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 : 다른 곳과의 왕래나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없이 홀로 떨어짐
*고독 : 홀로 있는 듯이 외롭고 쓸쓸함
(출처 : 다음사전)
사전을 보면 고립과 고독은 비슷합니다. 둘 다 아무도 없는 빈 공간에 혼자 있는 외로운 사람을 그립니다. Paul Signac 의 그림처럼 말이죠. (제목 표지 그림) 그러나 도스토옙스키는 고립과 고독을 자신의 소설에서 다른 모양으로 그립니다.
“도스토옙스키는 고립을 악의 조건이자 악의 결과로 본다. 악행과 고립은 우로보로스처럼 맞물려 있다. 그에게 고립이란 물리적으로 혼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있으면서도 서로 간에 아무런 공감이나 유대가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 석영중. 열린책들. p45)
고립을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마음의 거리로 묘사하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은 웬만한 사회학자의 분석보다 날카롭게 우리 일상과 마음을 찌릅니다. 아무리 혼자 있어도 마음으로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면 그 사람은 고립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많은 사람들 속에 함께 살면서도, 다른 이들과 유대관계를 만들지 못할 때 고립됩니다.
베를린 예술대학교 한병철 교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화상통화를 예로 들면서 오늘 사회가 시선이 결핍되어 있다고 경고합니다. 화상 통화할 때 화면 속 상대의 눈을 보고 있으면, 상대방은 우리가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다고 느끼고, 카메라를 볼 때 자신을 보고 있다고 느낍니다. 통화하면서 화면 속 자신을 보면 상대방을 못 보고, 상대방을 보면 자신을 못 봅니다. 이와 같이 화상통화 안에서 서로의 시선이 틀어져 있고 결핍되어 있는 것처럼, 일상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이, 마음이, 유대와 공감이 틀어져 결핍되어 있습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오히려 고립감과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는 현상이 그 증거이겠지요.
고립을 날카롭게 분석한 도스토옙스키는 고독에 대해서는 반전을 일으킵니다.
“반면 고독은 실존을 지속하기 위한 거리두기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우리는 고립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인간다움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고독을 수용해야 한다.” (같은 책, p45)
고립과 고독은 다릅니다. 유대관계가 깨진 고립은 사람을 외롭게 만들지만, 안전거리를 제공하는 고독은 사람을 자유롭게 만듭니다. 공감이 없는 고립은 마음을 약하게 만들지만, 물러나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고독은 마음을 강하게 만듭니다. 고립은 관계에 벽을 세우지만, 고독은 관계에 문을 만듭니다. 사전이 말하는 것처럼 홀로 있을 때 외롭고 쓸쓸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혼자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없다면 괴롭고 아프고 말 것입니다. 어떤 의미로 고독은 입에는 쓰지만 몸에는 좋은 약 같다고 할까요? 나를 외롭게도 만들지만, 나를 나답게 만드는 고독이라는 약을 먹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고립과 고독은 다릅니다. 여러분이 느끼는 외로움과 쓸쓸함은 고립으로부터 나온 감정인가요? 아니면 고독 때문일까요? 만약 고립 때문이라면,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틀어진 시선을 찾아서 맞춰 보세요. 지지직 거리는 라디오를 잘 맞추면, 다시 아름다운 음악과 공감 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처럼, 관계와 상대방에게 집중하면 고립에서 벗어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떼니까요. 그러나 만약 고독 때문이라면, 피하지 말고 자기 자신 안에서 하는 이야기에 충분히 집중해보세요. 바쁘고 어지러운 일상에서 잠시 물러나 고독 가운데 머무른다면, 외로움과 쓸쓸함은 이내 곧 친구가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쉼과 위로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