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파 Oct 05. 2022

낮은 시선으로

내가 휠체어를 타기 시작한 건 학교에 들어간 후 2학년, 3학년 사이였다.

그전까지 난 느린 아이였다. 체육시간에 운동장에 내려가려면 벽에 손잡이가 설치된 경사로를 이용해도 체육 시간의 반절이 지날 만큼 오래 걸렸다.

조금씩 걸을 수는 있으나 오래 걷거나 서 있지 못했다. 휠체어를 타기 전까지 부모님은 나를 안거나 업고 다녔고 그건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학교 버스를 타고 등교하면 고학력 오빠들이 나를 안고 교실까지 데려다줬고 견학을 가면 학교 선생님이 나를 안고 계단 있는 박물관을 올라 구경시켜줬다.

좋은 기억으로 남은 추억이지만 불편함은 외면할 수 없는 문제였다.

휠체어를 탄 후, 조금 더 내가 할 수 있는 게 많아졌고 조금 더 빨라졌다. 학교에선 리프트가 달린 버스를 운행하기 시작했고 휠체어를 탄 생활이 점점 익숙해졌다.

나는 학교 애들과 휠체어 달리기 시합도 하고, 괜히 휠체어 손잡이 부분에 걸터앉기도 했다. 학교 선생님들은 휠체어 테크닉이 좋은 아이들을 모아 행사에 참가하기도 했다. 나는 손의 힘이 약하고 장애가 있어 휠체어 앞바퀴를 드는 기술을 할 수 없었지만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는 걸 볼 수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는 전동휠체어를 탔다. 넓은 캠퍼스를 돌아다니기 위해서였다. 스틱으로 조정하며 누군가 밀어주지 않아도 혼자 움직일 수 있어 건물을 옮겨 다니며 수업을 들었다. 집에 갈 때는 학과실에 전동휠체어를 두고 수동휠체어로 갈아탔다.

회사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전동휠체어는 내가 밖에서 온전한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는 필수품이었다.


휠체어는 하나의 공간이었다. 휠체어 등받이 뒷부분에는 주머니가 있어 무언가를 넣을 수 있었고, 가방을 매달 수 있었다. 특수학교 친구들 중에는 납작한 나무판을 자체 제작해서 책상처럼 휠체어에 끼우고 다녔다.

각자 필요한 걸 갖춘 휠체어는 자신만의 작은 공간이 되었다.


그 공간이란 건 때론 사람들과의 거리감을 만들었다. 커다란 전동휠체어에 맞춘 장애인 전용책상은 유난히 강의실에서 눈에 띄었고 다른 책상들과 거리를 만들었다. 일부러 학교 측에서 제공해준 책상이지만 나는 그 책상이 참 싫었다.

공간이란 건 나와 사람들을 나누는 선이 되기도 했다. 나는 내 공간을 짊어진 채 사람들 사이를 다녔다. 사람들이 날 의식하던 의식하지 않던 나에게는 그 공간이 때로는 부담되었다.


수동휠체어를 타면 괜찮을까 싶지만 내가 느끼는 거리감은 크기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휠체어를 타면 시선이 낮아진다. 시선이 낮으면 사람들 사이에 거리가 발생한다는 걸 특수학교를 졸업하고서야 알았다. 특히 여럿이서 모여 이야기를 나눌 때 사람들은 서로 눈을 맞추며 말을 하지만 그들을 항상 올려다봐야 했다. 하지만 자연스레, 어떤 의도도 없이 시선이 맞지 않으면 말수는 줄어들고 그 틈에 끼어들지 못했다.


오래전 한 예능에서 배우 문소리님이 나와 영화 '오아시스'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장애가 있는 연기를 할 뿐인데도 배우는 휠체어에 앉으면 소외된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또 한 스탭은 휠체어에 탄 배우가 방해되자 다른 사람에게 치우라는 말을 했다고. 스스로 일어나서 비킬 수 있는데도 말이다.


세상을 낮은 시선으로 본다는 건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어야 하고, 남들이 볼 수 없다는 걸 보는 게 되어버렸다. 때때로 고개를 들어 시선을 올려보지만 그 거리감은 언제나 나를 나만의 공간에 둔다.


나는 수동휠체어도, 전동휠체어도 좀 더 가볍고 작아지길 바란다. 그래야 어디든 더 가기 쉽고 섞이기 쉬우니까. 단지 겉모양뿐이지만 이미 그 겉모양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판가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심은 휠체어를 타든, 타지 않든 내 낮은 시선이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로 섞이길 바란다.



이전 14화 카페 입구를 자세히 본 적 있나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