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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람 Sep 05. 2023

내 온 시선과 마음과 열정을 가져가요, 축구.

그 대회에서 부상을 얻어 기브스를 했기에 2달 정도 운동을 쉬어야 했다. 당시 인스타 스토리를 다시 보면 많이 우울하고 힘들어했다. 그냥 있진 않았다. 가만히 누워있으면서 몇 시간씩 축구 강의를 들었다.아, 이렇게 움직이는 게 수비수를 따돌릴 수 있는 방법이구나, 이런 볼터치가 쉬운 게 아니었네. 움직임 하나하나가 자세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생각하고 축구를 하는 법을 좀 알았다.

 기브스를 풀고 나서 나는 이제 핑계 대지 않는 축구인이 되었다. 혼자서 공 들고나가서 연습하기도 하고,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불러다가 같이 공을 차기도 하면서 거침없이 즐겼다. 공을 찰 수 있다는 것, 두 다리로 씩씩하게 걷는 것 모두 축복이고 행복이었다. 축구가 너무 좋다. 이렇게 재밌는 게 또 있나?


 축구 보는 재미도 점점 들였다. 스포츠는 하는 게 맛이라며 경기 영상은 절대 찾아보지 않는 나였다. 10분 넘는 영상을 끈기 있게 보지 못했는데 축구 강의 속 기술들을 실제 경기에서 쓰는 걸 보니 굉장히 흥미로웠다. 경기 하이라이트를 보다가 전체 90분 경기도 보게 되었다. 그 긴 시간 동안 체력을 유지하는 것도 놀라웠으며 매번 아름다운 기술들을 보여주고 다 같이 골을 만들어가는 게 좋았다. 통쾌한 마무리를 제일 좋아했다. 손흥민과 이승우. 아 그때는 이승우를 정말 좋아했다. 스무 살의 패기 어린 모습, 당차고 기죽지 않으면서도 야무지게 드리블을 하는 게 좋았다. 아시안게임에서 결승골을 넣는 모습도, U20월드컵에서 드리블로 골을 넣는 것도 좋았다. 축구선수를 좋아하는 재미를 알려준 선수라서 지금은 그냥 고마웠던 선수로 기억한다.

 이승우 좋아하기를 6개월, 그 후는 손흥민 선수였다. 대한민국 축구 팬이라면, 국민이라면 대부분이 알고 있는 손흥민. 이 사람도 대단했다. 축구 기본기를 위해 어릴 적부터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타지에 나가 오로지 축구에 삶을 바친 모습이 멋있었다. 손흥민 선수의 골 결정력이 좋았다. '저렇게 골을 넣네?'라는 경이로움으로 경기를 열심히 봤다. 축구에 대한 그 사람의 진심을 굉장히 사랑하기도 했다.

그렇게 랜선 오빠들로만 생각했는데 2019. 3월 국대 경기가 부산에서 열렸다. 축구선수를 영상으로만 봤지 직접 볼 생각은 못했는데 영국남자(?) 손흥민이 부산에? 아 이건 못 참지. 그 당시 취업 시험 공부로 한창 혼이 나가있을 때지만 경기 소식은 기뻤다. 티켓팅도 힘들었다. 러시아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의 흥행으로 빡빡한 열기 속에서 나는 포도알 두 개를 얻었다.

 실제로 보는 경기는 진짜 어마어마했다. 그때의 일기를 조금 옮겨 써보자면 인생 최고의 경험이라고 첫 시작을 뗐다. 경기 보는 동안 몇 번씩 울컥했다. 핸드폰 속에서나 보던 선수들을 이렇게나 가까이서 볼 수 있다니. 내적 친분은 나 혼자 두터웠지만 실제로 보니 슈퍼스타를 마주한 것처럼 가슴이 떨렸다. 이승우가 교체되어 활약하는 모습을 보는 건 감격스러웠다. 괜히 바르샤 유스가 아니었다. 권창훈 선수를 다시 보게 되었다. 솔직히 잘 모르는 선수였다. 그의 야무지고 창의적인 플레이가 눈에 많이 들어왔다. 백승호와 이강인의 출전은 아쉽게도 보지 못했지만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었다는 사실로 행복해하는 나였다.

 이날 여자 월드컵 트로피 투어도 있었다. 장슬기 선수와 김정미 선수를 여기서 처음 봤다. 장슬기 선수의 이름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실물이 생각보다 너무 조그맣고 정말 귀여워서 왜 인기가 많은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날씬한데 여자축구 국가대표라는 게 놀랍고 대단했다. 김정미 선수는 포스가 장난 아니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그 카리스마와 피지컬에 압도되는 기분이었다. 그때의 나는 여자축구에 관심을 가지기보단 김정미 선수 곁의 홍명보 감독에게 더 눈이 갔으며, 홍명보를 구름처럼 따라가는 팬들을 보는 게 재밌어서 여자축구를 잊어버렸다. (그리고 잊어버린 그 월드컵은 내가 크게 후회하는 일 중 하나다. 알았으면 좀 더 잘 찾아볼걸. 그러지 못했네.) 


 그 상쾌하고 즐거운 나들이를 끝내고 현실로 돌아온 나는 더 맑은 정신으로 살았다. 축구에 몰입하니 나를 괴롭히던 고민들이 그다지 큰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얼른 취업시험 붙어서 다시 제대로 경기 보러 갈 생각을 하니 오랜 시간 앉아있을 수 있었다. 축구가 대단했다. 내 몸 건강 챙기는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버티게 돕는다. 내가 더 나아갈 수 있게 돕는 강한 힘이 있었다.


놀랍지도 않게, 이 호쾌함과 만족은 금방 태도를 바꾸어 날 공격했다.

난 스스로를 못살게 굴며 괴로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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