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성공과 실패한 매매 패턴이 반복되었다. 첫 번째 매수 타점은 내가 원하는 패턴이 나왔고 거래량, 주가의 움직임이 원활했고 결과 역시 예상대로 나왔다. 그리고 매도 후 하락움직임을 보이면서 매도 시점 역시 나쁘지 않았던 듯하다. 그러나 그다음 내 기준에 맞는 종목이 들어오지 않아 다시 처음 매매했던 종목으로 돌아왔다. 이 '일지차트'를 보면서 새삼 놀란 것이 재진입 시점이 이렇게 빨랐나 하는 것이었다. 다음 기다림이 너무 지루해서 결국 독이 되는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의 지루함이 이 정도 시간 안에서 나오는 감정이었다니.
'내가 정한 기준 안에서 이루어진 매매'는 만약 결과가 좋지 않았더라도 손절 기준이 있었고 그것을 그대로 지켰다면 잘한 것으로 평가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매매는 내가 정한 원칙을 다듬거나 보강하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후의 반복되는 나의 행동패턴. 기다림이 지루해졌고, 기대감과 불안함이 어우러져 결국 원칙도 기준도 없이 '에라, 모르겠다' 하며 두 번째 매수를 감행했다. 결과는 역시나 좋지 않았다.
나는 오늘 남편과 집안일을 하는 것을 두고 대화했다. 내가 정말 하고자 하는 말은 남편이 깨끗하고 정돈된 집을 원한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고 그런 그의 헌신을 인정하고 내가 기꺼이 그 일을 함께 하겠다는 것이었다.(내가 집안일을 얼마나 엉망으로 하고 있는지 제발 상상하지 않기를) 그러나 역시 남편과의 대화는 내가 생각한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름 마음을 열고 시작한 대화에서 남편이 하는 말에 하나씩 반응이 올라왔다. 나에게 쉬운 길은 '당신이 나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잖아.' '나도 할 말이 있다고.'였지만 나에게는 남편의 말을 듣는 것이, 말하자면 내가 정한 원칙이었다고 할까? 그랬을 때 결국 우리는 서로가 원하는 관계로 나아갈 것이며, 우리 집의 환경 또한 그렇게 변화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말을 끝까지 듣고 잘 알겠다고 했지만 내가 정말 잘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행동하는 자가 얻는다는 말은 진실이지만, 여기엔 전제가 있다. 진짜 원하는 것을 향한 행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엉뚱한 방향으로 행동을 반복하면 결국 그 달콤함은 독으로 변해 나를 괴롭힌다. 기다림은 지루하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진정 원하는 것을 위한 기다림이라면, 그것은 인내라는 이름으로 내 삶을 단단하게 만든다. 기준을 지키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바로 그것이 나 자신과의 약속이며, 나 자신을 향한 믿음이기 때문이다. 매매든 삶이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그것을 위해 흔들리지 않고 기다리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삶과 주식이 내게 공통적으로 가르쳐 준 깊은 지혜였다.
맨날 이렇게 반성하고 깨달음만 얻고 도대체 결과는 언제 나오나요? 누군가 그렇게 생각할까 하는 염려가 살짝 올라오지만 이런 염려를 하는 것조차 나에게 힘이 되는 일을 하겠다는 나의 기준에는 맞지 않기에.
그저 이렇게 중얼거려 본다.
"좀 지켜봐 주시지요. 이러다 보면 뭐라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사실 깜짝 놀라실지 모르지만 지금 이대로도 훌륭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