서 많이 보이는데 왜 돈 주고 사냐고요? 그냥 예뻐서 샀어요. 차사님 같은 분들은 절대 몰라요. 필요해서 사는 게 아니라 사고 싶어져서 사는 거니까요.”

 그녀가 꽃을 손가락 끝으로 한 번 건드렸다. 표정이 어딘가 슬퍼 보였다. 

“이 꽃, 6월이면 시든대요. 좋겠다. 더위 안 타도 되니까. 올해 여름은 그렇게 덥대요. 차사님도 더위 조심하세요. 맨날 그렇게 검정 옷만 입고 다니지 마시고.”

 이건 어디까지나 근무복 비슷한 거라며 나도 다른 색의 옷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다 안다는 듯 믿지 않았다.

 정말, 올해 여름은 더웠다. 덕분에 나는 일이 바빠졌다. 한동안 카페에 갈 겨를도 없을 정도로. 전에는 인시가 지나면 일이 끝났으나 요즘은 낮에도 자주 불려 갔다. 다방이었을 때는 짬을 내서 휴식을 취했겠지만, 지금은 사장과 떠드느라 통 잠을 자지 못했기에 가게에는 일부러 들르지 않았다. 

“비구름을 몰고 올 태풍만이 희망입니다.” 저녁 뉴스 앵커의 말에 우습게도 나는 거기에 동의했다. 8월 말이 되어서야 날이 한풀 꺾였고 나도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 덕에 간만에 청량리역에 갔다. 거리에는 한 한국 레게 가수의 엘범 테이프 속 노래가 재생되고 있었다. 나는 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도파 백화점 뒤로 두 블록 들어가면 나오는 골목에 있는 가게였다. ‘황혼 카페’라고 쓰여 있는 입간판만이 이곳이 카페인 것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입간판의 불이 꺼져 있었다. 아무래도 또 깜빡하고 안 켜 놓은 것 같았다.

 2층 가게로 올라가자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너무 일찍 왔나 싶어 밖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리는데, 한 노인이 지나가며 나를 힐끗 보더니 무언가 중얼거렸다.

“거기 가게 처녀 죽었수. 자살이라나, 쯧쯧.”



------------------------------------------------------------------------------------------------

 상실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상실을 겪는 이야기.





작가의 이전글 [9] 남자는 처음 업힌 사람의 등을 보고 자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