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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파 Sep 16. 2022

장애인이 봉사를 할 수 있을까?

고등학교 국어 시간, 선생님은 봉사에 관해 말씀하셨다. 내가 그때 알고 있는 봉사란 ‘나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는 일’이었다. 선생님은 우리가 어떤 봉사를 할 수 있는지 질문하셨다. 난 ‘봉사’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우리가 어떻게 봉사를 해요? 봉사를 받으면 모를까.”


어릴 적 장애가 있는 나의 생각이었다. 남의 도움이 항상 필요한 나를 포함한 우리가 과연 누구를 위한 봉사를 한단 말일까.


어느 날 부모님이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춘기를 잘 넘어가 줘서 고맙다고. 부모님의 걱정이 누구나 겪는 10대의 예민하고 혼란스러움인지 아니면 어린 나이에 겪어야 할 내 장애에 대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부모님 말씀처럼 나는 별다른 사춘기를 겪지 않았다. 내 장애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데도 별다른 혼란이나 어려움은 없었다. 내 장애에 대해 별다른 인식을 하지 않고 학창시절을 잘 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특수학교에 다닌 영향이 컸을 것이다.


내가 나온 학교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닐 수 있었던 학교로 장애인들을 위한 학교다. 휠체어를 탄 학생들도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리프트가 달린 학교 버스와 경사로가 갖춰져 있고 지적장애인과 몸이 불편한 지체장애인이 나누어져 그에 알맞은 교육과정을 배운다. 나는 그곳에서 일반 학생들이 배우는 것과 같은 교육과정을 거치며 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특수교육을 전공한 선생님들께 가르침을 받았다. 학교 밖은 어떨지 몰라도 학교 안에서 나는 환경이 조금 다를 뿐 또래 학생들처럼 학창시절을 보냈다.


학교에서 나는 주로 받는 사람의 입장이었다. 부모님의 손길, 선생님, 친구들의 도움까지. 휠체어를 밀어준다거나 내가 하지 못하는 섬세한 것들의 필요를 공급받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것에 익숙해졌다. 단지 물리적인 ‘도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관심.


자연스럽게 학창시절에 나는 관심의 대상이었다. 내가 공부를 뛰어나게 잘한 것은 아니었으나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성실한 학생에 속하긴 했다. 적은 학생들 사이에서 말 잘 듣고, 선생님들을 잘 따르는 편이었던 나는 그만큼 관심과 애정을 받곤 했다. 그 덕분에 어린 나이에도 내 장애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지 않고 밝은 내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 자연스러운 관심과 도움 속에서 나는 자랐다.


그래서 나에게 봉사란 더 생소했는지도 모른다. 다른 학교들처럼 봉사 점수를 따는 것도 없었고 장애인 관련 행사에는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 봉사자들이 참여하곤 했으니. 나는 봉사란 것을 받는 처지에서만 살고 있었다. 더욱이 봉사란 자신을 희생하여 누군가를 돕는 것, 어떤 이익을 바라지 않고 나보다 더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선한 일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꽤 영향을 받았다. 장애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육체적인 고달픔도 컸기에 어린 나에게 선생님들의 모습은 희생적인 부분이 컸다. 휠체어를 밀어주어야 하고 세밀한 움직임이 힘들기에 여러모로 도움을 받는 내가 누군가를 돕는다거나 봉사를 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라 여겼으니 선생님의 질문에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의 대답을 한 것이다. 그때 나의 대답을 듣고 선생님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미간을 찌푸리던 그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익숙했던 도움과 자연스런 관심.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비로소 나는 12년간의 학창시절을 종지부 찍고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깨닫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대학이라는 장소와 배경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낯선 사람들과의 공간. 나를 모르고, 내가 속한 장애인이라는 집단을 모르는 아주 일상적인 공간에서의 사람들 때문에 처음으로 관심에 대하여, 내가 받은 것들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대학 생활은 많은 것을 혼자 해야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도움을 받아왔던 지난날들과 달리 나는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이 생기면 누군가에게 ‘요청’을 해야 했다. '


'문을 열어주세요’

‘이것 좀 주워주세요.’


한 두 마디부터 친구에게, 교수님께 등등 나는 무엇이 필요하고 내가 하지 못하는 것들에 관해 설명하고 도움을 청해야 했다. 그 말 한마디가 뭐 그리 어렵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제 막 익숙한 틀 안에서 나온 나는 난처하고 쑥스럽고 미안한 감정들을 동시에 지니곤 했다.


관심도 마찬가지였다. 관심이란 자연스럽게 생기지만 그것을 이어나가려면 노력이 필요했다. 받기만 한다고 이어지는 것이 아닌 상호작용. 나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그 상호작용을 그때야 익혀나갔다. 처음엔 너무나 어려웠다. 내가 관심을 표현했을 때의 상대방은 괜찮을까, 부담스럽지 않을까라며 걱정되었다. 남에게 피해라도 줄까 하는 생각에 소심해지고 한없이 낮고, 낮아졌다. 당연했던 모든 것들이 당연하지 않았다.


받는 입장에서 감정적인 소외감과 거리감을 느끼고 미안해하면서 스스로 할 수 없다는 것이 나를 연약하게 만들었다. 사회적 약자라는 말이 비로소 다양한 사람들과 섞이면서 실감이 났다. 앞으로도 그러할까. 내가 스스로 당당해지지 못한다면 난 받는 자로서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서 살아가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것은 내가 익숙해져야 할 감정의 절차일까 하고.


그 고민 속에서 어떤 방법을 찾고 싶었지만 소외감에서 벗어나고 거리감을 좁히는 데에 뚜렷한 해결책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먹는 나이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습득한 것들을 바탕으로 알게 된 것들이 있었다.


그것은 차이다. 내가 10대를 보냈던 학창시절에 만난 사람들과 대학에 가면서 만난 사람들의 차이. 내가 다닌 특수학교는 장애인과 장애인에 관한 관심으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였기에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특수학교 선생님들은 당연히 기본적인 장애인에 관한 관심이 있었으며 공부하고 시험을 치르고 들어온 선생님들이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선생님 아니면 나 같은 장애인 친구, 오빠, 언니 동생들이었다.


그러나 조금만 밖으로 나가면 장애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보다 없는 사람이 많았으며 장애인에 대해 생소한 사람들도 많았다. 전에는 내가 일방적으로 많은 배려를 받고 관심을 받았다면 이제는 내가 나를 잘 모르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배려하고 나를 알려주는 차례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노력이 필요했고 용기가 필요했다. 내 장애와 상관없이 내가 원하는 것, 필요로 한 것을 얻기 위한 노력,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을 전하려는 용기,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 모두 일방적인 것이 아닌 양쪽에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그 아주 간단하고 기본적인 것을 나는 그제야 느끼고 배워갔다. 내가 여태 받은 것들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고 각각의 사람들의 노력이, 용기가 필요했다는 것도 말이다.


그것을 몰랐던 어린 날의 나는 국어 선생님의 질문에 받는 것에만 익숙한 사람으로서 대답했다. 아주 좁은 곳에서 나는 내가 가진 장애를 약점으로 내세워 너무 당연하게 받고 유난스러운 관심으로 여긴 것이다. 왜 난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하는지, 왜 난 먼저 다가가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조차 못 해본 채.


아마도 국어 선생님이 내 대답에 미간을 찌푸렸던 이유는 그저 나는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한 내 편협된 시각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선생님은 내가 특정한 봉사를 하길 원했기보단 내가 있는 위치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움직임을 원했을 것이라 뒤늦게 뜻을 짐작해본다.


내가 가만히 있다면 아무리 많은 것이 바뀌어도 감정적인 거리감은 좁혀질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느리고 둔한 움직임이라도 조금씩 다가가고 용기 내 거리를 좁혀야 한다. 눈에 띄게 보이지 않는다 하여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장애인이 약자가 아닌 위치에서 살아가려면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한다. 사회적인 제도부터 시작하여 사람들의 인식까지 커다란 것들이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나 역시 바뀌어야 한다. 요구하는 목소리만이 아닌 다른 사람과의 어울림을 통하여, 나를 알리고 타인을 아는 움직임. 그럼 분명 나도, 나와 같은 사람도 누군가를 위한 작은 손길을 내밀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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