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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Jul 0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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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이후… 이사 이전… 그 어딘가

어제로 말도 안 되게 정신 없는 북토크를 마치고, 본격적인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생애 첫 나만의 이사, 나만의 계약을 통과하며 나만의 공간을 향해 간다. 언제나 혼자이기를 바랐지만 막상 혼자가 되려 하니 씁쓸하게 기쁘다. 새로운 집만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마음까지도 넘보고 있다.


지금 내가 미루지 않고 해야 할 일은 다름 아닌 읽기. 읽지 않는 사람으로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하는 일도 마땅히 할 수 없음을 안다. 그럼에도 미뤄왔던 읽기를 이제 다시 꺼내 든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읽기 시작한 수많은 책을 제외하고 진짜로) 패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이슬아의 “심신단련“.


전자는 에세이지만 소설과 비슷하다. 미술관 경비원으로서의 “지극한 일상”을 줄기로 흘러가지만, 꺼내지 않을 수 없는 “형의 죽음”과 현재와 가장 반대되는 삶이었던 ”뉴요커에서의 일“을 중간중간 끼워넣는다. 아프고 슬픈 기억을 모두 흡수한 채로, 엉망진창이지만 동시에 가장 정돈된 모습으로 미술관을 지키는 사람의 글을 읽고 있다. 너무 아플 땐 잠시 숨는 것도 도움이 된다. 숨어들어간 곳이 새집이 될지 어쨌든 모르니까.


후자는 작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사온 헤엄출판사의 책이다. 존경하는 이슬아 작가를 두 번째로 마주한 날이었다. 신기하게도 그를 처음 볼 때만큼 떨리지 않았다. 그에게 사인을 받는 인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책을 계산하고 신속히 나왔다. 적잖이 아는 웃음을 지으며 나는 당신의 책이면 충분하다고. 내가 아는 한, 앞으로도 그를 펼쳐볼 날들이 너무나 많이 남아 있었다.


왜 슬프고 아픈 사람들은 글을 쓸까. 삶이 너무도 기쁘고 충만해서 글을 쓴다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삶이 겨우 기쁨만으로 해석되고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속죄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 것만 같다. 엉망진창이고 조각난 삶이 그리하여 얼마나 아름다운지 각자의 언어로 통과시키는 글들을, 여전히 엉망진창인 마음으로 바라본다. 때로는 흘려보내고 때로는 주워올리며 나의 조각을 명명할 만한 새로운 언어를 취득한다. 읽으면서 나는 겨우 나를 조금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간다.


이사를 준비하면서 아주 작은 집에 꼭 들어가야만 하는, 정말정말 필요한 것들이 무엇일지 가늠해 본다. 공간적으로 나눠 본다면 내 방과 부엌과 화장실에서 필요한 것들을 들일 수 있겠다. 더 자세히 보면 내 방에서 자는 것과 입는 것과 읽는 것을 챙겨가야 한다. 일상을 완성하는 조각이 물건은 결코 아니지만 그래도 나를 나답게 하는 용품들을 곁에 두는 게 심신에 좋다. 장기 여행을 떠나는 마음으로 많은 것을 덜어냈다가 결국 많은 것을 매달고 돌아올 테지만.


메트로 폴리탄 책은 아직 절반도 채 읽지 못했다. 나의 유일한 동료인 대표님이 재미없다고 한 책이라 기대가 많이 떨어졌다. 물론 그와 내가 재미를 해석하는 방식은 우리 인생이 다른 것만큼이나 다르지만… 예술 중에서도 미술에 크게 흥미가 없는 나로서는 미술관 내부 이야기보다 외부의 이야기들에 마음을 빼앗긴다. 형을 애도하는 기억이나 뉴요커라는 대형 잡지사에 대한 나의 관심 같은 것들로.


미래를 향해 아주 느리지만 신중한 걸음으로 나아가려는 패트릭 브링리를 따라, 아주 조금의 미래를 계획해 본다. 이사 후에는 필라테스를 시작하겠다는 다짐, 이사 후에는 쌓인 글들을 편집하겠다는 야망 정도… 모쪼록 잘 살고 싶다는 마음만 그득하다. 내가 잘 살고 있지 못할 때도 나를 잘 살게 할 사람들, 내가 잘 살면서도 잘 살지 못한다고 말할 때 나를 깨워줄 사람들을 믿으면서.


내 미래가 결코 내게만 달려 있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토록 난장판인 삶에 또다른 엉망이 더해져 몇 겹이 쌓일 게 뻔한데도 삶은 지속되어야 하니까. 그것들을 글로 옮기는 동안 나는 아주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거라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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