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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난생처음 쿠키를 구울 때처럼

우당탕탕 베이킹 입문 후기

by 임경미


쿠키를 굽기로 했다. 몸이 뻐근해서 외출하고 싶지는 않고, 마침 안개가 자욱한데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던 날, 그날따라 유난히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초코 쿠키가 생각났다.


인터넷을 뒤져 따라 하기 가장 쉬워 보이는 레시피를 찾았다. 바닐라 익스트랙인지 원당인지 하는 어려운 이름의 재료는 필요 없이 소박한 재료로도 만들 수 있다는 레시피라 더 마음에 들었다.


나는 베이킹의 ‘베’ 자도 모르는 사람이었고, 쿠키 역시 처음 만들어 보는 초행자였으니, 난도가 낮다는 쿠키임에도 국밥처럼 보기 좋게 말아먹을 확률이 높다는 자기 객관화 후 이런저런 재료와 도구들은 패스하고 일단 가볍게 시작해보기로 했다.


베이킹 유튜버를 따라 계량하고 반죽하고 잠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굽기까지 대략 1시간 정도가 걸렸다. 처음이라 기대 반 걱정 반이었던 마음을 어수선한 동작으로 옮기며 쿠키를 겨우 구웠다. 위 판 5개, 아래 판 3개. 총 8개의 쿠키가 구워지는 동안 집안은 진한 초콜릿 향으로 가득 차고, 점점 부풀어 오르는 쿠키를 보며 대략 성공했다는 감이 왔다.

땡-


11분이 지나고 드디어 오븐 밖으로 나온 쿠키는 잘 익어 먹음직스러운 향을 뽐내고 있었다. 드디어 시식.

음, 제법 괜찮은데? 다른 것도 해볼 만하겠는데? 오케이, 다음엔 스콘이다!

물론 완성작이라고 접시에 옮겨 담은 쿠키는 어딘가 허술했다. 다른 사람들이 올려놓은 사진 속 쿠키처럼 동글동글한 모양이 아니었고, 먹음직스럽게 표면이 쩍쩍 갈라진 바삭바삭한 쿠키도 아니었으며, 손으로 잡아도 형체를 유지하는 단단한 쿠키는 더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뭐 어떤가. 처음치고 이 정도면 꽤 괜찮은 결과물이었고, 무엇보다 맛은, 남편이 즐겨 먹는 모 회사의 초코 쿠키 정도는 아니어도, 그래도 먹을 만하다.

입안 가득 퍼지는 다크 초콜릿의 맛을 음미하며 한 입, 시원하게 타 놓은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한 입. 그렇게 초코 쿠키는 어느덧 바닥을 드러냈다. 음, 만족스러운 커피 타임이었어!



생각해보면 결과물에 이렇게 관대했던 적이 언제였을까.

스스로 완벽주의자라고 규정한 이후론 그 정의에 걸맞게 살았고, 그 덕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좋은 결과물을 얻으려 노력했던 시간이 태반이었다.


쿠키 반죽을 동영상 속 반죽과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쿠키 모양을 동영상 속 모양과 똑같게 만들기 위해, 혹은 더 맛있거나 그럴싸하게 만들기 위해 반죽을 갈아엎고, 한번 쓰고 나면 다시 찾지 않을 재료며 도구를 사고. 그렇게 부담 가득 쿠키를 만든 후에는 쿠키가 왜 안 달지, 모양은 왜 이 모양이지 하며 마음에 안 든다고 서운해하고 있을 나였다.


하지만 최선이 최고가 아닐 수 있음을 받아들이며 사는 요즘엔 쿠키가 좀 덜 달아도 괜찮고, 모양이 제멋대로여도 괜찮았다. 어딘가 부족해도 이즈음에서 만족할 줄 알게 되었다는 건 나로선 꽤 괜찮은 변화이고, 이런 요즘이 참 다행이다.


그러나 시인하자면, 그럼에도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조금 더 좋은 것을 추구하는 나를 마주할 때가 있다. 최선이든 최고든, 마음이 느슨해질 수 있는 영역과 느슨해질 수 없는 영역이 있었고, 백번 양보해도 마음이 느슨해질 수 없는 영역에선 여전히 최선을 고집하고 최고를 바라는 내가 존재했다. 그래서 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이런 생각은 자꾸 마음을 불안하게 만듦에도 나는 그런 영역에선 마음을 모두 내려놓지 못한 채 또다시 전전긍긍했다.

처음으로 쿠키를 굽던 날. 더 그럴싸하게 쿠키를 만들어준다는 재료도 과정도 도구도 없이 쿠키를 구울 수 있었던 건 한술 밥에 절대 배부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높게 잡지 않은 목표 덕분에 어설픈 성공이어도 성공이라고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고, 이 유쾌한 결과물 덕에 나는 다음엔 또 다른 도전을 해보리라는 다짐을 할 수도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 모르는 것 투성이를 조금씩 아는 것으로 만들고, 아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고, 할 수 있는 것을 잘하는 것으로 만드는 단계. 한 번의 경험을 두 번, 세 번, 네 번으로 늘리며 뭐든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고 괜찮아지는 거겠지.

부족함 없이 준비하지 않아도, 결과가 완벽하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조금씩 나아질 무언가를 위해 경험을 축적한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한 계단, 두 계단 오르며 더 나아진 모습으로 발전해 나가고 싶다.


자꾸 욕심이 생기고, 잘해야 할 것만 같을 때. 그럴 땐 난생처음 쿠키를 만들었던 날의 기억을 꺼내어 봐야지. 그리고 또다시 전전긍긍하고 있을 나에게 말해줘야지.


가끔은 난생처음 쿠키를 구울 때처럼 살아보는 거야.




[기억하려고 적는, 쿠키 만들기]


- 재료: 다크 초콜릿, 중력분, 달걀, 설탕, 버터, 소금, 베이킹 파우더, 토핑용 건크렌베리 및 초코칩

- 만드는 과정

1. 초콜릿과 버터, 소금을 전자렌지에 20초씩 3~4회 돌려 녹인 후 잘 섞는다.

2. 달걀에 분량의 설탕을 넣고 설탕이 다 녹지 않을 정도로 섞는다.

3. 중력분, 베이킹 파우더를 넣고 잘 섞은 뒤 체에 한번 걸러준다.

4. 1, 2번을 섞은 뒤 3번을 넣고 잘 섞어준다.

5. 반죽을 밀봉한 채로 냉장고에 10분 정도 넣어둔다.

6. 반죽을 뒤적거려준 뒤 적당한 크기로 떼어내 팬에 올린 뒤 토핑용 건크렌베리와 초코칩을 올린다.

7. 예열된 오븐에 넣고, 180도에서 11분 굽는다.


(얼렁뚱땅 레시피라 넣는 양은 적지 않았어요. 언젠가 제대로 된 중량을 알게 될 날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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