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고요함을 발견하며
나는 때때로 고요함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내향적인 사람은 아니다.
어릴 적 차를 타고 이동할 때면, 동생은 가운데에서 재잘재잘 떠들었고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는 아이였다.
그런 나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활발했다.
체육도 잘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렸으며, 누구보다 밝게 뛰어놀았다.
이런 모습을 보면 성향과 고요함은 꼭 비례하지 않는 듯하다.
고요함을 못 견디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그 조용한 순간들이 참 좋다.
처음 고요함을 깊이 느껴보고 싶어 졌을 때,
잡념을 덜고 나에게 집중하기 위해 『고요함의 지혜』라는 책을 추천받았다.
책은 어렵기도 하고 쉽기도 해서, 읽는 동안 여러 번 멈추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결국 필사를 하면서 내 감정을 조금씩 덧붙이기로 했다.
필사를 하며 느꼈던 건 단순했다.
누구나 생각은 할 수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
고요함을 받아들이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중에서도 한 구절이 내 안에 깊게 머물렀다.
“존재의 심연에 있는 나의 자아는 고요함으로부터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이름이나 형상보다 훨씬 더 깊은 차원에 존재하는 나의 실체이다.”
이 문장을 옮겨 쓰며,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물었다.
‘나의 자아가 성숙해지는 과정은 고요함을 한 단계씩 깨닫는 여정일까?
고요함 속에 있는 나의 실체는 어떤 모습일까?
나에게 집중하며, 심호흡을 하며,
이 고요함을 천천히 즐겨보자. 나만의 고요함의 지혜를 찾아보자.’
그 이후로, 나는 고요함이 말을 걸어올 때면 조용히 귀 기울이기로 했다.
교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했을 때도 그랬다.
처음에는 불안함이 밀려왔다.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는 건 언제나 두려움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고요함 속에서 나에게 집중한 끝에
나는 더 이상 맞지 않는 길은 걷지 않기로 마음먹을 수 있었다.
아마도 3년 전 『고요함의 지혜』를 필사하며 얻은
그 조용한 다정함 덕분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길을 걷는다는 건 여전히 쉽지 않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고요함에 묻고,
그 다정한 속삭임에 응답하며 나의 길을 가고 있다.
고요함이 살며시 말을 건네올 때,
나는 조용히 귀 기울이며
내 안의 지혜를 조금씩 발견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