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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Oct 19. 2023

인간애 상실

그의 머릿속엔 뭐가 들었나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 이것은 어딜 가든 적용되는 법칙이지만, 유독 나의 경우엔 심한 것 같다. 나 같은 경험을 했다는 사람을 내 주변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다.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들어가게 된 또 다른 회사에서 일할 당시에 백신주사를 맞아야 했는데, 간신히 잔여백신에 성공해서 중간에 주사를 맞고 회사로 돌아왔다.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몸이 너무 아파와서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집단으로 폭행을 당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온몸을 뚜드려 맞는 느낌이 들었고 오한이 들었고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려서 일은커녕 가만히 앉아 있기도 힘들었고 이런 상황을 직속 상사에게 말씀드렸더니 상사는 내게 그 업무 대체할 사람이 없으니 집에 갈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지금 일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아프고 정말 죽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며 눈물을 쏟았다.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진짜 참을 수 없이 아파서 눈물까지 흘렀다. 그런데 그는 나에게 백신 맞았다고 안 죽는다며, 죽더라도 그 자리에서 죽으라고 말했다.


 회사를 다니는데 아프면 회사에서 죽어야 하는 것인가. 백신을 맞고 부작용으로 죽은 사람들에 대한 뉴스가 나오던 상황이었다. 나는 다른 분들께 도움을 요청했다. 너무 아픈데 조퇴하면 안 되겠냐고. 다른 분들은 어서 가보라며 이야기했는데 그는 절대 안 된다고 말했고 나는 정신 분열이 올 것 같았다. 태어나서 이렇게 아픈 적이 처음이었고 나 자신도 나의 몸이 감당이 안될 정도로 힘들었다. 부장님께서 상황을 보시곤 그 정도로 아프면 조퇴해야지 뭐 하고 있냐고 말씀하셨지만 그는 나를 회사에서 나가지 못하게 막아섰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모니터 앞에 다시 앉아야 했고 어떻게든 일을 끝내야 했다. 진통제 5알을 꾸역꾸역 삼키고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하면서 울면서 일을 해야 했다.


 이 회사에 들어온 지 3개월도 채 안된 때였는데 나에게 업무 인계를 하던 사람은 퇴사를 하게 되었고 나의 직속 상사였던 그는 이 업무에 대해 아는게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내가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초록창에 검색해 보라고 대답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광고회사에서 너무 호되게 당한 탓인가. 당시에는 미치도록 힘들었지만 퇴사 고비를 간신히 넘겼고 참아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는 이 회사를 퇴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 또한 '그'이다. 내 안에 있던 퇴사 버튼을 누르게 되었던 사건과 말이 있다. 회사 업무 특성상 높은 곳에서 일을 하는 파트가 있었는데 거기서 일하던 담당자가 떨어지면서 몸이 끼이는 상황이 생겼고 하반신을 크게 다치게 되었다. 높은 곳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관련 장치 관리가 중요했는데 담당자가 장치가 고장 난 것 같아 그 사실을 그에게 말했지만 그는 들을 체도 하지 않았고 결국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이 사건이 대표님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는 자신은 모른다는 투로 일관했다. 그러면서 사람들 앞에서 이것 때문에 자기가 혼나게 생겼다고 말했다. 그 시점에 대표님의 다른 회사에서 외주 업체 직원이 사망하게 되는 사건이 생겼는데, 그는 그 사건을 듣고는 저 사람이 죽어서 이 사건이 묻히게 되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내가 가족이 아니고 내 동료가 아니고 남이라고 해도 사람이 죽게 된 일을 보고도 이런 말이 나오는구나. 이 말을 듣고 나서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그 순간으로부터 모든 인간애, 인류애를 상실하게 되는 듯했다. 이토록 추악한 인간의 형태를 내가 마주하게 되다니. 심지어 그는 그것을 정말 자랑스러운 듯 이야기했다. 그의 머릿속엔 정말 뭐가 들었을까. 난 결국 또다시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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