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빛
뮤뮤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몽환적인 박 씨'를 집어 든 순간이었다. 화단 뒤편의 어둠 속에서 스르륵, 스르륵... 마치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듯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차가운 시선이 박 씨를 든 뮤뮤에게 고정되는 것을 느꼈다. 월영 여신의 충고가 머릿속을 스쳤다.
'뮤뮤, 네 여정은 언제나 평화롭지만은 않을 거야. 너희가 찾고 있는 7가지 물건의 힘을 노리는 어둠 속 도깨비들이 이 세상에도 존재한단다. 그들은 너희를 방해하고, 포털의 힘을 악용하려 할 거야. 항상 경계하고, 몽몽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렴. 그들의 시선은 너희가 가장 약해진 순간을 노릴 테니.'
월영의 경고가 현실이 된 듯, 뮤뮤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둠 속에서 차가운 기운이 점점 더 강해졌다. 몽몽이도 뮤뮤의 어깨에서 살짝 떨리는 듯했다.
"몽몽아, 뭔가 이상해... 여기 누가 있는 것 같아."
뮤뮤가 몽환적인 박 씨를 꼭 쥐자, 박 씨는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빛은 평소와 달리 불안하게 깜빡였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굵고 거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크크크... 찾았구나. 탐스러운 박 씨로군!"
스르륵, 스르륵. 검은 연기가 꿈틀거리며 모여들더니, 마침내 거대한 형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뿔처럼 솟아난 두 개의 혹, 불처럼 이글거리는 눈, 갈고리처럼 구부러진 손가락, 그리고 낡은 도포 자락 같은 검은 그림자를 휘감은 존재. 바로 도깨비였다. 하나가 아니었다.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여러 도깨비들이 뒤이어 모습을 드러내며 뮤뮤와 몽몽이를 에워쌌다. 그들의 시선은 오직 뮤뮤의 손에 들린 박 씨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어린 요정이 귀한 걸 들고 다니는구나. 그걸 우리에게 주면 편할 텐데, 크크크."
도깨비들은 히죽거리며 뮤뮤에게 한 발짝 다가섰다. 한 도깨비는 기다란 팔을 뻗어 뮤뮤의 눈앞에서 박 씨를 낚아채려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두려움 속에서도 뮤뮤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붓을 들어 올렸다. 화연에서 조상들이 만들어주었던 그 붓이, 지금 이 어둠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왠지 모를 강한 이끌림이 있었다. 뮤뮤는 떨리는 손으로 붓끝을 어둠 속으로 뻗었다.
그 순간, 붓끝에서 부드러운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어둠을 가르고, 도깨비들의 일렁이는 모습을 비추기 시작했다. 도깨비들은 붓의 빛에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들의 욕심 가득한 눈빛은 여전했지만, 빛 앞에서 잠시 주춤했다.
"몽몽아, 쟤들이 박 씨를 뺏으려고 해!"
뮤뮤는 박 씨를 더욱 꼭 쥐었다. 붓의 빛이 강해지자, 도깨비들은 다시 한번 히죽거리며 뮤뮤를 압박해 왔다. 이번에는 더욱 교묘한 움직임으로 뮤뮤의 시선을 분산시키려 했다. 그들의 손이 뮤뮤에게 닿으려 할 때, 몽몽이가 뮤뮤의 어깨에서 날아올라 박 씨를 향해 작은 코를 갖다 댔다. 박 씨에서 은은한 온기가 몽몽이에게 흘러들어 갔다.
"뮤뮤! 박 씨에 훈민정음 글자들이 빛나고 있어! '숨겨진 재능의 시작, 마음의 빛으로 피어나리라!'라고 쓰여 있어!"
몽몽이의 또렷한 목소리가 어둠 속에 울려 퍼졌다. 뮤뮤는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숨겨진 재능'. 붓이 가진 힘, 그리고 자신과 몽몽이가 화연에서 온 이유를 다시금 떠올렸다.
뮤뮤는 박 씨를 든 손에 붓을 가져갔다. 붓끝이 박 씨 표면의 몽환적인 문양을 스치자, 박 씨에서 더욱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붓을 타고 뮤뮤의 심장으로 흘러들어왔다.
"으읍...!"
뮤뮤의 몸에서 따뜻하면서도 강력한 에너지가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 에너지는 뮤뮤의 붓을 통해 흘러나왔고, 뮤뮤는 자신도 모르게 붓을 휘둘러 허공에 커다란 박꽃 문양을 그렸다.
박꽃 문양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빛에 도깨비들은 비명을 지르며 흔들렸다. 그들은 빛 앞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마치 아침 햇살을 받은 안개처럼 스르륵 사라져 버렸다.
숨 막히는 싸움이 끝났다. 뮤뮤는 떨리는 숨을 고르며 박 씨와 붓을 내려다보았다. 붓은 여전히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고, 박 씨는 더욱 영롱하게 반짝였다. 몽몽이는 뮤뮤의 볼을 비비며 말했다.
"뮤뮤, 해냈어! 첫 번째 물건의 힘을 찾은 거야!"
뮤뮤는 박 씨를 품에 안았다. 첫 번째 단서를 찾았다는 기쁨과, 욕심 많은 도깨비들의 존재에 대한 경계심이 동시에 밀려왔다. 이제 뮤뮤의 여정은 단순한 모험이 아니었다. 7가지 물건을 찾는 길은, 어쩌면 이 도깨비들과의 싸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