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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시계공

by 신서안

오늘 나의 사인은 소사(醒死)*요



평생을 톱니와 태엽,

조각난 시간의 파편을 맞추며 살았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리게 하느라

손가락 끝은 기름때와 쇳가루로 닳아 없어졌소



그러나 그 모든 것 중에 어느 것 하나

이 손에 남은 게 있더이까



보시오



시간은

아득바득 붙잡고 있을 때나

귀할 뿐이거늘



금테 덧씌운

주물에 불과함을

진작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소



바삐 내달리며

사람에 치이고

가시에 찔리는 대신



아이 한번 더 안아주고

할미 손 한번 더 잡아드릴걸



세상이 내게서

등 돌리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구려






*소사(醒死): 늦은 깨달음은 종종 가장 깊은 후회를 낳는다. ‘소사’는 깨달음과 동시에 끝을 맞이하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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