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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피쌤의 책장 Sep 22. 2023

어머님이 주신 선물

북클럽이 나에게 온 이야기

 난생처음 사람의 숨이 끊어지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보았다. 그날 어머니는 밤 새 숨을 못 쉬고 괴로워하셨다. 꼴딱 꼴딱 한 고비 한 고비 넘어가는 게 너무나 힘들어 보였다. 먼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어머니의 손을 놓지도 붙잡지도 못한 채 나는 떨고 있었다. 눈물은 나지 않았는데 숨을 쉴 수가 없어 고통스러웠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차갑고 흐릿한 병실에 선채 숨이 막혀온다.      



 

 무뚝뚝하고 살갑지 못한 며느리였지만 막상 어머니를 보내드리는 과정은 어려웠다. 처음 얼굴에 황달끼가 있어 병원에 진료받으러 가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예감이 좋지 않았다. 사실 몇 주 전 어머니가 새까맣게 불에 타서 돌아가신 꿈을 꾸었었다.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동네의원에서는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제발 꿈이 반대기를 바라고 바랬다. 그로부터 이틀 후 어머니는 대학병원에서 췌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 남편이 의사를 만나는 동안 응급실 침대 옆 어머니와 단둘이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머니는 실비 보험이 없다고 걱정하며 내 눈치를 보셨다. 충격도 잠시 우리 앞에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줄 서있었다. 수술을 할 건지 말 건지에서부터 어느 병원에 입원할지, 병원비는 어떻게 처리할지, 간병은 어떻게 할지 등등.

 그때부터 남편은 거의 병원에서 생활을 했고 나는 주말마다 간호를 했다. 병원에 몇 달씩 지내며 늘 환자들을 보다 보니 세상은 다 아픈 사람뿐인 거 같았다. 병실 티비 속 뉴스에서는 매일 코로나 환자가 늘고 있다는 보도만 나왔고 어머니는 점점 드시는 게 힘들어졌다.      

 어머니를 뵐 때마다 발도 주물러드리고 농담도 열심히 했다.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그렇게라도 그동안의 미안함을 전하고 싶었다. 결국 어머니는 7개월 남짓 되는 시간을 버티시다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코로나가 여전히 기승이던 이듬해 봄, 나는 지독하게 우울하고 끔찍하게 불안했다. 툭하면 식은땀을 흘리며 한 밤중에 깨기 일쑤였다. 한번 깨면 다시 잠들지 못하고 뜬눈으로 혼자 아침을 맞아야 했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기다렸다는 듯 나를 찾아왔다. 걸핏하면 숨이 가빠져서 숨이 안 쉬어지곤 했다. 잠을 못 잔 탓인지 낮에는 일에 집중이 잘 안 되었다. 일상이 점점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처음으로 신경 정신과를 찾았다.      

 쭈뼛쭈뼛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나 말고도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상담실 옆 작은 사무실에서 심리 검사 설문지를 작성했다. 잠은 잘 자는지, 요즘 기분은 어떤지 등을 물었다. 기분이나 마음 상태를 단계별로 답한다는 건 애매해서 쉽지 않았다. 그래도 상태가 걱정되어 최대한 솔직히 답을 체크했다. 결과는 불안장애 심각 수준 바로 전 단계였다. 잔뜩 긴장해서 상담실 의자에 앉은 내게 선생님은 편안하게 말을 걸어주셨다.   

  

- 지금 어떤 게 가장 힘드세요?

- 일단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게 가장 힘들어요. 밤에 깨는 게 무서워요. 어떤 때는 숨이 잘 안 쉬어지기도 해요. 마음이 많이 불안하고 모든 일에 자꾸 의욕이 떨어져요.

- 그런 증세가 오래되었나요?

- 아니요. 최근 몇 달 새 심해졌어요. 

- 최근에 특별히 어떤 일이 있었나요?

- 얼마 전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보내드리는 과정에서 많이 힘들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제가 공부방을 하는데, 근래 코로나 때문에 수업을 못하는 일이 많아졌어요. 밖에 안 나가고 집에만 있어서 그러진 SNS를 자주 봐요. 거기서 보는 선생님들과 비교하니 저는 너무 형편없이 느껴져요.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저를 괴롭혀요.

 병원에서 주기적으로 상담받고 신경 안정제도 함께 처방받아서 잠은 좀 더 잘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마치 마법의 약처럼 갑자기 기분이 올라가거나 안정되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의욕이 없었고, 무기력했다. 그해 봄 그렇게 나는 혼자만의 길고 어두운 터널 속에 있었다. 밥도 안 하고 청소도 안 하고 집은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나를 정신 들게 한건, 식탁에 앉아 라면을 먹던 남편의 기운 없는 뒷모습이었다. 얼마 전 엄마를 잃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터널 밖으로 나오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다. 그때 시작한 것이 블로그 글쓰기다. 글을 하나 쓸 때마다 작게나마 성취감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동안 읽은 영어 책을 정리해두고 싶은 마음에 끄적끄적 몇 자 적 곤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블로그를 통해 소통하는 이웃들이 늘었다. 댓글로 지지해 주고 공감해주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당시 블로그에 영어 원서 이야기를 올리면, ‘와! 원서 읽기라니, 너무 부럽네요! 저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멋지세요!’, ‘쏘피쌤을 통해 어려운 원서들 내용도 알게 되고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동기부여를 해주시는 것에 감사드려요.’ 등등 대부분의 반응은 원서를 읽고 싶은 바람과 부러움을 표현하는 댓글들이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시절이라 공감과 응원의 댓글들이 삶의 큰 활력소가 되었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온라인 속 세상에서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었다. 다정한 이웃들의 부추김 덕분이었을까? 오랫동안 원서 읽으며 얻은 성취감과 감동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토록 우울했던 2021년 마흔여섯 생일날에 나에게 리북스를 선물했다. 

 여전히 매일 불안하고 흔들리지만, 지독했던 그 봄에 느꼈던 우울감은 다시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뜬 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 숨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 건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주신 선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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