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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약 Oct 08. 2021

다시 만난 의사

강남 신경과 9 - 신경과 후기

나의 몫



병원에서 처음 입원을 권유할 땐 분명 하루만 입원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토요일 하루 입원하고, 다음 날인 일요일이면 퇴원할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입원하기로 마음먹자, 입원기간은 하루 더 늘어난 2박 3일로 바뀌어 버렸다. 퇴원을 하려면 의사를 만나야 하는데, 일요일엔 의사가 출근을 하지 않아서 월요일로 미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좀 미리 말해주던가!) 의사는 내가 입원을 결정하자 월요일에 월차를 낼 수 있는지 꼼꼼히 물어보았고, 다행히 가능해서 퇴원은 월요일 오전 중으로 결정되었다.


아무리 바쁜 의사라도 쉬어야 하고, 휴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의사가 출근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사람이 이렇게 아픈데도 의사는 주말 다 챙겨서 쉬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의사가 쉰다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내가 이렇게 아파도, 의사마저 정도 이상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처음엔 당황했고, 나중엔 그 사실이 나에게조차 너무 당연하게 다가와서 좌절했다. 새삼스럽게도. 그래, 내가 아픈데, 의사가 뭐라고 나를 돌보겠다고 휴일을 반납하고 붙어있겠는가?


의사는 환자를 보는 일을 업으로 삼기에 나도 모르게 또 한 번 기대를 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의사도 다른 누구와 마찬가지로 내 아픔에 큰 관심이 없었다. 새삼 이 고통은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온전한 내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이다지도 타인의 아픔에 무관심하구나. 

그리고 이런 깨달음이 나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사람에겐 혼자 견뎌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고, 그때 나를 챙길 수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뿐이었다.











입원이 필요했을까?





내가 아프니까,

진정한 의사라면 쉬는 날 다 반납하고 환자를 돌봐야 해.





라고, 의사라는 직업에 과도한 책임의식을 부여하려는 것이 아니다. 무자비하리만치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추구해서도 아니었다. (나도 통과할 수 없을 듯) 

누구도 내 고통에 진정 공감할 수 없다는 차가운 현실과 맞닥뜨린 것과 별개로 무엇이 내 마음에 걸렸던 건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왜 나는 퇴원이 미뤄진 게 내키지 않았을까? 단순히 나에게 미리 고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입원 환자가 여럿인데도 병원에 상주하는 의사가 없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웠던 것 같다. 의사도 없는데 주말에 병원에 있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급한 환자는 없어 보였지만) 혹시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응급실을 가야 하나? 아니, 위급할 때 응급실을 따로 찾을 거면 굳이 입원할 필요가 있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입원을 한다는 건 그만큼 환자의 상태가 위중하거나, 의사가 보기에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고, 무엇보다 적절한 상황에 적절한 처치를 받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의사가 없다면 입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형외과의 관절 수술처럼 일정 기간 몸을 움직이지 않기 위해 하는 입원이라면 또 모르겠다)




내가 갔던 병원은 입원실을 보유하고 있는 동네 2차 병원이었고, 신경과 의사는 딱 1명뿐이었다. 당직의가 있었는진 모르겠는데, 만약 있었다 하더라도 신경과 전문의는 아니었을 것이다. (일요일엔 출근하지 않는다 했으니까) 

규모가 크지 않은 병원이라, 전문의 과정 중인 신경과 레지던트가 있을 만한 곳도 아니었다. 즉 당직의가 있다손 치더라도, 신경과에 대한 지식은 (인턴 때의 경험으로) 한정돼 있을 거라는 이야기다. 


당연히 의사 선생님이 안 계시는 것보단 낫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신경과를 전공한 의사가 상주할 필요 없는 환경과 상황에 환자가 굳이 입원을 선택할 이유가 있나 싶은 것이다. 문득 이번 입원이 나에게 꼭 필요한 일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 동안 나는 의사가 미리 처방 내고 간 약을 먹고, 링거를 맞았다. 혹 링거 때문에 입원을 한 건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설마)


그리고 월요일, 의사를 만나 퇴원 절차를 밟았다.












다시 만난 의사



이틀 전 병원을 처음 찾았을 때 오랜 시간 기다렸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금방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입원 환자를 우선적으로 다 만난 후, 외래 환자(예약환자나 방문환자)를 보는 것 같았다. 


새로 병원을 방문한 환자가 며칠 전 내가 앉았던 바로 그 자리를 채우고 있고, '입원한 환자들이 이렇게 많아?' 내심 놀라며 힐끔힐끔 시선을 두던 그곳에 사뭇 익숙해진 내가 앉아 있었다. (이틀 만에 익숙해지더라고작 며칠 사이에 뒤바뀐 위치에 기분이 이상했다. 지금 내가 아프고, 치료가 필요한 환자라는 걸 그때 처음으로 인식했던 것 같다. 쉽사리 의기소침해졌다.


의사를 만났다. 의사는 차도가 있는지 물었고, 나는 조금 나아졌지만 아직도 많이 아프다고 했다. 나는 의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그러나 '아직 아프다'는 내 말을 듣고도 '낫게 해 주겠다' 호언장담한 며칠 전의 자신을 잊은 것처럼 의사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모른 척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때 자신이 무슨 말을 했던 것 마냥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다. 


그래도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어떤 언급이 있을 줄 알았는데 입을 싹 닫고 넘어가다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처럼 굴었다) 그런 말을 하지나 말던가. 본인은 민망해서 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무책임해 보였다.


그러나 결과만 두고 보자면, (솔직히 말하면) 사실 그럴 줄 알았다. 혹시 했지만 역시나 랄까. 누구보다 내가 간절히 바랬지만, 동시에 나는 하루 만에 나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일엔 정도가 있을 텐데, 내가 보기에도 나는 그리 쉽게 한 번에 나을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더욱 하루 만에 낫게 해 주겠다는 의사의 반응이 의외였고, 믿기 힘들었지만 정말 믿고 싶었다. 


하나 다행이라면, 큰 기대가 없기에 실망도 적었다. 배신감은 있었지만 이 정도 상태면 견딜 수 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의사의 당부



의사는 나에게 3가지를 당부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라.
많이 걸어라.
온도계/습도계를 사라.



의사가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았는데 본인도 편두통을 앓고 있는 것 같았다. (편두통을 앓고 있는 의사들은 생각보다 많다) 의사는 온도계, 습도계를 사라는 말과 함께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습도계를 보여줬다. 온도계는 많이 봤는데, 습도계는 일상에서 거의 볼 일이 없던 터라 조금 낯설었다. 원하는 환경을 조성하라는 말이 기억에 남으면서도 지금 나에게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당시 나는 9호선 급행을 타고 출퇴근을 하고 있어서 출퇴근길이 매우 힘들었다. 바깥공기가 통하지 않고, 빽빽하게 사람들 사이에 껴서 집에 가야 했다. (다른 사람은 안 그러겠냐만, 버텨낼 체력이 현저히 부족했다) 의사는 저녁에 피로하더라도 좀 걷고 나서 지하철을 타라고 했다. 바깥에 한시도 있기 힘든데, 밖에서 걸으라니? 당황스러웠다. 지금의 난 실천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의사의 말을 종합해보면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라는 거였다. 규칙적인 생활은 건강의 기본이며, 가벼운 산책이 두통에 도움이 된다는 건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때 나는 너무 아팠고, 기껏 한다는 말이 단순히 생활습관을 변경하라는 말이라 많이 실망스러웠다. 단순히 생활습관을 바꾼다고 머리 아픈 게 당장 낫겠는가? 최소 몇 개월 정도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한텐 그 몇 개월을 버터낼 힘(또는 견뎌낼 일시적인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의사가 말한 대로 당장 입원하고, 수액을 맞고 알맞은 처치를 했는데도 계속 아팠다. 나는 아픔을 호소하면, 약을 바꾸거나 다른 치료를 하거나, 뭐가 됐든 어떤 조치가 내려질 줄 알았다. 그런데 다른 변경사항 없이 단순히 생활습관을 변경하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내가 원하는 건 즉각적인 치료였고, 실제로 변화를 있는 무엇이었다. 정말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걸까? 아니면 하지 않는 걸까? 혹 할 필요가 없는 걸까? 나 혼자 답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너무 심하게 아파서 모든 약이 잘 듣지 않는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치료와 함께 몸이 천천히 나아질 시간이 필요했던 걸지도 모른다. 퇴원 후에도 한동안 끔찍하게 아팠던 걸 떠올려보면 정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마음이 꼬인 나는 뭐 대단한 말이나 해준다고 퇴원을 미뤘나 싶고, 입원을 한 것도 영 효과를 모르겠어서 모든 게 다 한심해 보였다. 심하게 아플 때 응급실에 가면 그래도 확연히 나아져서 온다는데, 나는 도대체 뭘 했길래 이렇게 차도가 없는가 싶었다. 이젠 의사가 아무리 확신에 차 말해도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다음 예약을 잡았다. 당장 미칠 듯이 아팠던 벼락 두통은 나아졌으니까. 아직 많이 아파도 분명 나아진 부분도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그 상황에서 내가 손을 내밀 다른 선택지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당장의 천둥은 멎었으나, 장대 같은 비는 계속 쏟아지고 있었다. 언제 다시 천둥과 번개가 칠지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비를 뚫고 갈 힘이 없었다. 


다음 내원일은 5일 후, 토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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