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해와 달의 중성화 수술 첫 번째 이야기

사람과 살기 위해서 고양이는 본능과 무기를 버렸는데, 사람은?

by 세미한 소리


보호소에서 처음 집에 온 해와 달 / 생후 3개월


고양이 해와 달이 가족이 된 지 벌써 3개월이 지났습니다. 희한하게도 ‘벌써 3개월이나 됐어?’라는 생각과 ‘고작 3개월밖에 안 됐어?’라는 생각이 동시에 듭니다. 아마도 달과 해를 만나고 처음 보낸 시간들이 힘들면서도 행복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달이가 밤마다 집안 곳곳에 설치한 똥 지뢰를 치워야 했고, 면역력이 약해서 잔병이 많은 해는 피부병 링웜에 걸려 아내와 아들 한비에게도 옮겼습니다. 동물병원도 자주 다녔고, 초보 집사라 사료를 넉넉히 준비하지 못해서 밤에 급하게 마트에 가서 사료를 사 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해와 달은 건강히 자라서 3개월 만에 아기 고양이에서 청소년 고양이가 되었습니다.(고양이는 생후 6개월이면 청소년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저희 집에는 초등학교 6학년 한비, 4학년 한별 그리고 청소년 고양이 해와 달, 사춘기 십대들이 우글 거립니다. 무섭죠?


KakaoTalk_20210916_162739440_04.jpg 링웜 걸린 '해'


지난 8월 중순에 달과 해를 쭉 돌봐 주고 있는 동물병원 원장님께서 중성화 수술할 때가 되었다는 연락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모여 언제 수술받을지 회의를 하는데, 한별이가 고양이가 불쌍하다며 중성화 수술을 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한비 역시 수술하는 것이 못마땅한 눈치였고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고양이가 사람과 함께 집 안에서 건강하고 오래 살기 위해서는 중성화 수술이 필요해. 그리고 만약 중성화 수술을 안 하면 해와 달은 계속 싸울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집을 나가서 못 돌아올 수도 있어’라며 협박이 잔뜩 들어간 설득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고양이들이 집을 나갈 수도 있다는 말에 어쩔수 없이 수술에 찬성했습니다.


간신히 아이들의 동의는 얻었지만, 아내와 제 마음은 여전히 편치 않았습니다. 고양이와 같이 살기 위해서 고양이의 본능을 빼앗아 버린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거든요. 중성화 수술뿐 만이 아닙니다. 주기적으로 고양이 발톱을 깎아주는데, 사실 발톱은 고양이의 유일한 무기이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사냥할 필요가 없고, 그 발톱이 오히려 같이 사는 사람을 할퀴고 다치게 한다는 이유로 깎아 버립니다. 이렇게 사람 때문에 해와 달이 고양이 다움을 잃어버리는 것이 미안했습니다. 같이 살려면 어쩔 수 없다고 계속 자기변명을 하지만, 불편하고 미안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간은 빨리 흘러서 수술 날짜가 되었고, 예정대로 달과 해는 중성화 수술을 받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넥 카라를 하고 축 쳐져 있는 해와 달을 보면서, 이제는 미안해하기보다 고마워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해와 달이 우리 가족으로 살기 위해서 자신의 본능과 무기를 포기한 것처럼, 고양이와 살고자 하는 우리들도 고양이를 위해서 사람의 본능과 무기를 양보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집의 공간과 시간, 삶의 형태와 흐름에서 고양이가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사람들도 양보와 포기를 하려고 합니다. 일단 첫걸음으로 거실 벽에 캣 워크를 만들어 줄까 합니다. 사실 거실이 너무 좁고, 나름 미니멀리즘을 추구해서 캣 타워도 안 놓고 있었거든요. 해와 달도 중요한 것을 양보했으니, 사람들도 그래야겠지요.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겠으나, 앞으로 조금씩 노력하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위해 고양이답게 사는 방식을 조금 내려놓아 준 해와 달이 적어도 해는 해답게, 달이는 달이 답게 살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줄 겁니다. 고양이도 사람처럼 외모도 성격도 취향도 다 다르니까요.


달과 해의 중성화 수술을 경험하면서, 반려동물이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해서 얼마나 쉽게 자기다움을 희생해야 하는지, 그에 반해 사람은 그다지 희생하지 않는지에 대해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불균형은 사람과 반려동물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편리함과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의 본능으로 자연은 착취되고, 개발과 성장이라는 사람의 무기로 인해 환경은 파괴되어 야생동물이 터전을 잃고 있습니다. 공장식 가축농장, 동물원, 아쿠아리움 등 사람을 위해 동물은 본연의 삶의 형태와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자연과 생명은 이미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해 충분히 많은 것을 내어 주었습니다. 이제는 자연과 생명을 위해 그리고 자연과 함께 살기 위해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사람의 탐욕과 본능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무분별한 개발과 성장을 더 이상 우리의 무기로 삼지 말고, 나눔과 평화를 우리의 힘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도 자연과 함께 살기 위해서 우리의 것을 포기하고 양보할 때, 자연은 우리와 계속 함께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사람이 같이 살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자연과 다른 생명들은 더 이상 사람과 함께 살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함께 살기 위해 우리 것을 내려놓읍시다!



KakaoTalk_20210917_045332705.jpg 수술 후 넷플릭스 '뉴 암스테르담' 보는 '달'



KakaoTalk_20210916_162739440_01.jpg 수술받고 집사들에게 뚱~ 해 있는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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