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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Mar 20. 2023

리스본에서 만난 따뜻한 사람들

사람들의 친절에 여행이 더 즐거웠다. 

  포르투에서 다시 리스본으로 돌아온 날, 지난번에 묵었던 곳이 아닌 새로운 숙소를 찾느라 지하철 역에서 내리자마자 한참을 헤맸다. 에스컬레이터도 없어서 무거운 슈트케이스를 들고 낑낑 대고 있는데, 어느 노신사가 다가왔다. 지하철 계단에서 선뜻 내 무거운 가방을 같이 들어주고, 구글 맵을 켜고 헤매는 나에게 숙소 이름을 묻더니 자신의 핸드폰으로 검색해서 숙소 방향을 알려주었다. 감사의 표시로 포장해 온 한국 과자를 드렸는데, 메모지를 꺼내 자신의 핸드폰 번호와 연락처까지 적어 주며, 혹시 도움이 필요하거나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고까지 했다. 


  노신사가 떠나고, 슈트케이스를 끌고 울퉁불퉁한 돌길을 힘겹게 이동하며 그가 일러 준 방향으로 갔으나 숙소는 보이지 않았다. 헤매고 있는 나에게 이번엔 어떤 청년이 다가와서 숙소 찾는 것을 도와주었다. 하지만, 구글맵에서 안내하는 곳으로 가도 숙소가 보이지 않아 같은 장소를 여러 번 왔다 갔다 했다. 청년은 근처에 있는 기념품 가게 직원에게 내가 묵을 숙소 이름을 말하면서 어디인지 길을 물었다. 


  "저 사람 아는 사람이에요?"


너무나 놀랍게도 기념품 가게 직원은 청년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나에게 다가와 한국말로 말했다. 


  "아니, 어떻게 한국말을 할 줄 알아요?"

  "나, 한국에서 4년 동안 살다 왔어요."

  "정말요? 한국말 정말 잘하시네요."

  "모르는 사람에게 가방 맡기면 위험해요. 가방 들어주다가 가지고 가는 사람도 있으니 조심해야 해요."


  가게 직원은 청년을 심하게 경계하며, 그의 손에 들린 내 슈트케이스 빼앗아 들고, 한 손에는 구글맵을 켜고 앞장서서 숙소를 찾아 나섰다. 얼떨결에 나는 그를 따라나섰고, 처음에 도와준 청년도 어정쩡하게 뒤따랐다. 숙소는 그 가게의 바로 뒤편, 아까 지나 온 길에 있었는데 간판이 눈에 띄지 않아 놓쳤던 것이었다. 가게 직원은 청년을 계속 경계하며 가도 된다고 했고, 나는 청년에게 고마웠다고 급하게 인사를 하고 한국말을 하는 가게 직원을 따라갔다. 그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숙소의 3층 입구까지 힘겹게 내 짐을 들어주고 돌아갔다. 내 입장에서는 그 역시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인데,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염려하며 낯선 청년을 조심하라고 한 상황이 고맙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한참을 웃었다.  



  리스본을 떠나는 날. 숙소 근처에서 지하철로 공항으로 이동했다. 공항까지 가려면 한 번 환승을 해야 했다. 환승 표지판이 안 보여서 지나가는 3명의 남녀학생에게 길을 물었더니 그들도 나와 같은 레드 라인으로 환승한다고 하며 친절하게 방향을 알려주었다. 환승역에도 에스컬레이터가 없고, 엘리베이터는 고장이 나서 무거운 슈트케이스를 들고 계단을 힘겹게 오르려는데, 그중 한 남학생이 가뿐하게 내 짐을 들어주었다. 덕분에 무사히 환승하여 리스본 공항역에 도착했다.


  이번엔 어느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 두리번거리다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나가는 쪽으로 쫓아갔다. 사람들 속에 섞여 걷다가 우연히 내 왼편에서 걷는 젊은 남자와 순간적으로 눈빛이 마주쳤다. 그는 검정 백팩을 메고, 목에 사원증 같은 것을 걸고 있었다. 별다른 짐도 없는 그가 나를 앞서서 걷더니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마치 나에게 이 엘리베이터를 타면 된다고 알려주는 듯했다. 공항 출국장이 몇 층인지 몰라서 그에게 물으니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같이 내리면서 짐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내가 괜찮다고 하니 내 옆에서 호위하듯 걸으면서 턱이 있거나 해서 슈트케이스를 들어야 할 때에만 조심스럽게 다가와 도와주었다. 혹시라도 내가 부담스러워하거나 불편해할까 봐 나를 배려하면서도 나를 도와주려는 그의 친절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걷다가 슬며시 옆을 보니 어느새 그가 공항 직원 조끼를 걸쳐 입은 모습이었다. 그는 리스본 공항 직원이었다. 


  "어느 항공 비행기인가요?"

  "터키 항공이요."


  그는 근처에 있는 다른 직원에게 터키 항공 카운터 위치를 물었고, 나를 호위하면서 한 걸음 옆에서 걸었다. 다부진 체격에 따뜻한 눈빛을 지닌 그가 꼭 나의 든든한 보디가드 같았다. 그의 핸드폰으로 그를 찾는 듯한 전화가 왔다. 일하러 가야 하는 시간이 지난 듯해서 바쁘실 텐데 가셔도 된다고 해도, 그는 터키 항공 카운터 앞까지 나를 바래다주고 따뜻한 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여행을 하면서 곤란하거나 당황스러운 순간마다 여러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 수많은 예배당을 들를 때마다 안전을 지켜주시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신 것 같다. 하나님께서 필요한 순간마다 천사를 보내주셔서 안전하고 편안한 여행을 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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