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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이 Jan 26. 2022

그네 피노키오 그리고 그 아이들 : 나의 첫 고백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우리는 사랑의 시작 부분에서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사랑의 완성은 사랑이 끝난 다음이다"


언젠가 라디오에서 사랑에 관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랑의 완성은, 사랑이 끝난 다음이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랑해온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 시간 속에 남은 이야기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간직해 온 시간들은 얼마나 많은 사랑의 끝을 경험했을까, 그리고 그 사랑은 그 끝으로부터 어떻게 완성되어 왔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초등학교 3학년, 10살의 내가 떠올랐다.


그 당시 우리 반에는 '이달의 특별조'라는 게 있었다. 4명씩 짝을 지어 한 조가 되는 건데, 그 조는 한 달간 선생님 교탁 맨 앞에 모여 앉아야 했다. 선생님을 돕기도 하고, 가끔은 친구들을 돕기도 하면서, 주어진 한 달 동안 우리 반의 '특별한 사람들'이 되는, 일종의 '자원봉사' 시스템이었다.

'특별조'라니! 이름에서부터 마치 히어로 영화 속 슈퍼맨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넌 특별한 사람이야, 라는 달콤한 속삭임은 그때 그 시절 우리를 움직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그 특별조가 되었을 때, 한 남자아이와 함께였다. 그 아이는 또래에 비해 키도 크고, 올망졸망하게 생긴 탓에 어딜 가나 환영받는 인기 많은 아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하게 만들 정도로 유명했던 아이. 그래서인지 나는 그 아이와 특별조가 되는 것이 좋았다. 같이 대화를 나눌 시간이 많아졌고, 함께 다니는 일이 늘어났으니까. 그땐 짝사랑이라는 게 뭔지도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마음의 일종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사랑.


사랑은 위대하다. 어머니의 사랑도, 친구의 사랑도, 연인의 사랑도. 사랑은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한다. 하기 싫은 일을 하게 하는 것이 사랑이고, 이전과 다른 행동을 하게 하는 게 사랑이다. 그때의 나에게도 사랑은 위대한 것이었다. 등굣길이 즐겁고, 수업시간이 즐겁다는 것, 10살에게 그것보다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것이 사랑인 줄 몰랐다. 아니, 그런 감정 자체를 재단하는 말 따위를 알지 못했다. 스스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서툴렀고, 스스로의 마음을 파악하는 일이 어려웠다.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사랑의 완성은 사랑이 끝난 다음이다'라는 말은 정확하게 들어맞을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에는 몰랐던 마음을 지금에 와서야 되짚어 보고 있으니 말이다.


그 아이와는 한 달 동안 꽤나 많이 친해졌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나의 마지막 기억은 학교 운동장에서였다. 강했던 햇살이 누그러지는 오후의 어느 때에, 우리는 각자 그네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넌 커서 뭐가 될 거야?' 지금은 이 질문을 주고받았다는 기억밖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땐 아마도 더욱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리라. 그때 우리가 나누었던 꿈과 미래는 어디로 가버렸을까. 어째서 지금의 우리는 꿈보다 현실을 생각하는 어른이 되어버렸을까.


이제는 막연한 꿈을 논하기에는 철이 든 나이라지만, 아직도 가끔 이때의 생각을 하면 철없이 이런저런 꿈을 늘어놓고 싶어 진다. 그때의 우리는 '특별조'라는 이유를 제외하고서라도 충분히 특별했던 것 같다. 오후의 그네 위에 두고 온 막연한 추억까지도. 나는 그때 그곳에서 그에게 고백을 했던가? 아니, 정확히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했을 수도, 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에 와서 그 사실은 지금 그다지 중요한 것 같지 않다. 다만 중요한 것은 지금의 내가 그 기억을, 이 글을 통해 완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랑이 끝난 시점으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에야.


그 시절을, 그 학교를, 그 운동장을, 그 그네를, 그리고 그때의 우리를 사랑했다고 말하고 싶다.

사랑은 여전히 위대하다. 다시금 그때의 나처럼, 꿈과 미래를 논하고 싶어지니 말이다.






*  (각자의 추억은 모두 소중하기에) 사실과 다르게 각색한 부분이 있습니다.

*  <교차로입니다 서행하세요>의 일곱 번째 글입니다. 이 매거진은 같지만 다른 점이 많은 두 친구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같은 주제에 대해 각기 다른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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