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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파 Dec 06. 2021

첫 퇴사의 기억

첫 직장 3년 3개월.

빵집 홈페이지 관리 몇 개월.

해외직구 쇼핑 관련 약 1년.

모니터링 업무 7년.


이게 내가 여태 해온 일들이다.     

회사를 그만두는 건 취업만큼이나 내게 쉽지 않았다.


특히 첫 직장이 그랬다.


장애인인 내가, 지방에 사는 내가, 시설이 갖춰진 회사에 들어간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특히 공백없이 졸업 한 학기를 앞두고 취업했으니 걱정도 길지 않았다.


장애인 채용이 따로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교육을 듣고 면접을 본 후, 비장애인들과 함께 일했다.

참 감사했다. 내가 다닐 수 있는 회사가 있다는 것이. 취업을 빨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

내가 돈을 번다는 사실이.


매일 엄마의 도움을 받아 출근하고, 전동휠체어를 타고 일을 하는 건 쉽지 않았지만 성실히,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요즘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점점 없어지듯이 나도 첫 직장이 평생직장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첫 1년은 정신없이 다녔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다음을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그쯤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의류 쇼핑몰도 몇 개월 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글이 쓰고 싶어서, 쇼핑몰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회사를 관두고 싶어서였다.

그냥 회사를 관둘 자신은 없었으니까.


그쯤 아는 동생과 밥을 먹기로 해 차를 타고 가며 그런 대화를 나눴다.

지금이 내가 제일 나은 때를 보내는 건 아닐까?

별다른 일도 없고, 회사도 다니고 있으니까. 별거 없지만 이게 나의 무탈한 전성기가 아닐까.

더 나아짐이나 오르막은 없을 거 같은 예감.

이게 지금 내가 오를 수 있는 정점이 아닌가 싶었다.


아는 동생이 어떤 대답을 했는진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나는 저런 생각을 많이 했다.

그만큼 회사를 그만둘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곳을 관두면 내가 또 취업할 수 있을까?

내가 이곳을 떠나도 쓸모가 있을까?

아무 일도 구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그런 불안이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재택근무도 그때는 희소한 상태였고 지방에선 장애인 채용 자체도 적었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쉽게 내지 못했다.

     

하지만 때라는 것은 항상 찾아온다.

자의든, 타의든.


권태기를 넘어 내가 내는 회사의 성과가 내 장애로 가려질 때.

내 장애가 회사에서 알게 모르고 차별을 받을 때.

내가 그 한계를 이겨내거나 버틸 힘이 없어졌을 시기쯤.


가까운 분이 내게 손을 내미셨다. 빵집을 하시는데 인터넷 쇼핑몰과 블로그 운영을 해보지 않겠냐며.     

월급은 회사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분이 내미신 손은 내게 용기가 되었다.     

내가 만들 수 없는 대책을 만들어주신 것이다.


그때 나는 월급의 액수보다 용기와 대안이 필요했으니까.     

그리고 그 용기를 바탕으로 한 퇴사는 내가 한 일 중, 잘한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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