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신경과 10 - 신경과 후기
퇴원 시 처방받은 약은 아래 그림과 같다. 예방약이 7일분, 급성기 약은 5일분이다.
매일 복용하는 편두통 예방약은 일주일 분으로 하루 한 번 복용하였다. 입원 시 복용한 약과 같으며, 아침에 복용하는 약과 자기 전에 복용하는 약이 따로 있었다.
두통 비상약은 입원 시 복용한 약에서 크래밍을 제외하고 처방되었다. (에르고타민과 트립탄은 동시 복용하면 안 된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햇빛이 내리쬐는 한낮이었다. 날은 생각보다 흐렸고, 또 더웠다. 병원 문을 나와 직접 마주한 햇살이 찬란했다. 병원 근처에 가까운 지하철 역이 있었지만 나는 좀 더 멀리 있는 역까지 걸어갔다. 바깥에 좀 더 오래 있고 싶었다.
평일 낮은 한적했고, 길가의 차들은 빵빵거리며 제 갈 길을 가느라 바빴다. 고작 이틀 병원에 있었는데, 왠지 모를 해방감에 나는 뛰듯이 걸어갔다. 달라진 것 내 옷차림뿐인데 잠시 다른 세상에 있다 온 기분이었다.
밖을 아무렇지 않게 걷고 있자니 평범하게 건강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지금 내가 아픈 것도 별 일 아닌 것 같고, 나에게 일어난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멀쩡했던 예전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일었다. 잊지 않고 찾아와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는 통증 때문에 곧 깨질 수밖에 없었지만, 집에 가는 길이 행복했다. 나는 일상으로 돌아옴에 안도했고, 금방 괜찮아질 것 같다 낙관하게 되었다.
2박 3일 입원기간 동안, 총비용은 180만 원 정도 나왔다. 그동안 여러 검사와 치료가 시행되었고, 이후 치료비 내역서를 꼼꼼히 읽어본 후 나는 도수치료 비용이 제일 아깝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른 병원에 가도, 그러니까 일반적인 동네 병원에서도 도수치료의 가격이 이 정도(10만 원 내외)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도수치료는 두통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치료이기도 했다.
입원 시 받은 도수치료는 나쁘지는 않았지만, 크게 좋지도 않아서 나는 이곳에서 다시 도수치료를 받을 일은 없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시험 삼아 도수치료를 받아봐야 좋은지 아닌지 알 수 있으니, 단지 내 마음에 차지 않는다 해서 병원을 탓할 일은 아니었다. 같은 치료라도 감상은 사람마다 다를 테고, 어떤 사람에겐 또 엄청 만족스러웠을 수도 있다.
나는 도수치료나 한의원처럼 사람을 많이 타는 일은 좋으면 계속하고, 아니면 다른 맞는 곳을 찾으면 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좀 더 나에게 맞는 치료나 도수 치료사, 병원을 찾는데 필요한 초기 비용이라 생각하면 (10만 원은 비싸지만) 감수할 만하다 보았다.
그러나 환자에게 제대로 된 고지 없이 실행한 것이 불쾌했다. 고지하기는 했다. 형식적으로 하는 말에 환자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정해져 있는 것 같아서 그렇지. 그렇게 얼렁뚱땅 비급여치료가 진행되었다.
급여와 비급여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급여는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종목이고, 비급여는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여 환자가 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종목이다.
대체로 비급여치료는 해당 환자에게 필수적이지 않으나, 개인이 추가로 원할 경우 시행하게 된다. 대표적인 비급여사항으로 (질환이 아닌) 성형외과나 피부과에서 받는 시술을 떠올릴 수 있다. 또 당뇨환자가 팔에 부착하는 혈당측정기가 그러하고, 만성 편두통 치료 목적으로 사용되는 보톡스와 엠겔러티가 그러하다.
(비급여 치료는 대체로 일반적인 치료보다 효과가 덜하거나, 필수적이지 않은 치료이기에 보험혜택 대상에 들지 못한다. 그러나 효과적인 치료임에도 아직 급여 혜택을 받지 못한 경우도 있다)
비급여치료에 대한 안내가 의무사항은 아닐 것이다. 병원에서 시행되는 대부분의 치료처럼 비급여치료 또한 관성적으로 시행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병원을 가더라도 (보험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검사나, 비급여치료에 대해 미리 고지를 한다.
우선 비용이 많이 나온다는 것이 첫째고, 둘째로 필수적인 치료가 아니기에 환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돈이 더 드는데, 이를 추가로 하겠냐는 선택권을 말이다.
운동치료와 도수치료는 눈에 띄는 효과를 바로 체감하기 힘들다. 일상적인 생활 변화처럼 꾸준히 시간을 들여야 한다. 만약 치료에 필수적인 사항이고, 그 효과가 명백하다면. (질환에 유의미한 효과가 있다면) 이미 보험 혜택이 적용되어 급여 사항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비용을 더 지불할 의사가 있는 사람이 하는 선택적인 치료, 비급여치료인 것이다.
웬만한 부자가 아니고서야 금액을 모르고 물건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 심지어 내가 물건을 구매하는지도 모른 채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이 있는가. 만약 물건을 구매하는지도 모르고 구매한다면, 이는 혹 강매 아닌가?
병원에서 의사가 하는 말, 시행하는 검사, 처방하는 약에 대해 우리는 의심하진 않는다. 왜? 단순히 그렇게 의심하고, 날 세우고 살면 팍팍해서 어쩌냐의 문제가 아니라 병원과 의사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여타 분야보다 우리는 의료기관과 의료인에게 견고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
(설사 믿음이 없다 하더라도,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뒀을 수도 있다. 다른 전문적인 영역이 그렇듯 심화된 의학지식은 다른 직업군의 사람이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그러나 사람이 정말 감이라는 게 있는지 아픈 와중에도 뭘 이렇게 많이 하는지, 아니 뭘 많이 해도 상관은 없는데, 정말 다 필요한 검사인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또 좀 잘해주면 그냥 넘어갈 텐데,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이 후루룩 진행하니 왠지 얼렁뚱땅 해치워 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비급여 비용이 다 얼마야)
어떤 검사를 해서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왜 이 검사를 시행하는지,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 등 피드백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무언가를 시행하기 급급했다. (내가 내 상태에 대해 많이 또 자세히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기에 더욱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치료에 있어 환자가 굳이 매우 깊은 부분까지 알 필요 없다는 것을 안다. 혹 말해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명이 없어도 너무 없잖아. 최소한의 설명은 해줘야지. 지금 하는 검사, 처치, 복용 약물. 그 모든 대상은 결국 다 나란 말이다.
처음엔 내가 눈탱이 맞은 게 아닌가 싶었다. 의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 제대로 된 권유와 선택의 과정 없이 비급여검사와 진료를 너무 당연하게 진행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화가 나서 퇴원하고 몇 주가 지난 즈음엔 불만이 가득 담긴 후기를 꼭 쓰고 싶었다. 하고 싶은 말이 머릿속에서 뱅글뱅글 돌아다녔다. 할 말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막상 쓰려고 하니, 안 그래도 힘든데 이런 (마이너스적인) 곳에 내 정신과 에너지를 쓰는 게 너무 버겁게 다가왔다. 귀찮고, 의미 없고, 하기 싫고. 뭐 그런 여러 이유였다.
무엇보다 과잉진료라 주장하기엔 좀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과정이야 어찌 됐건) 두통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치료와 검사였기에 이를 가지고 뭐라 강하게 말하기 주저됐다. 미묘한 경계를 잘 파고들었구나 싶을 만큼 난 그렇게 느꼈다. 더불어 무성의한 설명이든 어쨌든 내 동의(아닌 동의) 하에 비급여치료를 받아버렸으니 돈은 내야 하지 않겠는가.
이후 각 검사가 어떤 것인지 찬찬히 알아보면서, 내가 받은 여러 검사가 비단 이 병원만이 아닌 다른 신경과에서도 많이 실시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반드시 필요하진 않아도 도움이 되는 검사'를 시행하는 건 이 병원 한 곳만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2차 병원은 비용은 들지만, (살짝 눈탱이도 맞을 수 있지만) 분명한 장점이 있다. 신경과, 정형외과 등 여러 병원을 내원할 필요 없이 빠르게 검사하고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비용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는다면, 특히 마음이 급하거나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람에겐 더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퇴원 후 나는 긴 시간 동안 도수치료를 하고, 요가를 하고, 필라테스도 했다. 한의원에 가서 침도 맞고, 물리치료도 받았다. 신경과에서 하는 정석적인 치료와 함께 여러 방향에서 도움이 될 만한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실제로 많은 두통환자들이 이와 같은 부가적인 치료를 병행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내가 선택한 것이다. (정말 필요한지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판별하는 데 주변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언제 어느 시간에, 어떤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금액을 지불할지 마지막 결정을 내린 사람은 나였다.
후루룩 말도 안 하고 진행하는 비급여 검사들. 도움은 되지만 필수적이지 않은 사항들. 뒤늦게 병원에 뭐라 하기도, 가까운 사람이라 해도 불만을 강하게 성토하기 뭐한 그때 내 마음을 긴 시간이 지나 쏟아내 본다. 이리 성토 글을 쓰니 뒤늦은 한이 풀린 것 같다.
참고로 이는 개인의 한 후기일 뿐이니 일반화하진 않길 바란다. (이렇게 길게 말해놓고 설득력 없게 느껴지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