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진 스파이더맨 의상에 간신히 몸을 욱여넣더니 뒷 지퍼를 올려달라고 등을 보이며 내게 왔다. 지퍼를 다 올리니 위아래가 연결된 옷의 바지가 한껏 위로 당겨져 아이의 엉덩이 골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이제 그만 입을 때가 되었는데…
이 스파이더맨 의상은 6살에 산타에게 받은 선물이었다. 크리스마스에 임박해 주문하면 원하는 날짜에 택배 받기가 어렵다는 걸 산타 경력이 쌓이면서 터득했다. 그래서 12월 초 아이에게 원하는 선물을 미리 떠본 후 준비한 것이다. 그런데 갖고 싶은 게 너무 많았던 6살 아이는 받고 싶은 선물이 여러 번 바뀌더니 크리스마스 전날, 아예 다른 선물을 원했다.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미리 준비했을 텐데. 예전에 소원 빌었던 걸 선물 할 수도 있어.”
후렴구 마냥 반복해서 말해 줬지만 아이에겐 들리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아침, 선물을 풀러 본 아이는 스파이더맨 옷을 보며 실망해 울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원치 않던 선물이었는데, 결국 좋아할 수밖에 없던 선물이었다.
“내가 스파이더맨 옷을 좋아하게 될 줄 어떻게 알고 미리 선물한 거지? ”
산타 할아버지는 미래도 알고 있다면서 감탄했다. 그렇게 그 옷을 7살에도 입고, 8살에도 입고, 9살에도 입었다. 초등학생이 되면 그만 입을 것 같았다. 점점 작아지는 옷을 보며 기다렸다. 그만 입을 날을. 그런데 10살을 앞둔 크리스마스날, 산타에게 ‘스파이더맨 거미줄 슈팅기’를 선물로 받았다. 거미줄도 쏠 수 있는 스파이더맨 모습이 완성되려면 의상이 필수다. 똥꼬가 끼는 옷을 또 꺼내 입는다. 몰래 핸드폰으로 스파이더맨 옷이 얼마인지 검색해 보았다. 2만 원.
택배가 도착했다. 산타가 아닌 엄마가 사준 새 스파이더맨 옷은 중국에서 날아왔다. 흥분해서 택배를 뜯어 바로 입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이 옷도 작다. 분명 키 140cm도 입을 수 있는 150 사이즈라고 해서 주문했는데 옷엔 사이즈 표시가 없다. 봉투엔 의문스럽게 ‘L’ 이라고만 쓰여 있다. 환불도 받기 어려운 해외 배송이었다. 그렇게 디자인만 바뀐 똥꼬 끼는 새 옷을 또 입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