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파 Nov 23. 2021

대학은 나에게 다 낫고 오라고 했다

며칠 전 수능이어서 대학 갈 때쯤이 생각났다.

지금은 대학입시가 어떤지, 수능이 어떤지 관심사가 멀어졌지만 나 역시 어떤 대학을 갈지 고민을 많이 하던 때가 있었다.


성적, 지역, 학과 등 대학을 고르는데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나한테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점이 하나 더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닐 수 있는 학교인가.


이건 시설을 갖추고 있냐는 문제였다.

기본적으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려면 엘리베이터, 경사로, 장애인 화장실이 있어야 한다.


그런 건 다 있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가 입학했던 2006년에는 당연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때 나는 내가 사는 지역과 서울, 수도권 근처에 있는 대학교를 알아봤다.


특히 가고 싶은 학과가 있던 서울의 한 학교로 견학을 갔던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과가 4층에 있지만 엘리베이터가 없는 걸 확인했다.

성적도 아니고 엘리베이터 때문에 갈 수 없다면 말이 될까?

싶지만 충분히 말이 될 수 있는 얘기다. 시설은 정말 나에게 중요한 부분이니 관과 할 수 없는 문제다.


내가 사는 지역에 두 대학도 살폈다. 집과 가까우니 가장 확률이 높은 곳이었다. 한 곳은 국립대고, 한 곳은 사립대. 당연히 등록금이 더 싼 국립대에 가면 좋겠지만 넓기도 넓고 계단이 정말 많기도 한 곳이었다.


그 국립대는 굳이 견학이 아니어도 콘서트나 뮤지컬을 하기에 자주 가봤다.

구석구석은 모르지만, 휠체어를 타고 다니기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학교에 문의했다. 그 학교 답변은 이랬다.


장애인 학생이 지원할 수는 있으나 학교 측에서 시설 관련으로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그 당시 장애인 시설이 부족했던 학교였고 그것을 학교도 인지하나 편의를 제공할 여지는 없다는 말로 들렸다. 나는 이 국립대를 지원하는 학교에서 지워야 했다.


반면 사립대는 장애인 시설 우수 대학으로 선정된 학교였다. 견학 당시에도 다니기에는 크게 문제없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나는 수시나 정시를 지원하기 위해 학교를 알아봤다.

그중 나를 가장 어이없게 한 건 서울의 모 학교였다.


이 학교는 정시나 수시 지원 전 장애인은 따로 먼저 거치는 절차가 있었다. 그 절차에 통과해야만 그 학교에 수시든 정시든 지원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었다.


일단 서류를 내야 하는데 나는 부모님과 학교도 둘러볼 겸, 또 문의도 할 겸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갔다.

준비한 서류를 냈지만 학교를 둘러보거나 따로 상담하진 않았다. 학교 측에서 직접 학생을 만나지 않고 서류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얼마 후 그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이 학교에는 내가 지원할 수 없다는 결과 통보 전화였다.


"몸이 다 나으면 오세요."


15년도 더 지난 일이니 정확한 말은 기억 안 나지만 장애인인 나에게 몸이 어느 정도 나으면 나에게 다시 지원하라는 것이다.


장애라는 게 시간이 지나면 날 수 있는 건가?

이 학교는 서류의 뭘 보고 내가 다닐 수 있는지 판단 한 걸까?


다시 말하자면 이건 정시나 수시 지원 같은 게 아니었다. 애초에 장애인은 입학 시도조차 못 하게 하는 절차였다. 정시 지원도 전에 그 학교 기준으로 장애인을 걸러 낸 거다.


성적도 아닌 지체 장애 1급 복지카드로 이루어진 판단이었다. 그 당시엔 고3이니 더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정시도 지원 전에 장애인의 서류를 받고 지원을 막는 거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나중에야 생각했다.


거기다 몸이 나으면 오라는, 장애인에 대한 기본 상식조차 없는 사람들이 지원자를 걸러내다니.

이런 학교는 나 역시도 아쉽지 않았다.


장애인 차별은 별다른 데서 겪는 게 아니다.

선택의 폭이 좁다는 것, 가능성을 차단당하는 것. 그것이 차별의 가장 큰 문제 아닐까.


나는 내가 사는 지역의 사립대학에 수시합격으로 입학을 했다. 장애인 전형이 아닌 비장애인들도 지원하는 전형이었고 면접까지 본 후, 수능 한 달을 앞두고 합격했다.


내가 편한 걸 생각했다면 집과 가까운 그 학교를 바로 선택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몸이 다 낫고 오라는 쓸데없는 말은 듣지 않았을 텐데. 그럼에도 이 과정들을 거친 걸 후회하지 않는다. 돌고 돌아간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다.


작년에 엄마랑 마트를 갔다가 나처럼 엄마랑 마트를 온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 학생을 만났다.

전동휠체어를 본 엄마가 궁금증이 생겨 질문했고 어쩌다 보니 처음 만난 사람과 잠깐의 대화를 했다.

그 학생은 우리 지역 국립대에 다닌다 했다. 나에게는 장애인에게 해줄 게 없다던 그 학교였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 지원을 해줬고 그 학생도 인권동아리 활동 등을 하며 문제가 생기면 학교 측에 요구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짧게 주고받았다.


비록 나는 누릴 수 없었지만 시간이 흐른 만큼 나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기뻤다.

느리지만 나아가고 있구나.


장애인 지원의 가능성조차 막아버린 그 학교도 지금은 그 말도 안 되는 절차가 없어지지 않았을까?

다 낫고 오라고 말하던 그런 사람은 또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전 05화 엘리베이터 안에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