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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방송작가 Sep 01. 2021

이제, 꿈 대신  밥먹고 살려구요

꿈을 먹다 삶에 허기진 청춘들에게

오래전 막내방송작가를 뽑는 면접에, 방송 경력은 없지만, 신문사 신춘문예 시 당선, 시인 등단이라는 특이한 이력이 있는 친구가 지원했다. 신춘문예에 당선된 사람이, 왜 방송작가를 하려는지 물었다. 꿈만 먹고는 생활이 안돼서, 돈을 벌기 위해 지원했단다. 신춘문예 당선 이력이면, 시 의뢰도 들어올 테고, 생활비는 벌지 않냐고 물었더니, 의외의 대답을 했다.

"저는 시 써서 50만 원 정도 벌었습니다. 일 년에."

 

시를 읽는 사람이 너무 적고, 등단을 하더라도 계간지에 글을 싣는 것조차 쉽지 않아, 아르바이트하며 시를 썼단다. 자신의 직업이 시인인지 아르바이트생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그를 뽑았고, 막내작가로 한동안 같이 일을 했다. 그 후 프로그램이 없어져 가끔 전화로만 연락했다. 방송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시에 대한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던 후배는, 몇 년 후 방송작가를 그만두고, 시를 쓰는 시인으로 돌아갔다.


방송작가 중에는 방송 일을 그만두고 공장에 취업한 후배도 있다. 내가 하는 프로그램에 한 달 파견 나온 막내작가였다. 한 달 후 헤어졌고, 나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몇 개월 후 걸려온 전화에,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냈고, 합의금이 필요한 상황이어서, 자신의 전세보증금을 빼드렸다고 했다. 예전 프리랜서 막내작가의 연봉은 최저임금 수준 이하라, 아버지 병원비와 생활을 위해 얼마 전 공장에 취업을 했단다. 밤샘 방송 원고 작업할 때도, 힘든 줄 모르고 재밌다며, 눈을 반짝이던 후배였다.

내일의 꿈보다 오늘 하루의 삶이 절박한 후배는, 생활비로 쓸 50만 원을 빌려달라고 했다. 빌려줬다가 못 받을까 걱정도 되고, 한 달 일한 친군데 꼭 내가 빌려줘야 할지를 고민도 됐다. 나는 50만 원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후배는 살기 위해 꼭 필요한 돈이라는 생각이 들어 빌려줬다. 2달 후 돈을 갚았고, 후배는 방송작가로 돌아오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꿈을 찾아 되돌아가고, 어떤 사람은 꿈에서 멀어져 간다.

인생의 끝자락에 우리가 도착할 곳이 어딘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푸른 청춘처럼 눈부신 꿈이, 우리에게 있었다는 것만은 잊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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