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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파 Jul 09. 2022

영희와 우영우에서 발견한 나의 한계

어릴 때부터 드라마를 많이 봤다. 재밌게 본 드라마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기억나는 법인데, 유난히 다르게 기억하는 드라마가 있다.


내가 중학생 때쯤 본 드라마에선 조연 중 한 명이 교통사고로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으로 나오는 드라마가 있었다. 주연은 아니고 조연 중 한 명이었는데 그 당시 관련 기사가 유난히 기억 남았다. 왜 장애가 있는 인물은 사랑하는 주체나 대상이 될 수 없는가에 대한 기사였다.


오래전이라 상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장애가 있는 인물이 드라마의 메인이 될 수 없는 문제를 지적한 기사였다. 그때가 2005년이었다.     


2022년. 헐리우드에선 청각장애인 배우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타고, 우리나라에선 다운증후군 배우가 직접 다운증후군을 장애인 연기를 하는 드라마가 나왔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장애인이 주인공이다.    

 

대부분 다큐멘터리 속 극복과 감동의 소재로 소모되었던 장애인이 조금씩 다양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그런 변화를 보며 특히 나는 ‘우리들의 블루스’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장애가 있는 나조차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2013년에 방영된 ‘굿닥터’라는 드라마가 있다. 우영우처럼 자폐 스펙트럼과 서번트 증후군이 있는 주인공이 의사로 나오는 이야기다. 나는 당시에 드라마를 재밌게 보면서도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물음과 함께 사랑까지 이루어지는 부분이 너무 동화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신선하고 파격적이지만 아름답게만 포장한 드라마 같았다.


그런 내가 ‘우리들의 블루스’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고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장애가 있는 나조차도 편견이 있는 건 아닐까 하고.

특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다운증후군 배우가 나온 건 내게 충격이었다. 굳이 외형을 따라하고 장애를 연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충격이라고 해야 할까.     

다운증후군이 있는 배우와 함께 연기하고 촬영을 하면 소통이 어렵지 않을까 우려도 있고, 시간이 더 오래 걸리거나 불편한 부분이 많지 않을까 했다.


영희를 맡은 배우가 자신이 연기한다는 걸 이해할까, 그 상황을 잘 이해하고 연기를 하는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다. 내 우려와 궁금증이 부끄러울 만큼 배우는 자기 역할을 잘 소화했다. 메이킹이나 마지막 방송을 보면 출연자들과 소통하는 모습, 대사를 잊어버리면 옆에서 알려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막연히 다운증후군 장애가 있으니 연기를 하기 힘들거라는 편견이 있었다. 그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작가는 자신이 그려내고 싶은 인물과 잘 맞는 ‘영희’를 찾았고, 실제 그 배우가 갖고 있는 점을 반영하여 드라마에 녹여냈다. 이건 그 배우가 장애인이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드라마에서 실제 배우의 매력을 반영한 작품들을 많이 봐왔다. 그러니 ‘영희’의 경우가 새삼스러울 게 없지만 그동안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 새로운 충격이었다.   

  

그 충격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이어진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는 현실적으로 ‘말도 안돼’라는 말이 나오게 하는 설정이다. 우리는 영혼이 바뀌거나, 좀비가 나오거나 해리포터 같은 드라마 영화는 잘도 보면서 말이다.

     

이 드라마의 작가 전작은 영화 ‘증인’이다. 자폐가 있는 소녀가 법정의 증인으로 나오는 영화.

나는 아마 변호사가 되지 못하겠지만 증인은 될 수 있다던 소녀를 작가는 다음 작품에서 엄연한 변호사가 된 우영우로 만들었다.


‘이야기’ 자체가 성장하는 걸 보여주듯이 말이다. 장애의 한계를 넘어선 우영우처럼. 

   

나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다른 장애인을 잘 이해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장애가 있긴 때문에 오히려 장애에 대한 한계를 만들고 단정 지은 부분이 많았다.


장애가 있어도 배우를 할 수 있고, 장애가 있어도 변호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던 것처럼.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고,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창작자가 되고 싶다.

장애인으로서도 글을 쓰지만 재밌는 이야기를 쓰고 싶은 창작자가 되기 위해서 어떤 글을 쓸지 고민한다. 최근 두 드라마를 보고 나는 내 안의 이야기를 폭넓게 성장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영희와 우영우를 만날 가능성을 만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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