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球)를 바로 앞에 두고도
차마 직접 만질 수 없어서
4B 연필로 원(圓) 하나 그려놓고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때까지
미련을 마름모로 접다가 한 생각은,
왜 손은 없으면서 눈만 주었을까요?
입은 없으면서 귀는 주었을까요?
애초에 몰랐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생각만 할 바에야 글자도 모르는 게 낫지 않나요?
빛은 없어도 포근했잖아요, 심해에선
왜 뭍으로 나왔을까요, 아가미도 떼어내고
글쎄요, 그땐 다들 그랬으니까요
그래요, 모두 한때 그랬으니까요
모르죠, 누가 홀로 남겨지길 바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