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기를 해본 사람과 안 해본 사람의 차이
“자, 실습 시작.”
시작 선언과 동시에 학생들의 탄식이 흘러나온다. 다들 하나같이 실습수업에 대해 불만들이 많다.
“이걸로 평생 먹고살 것도 아닌데 왜 배워야 돼요?”
“저는 대학 갈 건데 이건 왜 해야 돼요?”
“엄마가 위험한 짓 하지 말랬어요.”
학생들의 이런 핑계를 모아도 책 한 권은 족히 나오겠다. 제목은 이렇게 붙이면 어떨까?
<<아이들은 하기 싫은 이유도 많다.>>
육아 필독서로 추천한다면, 자식 키우며 당황한 부모들이 위로받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고등학교를 특성화고를 졸업했기 때문에 참 많은 실습을 배웠고, 3학년 때는 특성화고의 수능이라 할 수 있는 필기면제자 검정, 일명 의무검정으로 ‘전자기기기능사(현 전자기능사)’를 응시하였다. 이 종목은 실기과제가 납땜으로 회로기판을 만드는 것이라 납땜을 얼마나 했는지, 내가 만든 기판만 백 개는 넘을 것이다. 그만큼 연습했으니 당연히 결과는 ‘합격’. 합격 발표를 듣는 순간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내가 다시는 납땜 안 한다.”
...그런데, 과연 그 다짐은 지켜졌을까?
대학 진학에 있어 학과를 정할 때 결국 내가 뭘 할 줄 아는지 생각 할 수 밖에 없었고, 고민 끝에 공대에 진학하였다. 대학에서 뭔가 만드는 과제가 생기면 나도 모르게 무슨 회로를 만들지를 고민하게 되고 결국 교사라는 직업을 갖게 된 지금까지도 난 내 손에서 인두기를 놓지 못하고 있다. 다시는 안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녔으면 평생 따라다닐 흑역사를 내 손으로 하나 만들뻔했다.
3학년 때 내가 담임을 맡았던 A는 자신의 진로를 태권도 쪽으로 정했다면서 1년 내내 자신이 왜 전기실습을 해야 하냐며 투덜댔다. 난 그런 A를 어르고 달래고 혼내며 어떻게든 의무검정으로 자격증 하나 만큼은 챙겨주려 하였지만 끝내 A는 시험 당일 기권하고 시험장에서 나가버렸고 이후에도 죽어도 안할거라고 하여 결국 졸업할 때 까지 남들 다 따는 의무검정 자격증 조차 취득하지 못한 채 졸업했고 대학은 태권도학과에 진학했다.
몇 년 후 우연히 A의 연락을 받아 근황을 물었더니 사고로 인해 태권도를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대학은 그만두고 따로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필기시험부터 다시 공부해서 취득했고, 결국 취업에 성공했다더라. 그러게 학교 다닐 때 하지 그랬냐고 내가 말하자 A는 부끄러운 듯 말했다.
“그땐 저도 이렇게 될 줄 몰랐죠.”
인생이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자기 진로를 명확히 계획해도 불의의 사고로 틀어질 수 있는 것이 인생이고 그렇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이 벌어져 자신의 진로를 바꿔야 할 상황이 온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황할 것이다. 이제 와서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습을 해본 사람은 그 일련의 과정을 몸이 기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월한 부분이 존재한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에서 실습을 해본 경험은 또 하나의 무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난 오늘도 실습수업이 시작되면 학생들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한다.
“이 실습 졸업할 때까지만 하고, 다시는 하지마.”
“근데, 인생이 네가 계획한 대로 되겠니? 만약 된다면 내가 진심으로 축하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