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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아 Nov 09. 2023

뮤지컬 <그럼에도 불구하고> (3)

아기 배우


  데뷔다!

  학교에서 몇 번씩 올리던 공연들을 디딤판 삼아 냉큼 공연계로 겁 없이 뛰어들었다. 마냥 즐거움으로만 가득했던지라, 의구심도 망설임도 없이 패기만 가득한 채로 냅다 공연계로 다이빙했다. 그 세계의 바닥이 얼마나 깊고 물결이 얼마나 거센지도 생각하지 않은 채로…


  사실 대학에서 뮤지컬 동아리를 선택한 이유는 이걸 끝으로 내 오랜 꿈을 청산하겠다는 목적이었다. 그런데 웬걸, 잔뜩 치이고 지쳐가면서도, 잠들기 전 공연 생각에 몇 시간씩이나 뒤척이면서도 행복해하고 있는 나를 마주하게 되자 나는 이 무모할지도 모르는 도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20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습 중


  그러나 현실과 낭만은 다른 법. 배움도 경험도 부족한 하룻강아지가 겁 없이 프로들의 소굴에 들어가다니.

  외부에서 하는 첫 작품이기도 했거니와 실력이 짱짱한 배우 선배들과 한 무대에서 같이 노래하고 연기하려니 설렘은 2할, 부담감이 8할이었다. 배운 것도 없고 실력도 없으니 몇십 몇백 배는 더 발버둥 쳐서라도 다른 배우들의 평균치는 맞추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 이 또한 일종의 자격지심이다. 나는 수없이 남들과 나를 비교하며 매질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참 이상하게도 노력하면 할수록, ’ 잘해야지 ‘ 하고 생각하면 할수록 나는 침체되어 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생애 가장 힘들었던 시기 중 손에 꼽을 만한 경험이었다. 그래서 하루는 나와 같은 배역의 더블캐스트 언니를 붙들고 엉엉 울었다. 왜 그랬지, 과거의 나…. 조금 부끄러워지려 한다.


  “언니, 저 못하겠어요. 잘하고 싶은데 생각대로 몸이 안 움직여요.”

  의지와는 상관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잔뜩 코 막힌 소리로 언니에게 하소연을 했다.


  “령화야, 네가 지금 잘하려고 해서 그래. 너 연습하지 마. 잘 보이려고 하지 말고 너의 부족한 부분을 그냥 인정해.”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조언이었다.

  물론 하루아침에 내 못난 부분을 인정하는 건 쉽지 않았고, 그런다고 해서 바로 부담감이 덜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마음의 무게추 하나를 덜어낸 정도였을 뿐이었지만 내겐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나는 흥미를 잃으면 포기가 빠른 편이다. 그래서 실은, 난 나 스스로가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도 않았고 스트레스를 너무 크게 받고 있었다. 이 작품이 어쩌면 나의 시작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겠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난 꽤나 집념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았고 꼭 배우가 되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은 계기가 되었다. 평소의 나처럼 내 못난 모습에 든 생각이 “난 안될 거야” 가 아닌, “어떻게든 해내고 싶다” 였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그치면 난 평생 미련을 안고 발전 없이 배회하며 살아갈 것만 같았다.

  뮤지컬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작품 자체로도 참 사랑스럽고 매력적이었지만, 우유부단하게 맴돌던 나의 길잡이가 되어주었으므로 내게는 아주 크고 특별한 의미로 남아있다. 나는 이 공연을 하게 된 것을 아직도 내가 한 일중 가장 잘 한 일로 꼽고 있다. 지금 그때 내 데뷔 무대를 보면 아기 배우의 재롱잔치가 따로 없다 (물론 당시엔 내 모든 최선을 다했지만…). 정말 창피하기 그지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금 내 모습의 시작이었기에 참 애틋하고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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