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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약 Sep 19. 2021

두통과 안구통증 : 녹내장을 의심하다

조짐은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일한 곳은 규모가 크지 않은 제약회사였다. 대부분 사무직이 그렇듯 나도 대부분의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내야 했다. 장시간 같은 자세로 앉아있으니 몸이 뻐근했지만, 일하면서 몸이 아프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가끔 왠지 모르게 답답하다고 느꼈는데, 규모가 작은 집단 특유의 일을 처리하는 방식 때문인지 아니면 미처 몰랐던 두통의 영향 때문인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음으로 내가 일한 곳은 메디컬빌딩 아래에 있는 약국이었다. 매일 수백 건 씩 쏟아져 나오는 처방전을 소화하는 게 정말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비좁은 약국이었다. 매출 규모에 비해 약국 면적이 안타까우리 만치 작았고, 조제실은 더 협소했다. 한 걸음만 잘못 움직여도 다른 사람과 부딪치기 일쑤였다.


매일 바쁘게 돌아가는 이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어지러움을 경험했다. 그전까지 어지러움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지금 내가 어떤지, 어지러운지도 잘 몰랐던 것 같다. 좁은 곳에서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컨디션이 떨어지고, 몸을 갈아가며 일하는 게 버거워서 그런 줄 알았다. 일하는 중에 상태가 이상해졌다가도, 어찌어찌 일을 하다 보면 곧 괜찮아졌다.

환기가 안 되는 좁은 공간에 오래 있어서 혹, 산소가 부족해서 그런가 싶기도 했다. 산소가 부족하면 답답하고 어지러울 수 있단 말은 들어본 적 있었다.









안과만 주구장창



안과적 증상은 두통만큼이나 나를 힘들게 했다. 두통이 심각해진 후에는 2차적인 문제로 밀려났지만(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그전까지 나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바로 눈이었다.


나는 편두통을 진단받기 전 1-2년 정도 안과를 참 많이 다녔다. 가다 보니 5군데는 간 것 같다. 직장 근처 안과, 집 근처 안과, 시력교정수술을 받았던 안과, 또 녹내장 검사를 위해 3차병원도 갔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방문한 안과에서 (드디어) 신경과를 가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내가 이렇게 안과만 주구장창 찾았던 까닭은 내게 안과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내가 겪은 증상 대부분이 눈과 관련되어 있었다. 나는 틀림없는 (뇌가 아닌) 눈의 문제라 생각했다.






그때 나는,

어지러웠다. 방향을 바꿀 때(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볼 때와 같이) 특히 그랬다.

고개를 돌릴 때 시야가 늦게 따라오는 느낌이었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한 곳을 오래 바라보기 힘들었다.

초점을 맞추기 힘들었다.  

시야가 흔들리는 증상이 있었다.

안구통증이 있었다.

안구통증은 오른쪽이 심했는데 눈, 눈 밑, 눈 옆, 그리고 머리까지 이어졌다.

눈이 아프기 시작하면 머리도 아팠다. (통증의 시작이 눈이었기 때문에 눈 때문에 머리가 아픈 줄 알았다)

양 눈의 거리 감각 달랐다. 오른쪽이 멀리 보였다. 복시인가 의심했다.

눈이 피로했다.

시야가 좁아지는 증상이 있었다. 덜 보였다.







뭐라 설명할지 모르겠는데, 어쨌든지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혹 시력교정수술 후에 올 수 있는 근시퇴행인가 싶어서 라섹수술을 받았던 안과 A를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시력이 살짝 저하됐지만,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검진 때마다 조금씩 변할 수 있는 정도, 0.1 정도의 차이였다.  


시야 좁아졌을 땐 내가 볼 수 있는 범위가 정면으로 180도가 안 되는(그보다 한정된) 느낌이었다. 양 옆으로 10도씩은 안 보이는 느낌이랄까. 길을 가다 나무에 부딪칠 뻔하기도 했다. 무언가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한데, 나는 너무 불편한데 안과에 가면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답답했다.









아는 게 병




시야가 좁아지는 증상이 계속되자 겁이 났다. 보이는 범위가 좁아지는 건 녹내장의 대표적인 증상이기 때문이다. 아는 게 병이라고, 나는 녹내장을 의심했다.


녹내장은 시신경이 서서히 손상되는 질환으로, 손상된 시신경만큼 볼 수 있는 범위가 줄어든다. 또, 한 번 죽은 시신경은 다시 되살릴 수 없다. 평생 좁아진 시야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제 때 치료하지 못하면, 보이지 않는 범위가 점점 커지면서 실명까지 이를 수 있다. (주변 시야가 먼저 손상되고 중심시력은 늦게까지 보존된다) 녹내장은 실명의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해서 빠른 검진과 약물치료로 진행을 늦추는 게 우선이다.


또한 녹내장의 특징으로 안압의 상승이 있는데 (안압이 상승하는 녹내장이 있고, 안압이 정상인 녹내장이 있다), 나는 내가 느끼는 안구통증이 안압이 높아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대뜸 녹내장을 의심하진 않았다는 말이다. 내가 겪는 수많은 안과 증상과 두통이 녹내장 때문일까 두려웠다. 그래서 그동안 가장 자주 찾아갔던 안과A(시력교정수술을 받았던 안과)에서 녹내장 검사를 하기로 했다.









녹내장 검사





2017년 7월 25일 진료비 총액 11만 원 넘게 나온 날이 녹내장 검사를 한 날인가 보다. 나는 녹내장 검진 비용으로 35,500원을 냈다(환자부담액). 그리 부담가지 않는 가격이었다.


녹내장 검사는 아마 여러 가지를 했겠지만(정확히 뭘 한진 모른다), 기억이 나는 검사가 하나 있다. 시야가 얼마나 손상됐는지 판단하는 검사인데, 청력검사할 때 소리 나는 쪽 손을 드는 것과 비슷했다. 어두운 공간에서 녹색 불빛이 여러 방향에서 산발적으로 깜빡이는데, 빛이 보이면 버튼을 누르라고 했다.


환자의 반응으로 결과가 나와서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아주 진지하게 임했다. 내가 살짝 느리게 했거나, 안 누르고 지나치거나 하면 괜히 마음이 안 좋고, 저쪽 시야가 덜 보이는 결과가 나올까 봐 걱정되고 그랬다. 정확한 결과가 나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몇 번 놓쳤다고 안타까움을 담아 말했더니, 환자가 놓칠 수 있다는 걸 감안하고 하는 검사라고 했다.


듣고 보니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검사를 하는 의미가 있으려면 당연히 그러할진대, 나는 굳이 한 번 더 물었던 것이다. 양쪽 눈 번갈아 가면서 시행하는데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마 나는 불안했던 것 같다.









검사 결과



네이버 이미지 검색



검사 결과도 바로 받아볼 수 있었다.


검사 결과지에는 시야 범위를 뜻하는 동그라미가 여러 개 나오는데, 초록이 '정상'이고 노랑이 '주의'라고 했다. 빨간색은 '부정적인 의미'였다. (다른 건 다 모르겠고, 설명도 자세히 해주지 않았다. 들어도 잘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내 결과지에는 노랑이 몇 개 있었다!! 이런! 역시 내 예상이 맞았던 거였어. 아니길 바랬는데, 그랬던 거였어. 이상한 희열과 함께(원치 않는 답을 맞혔다) 나는 큰 병원에서 다시 한번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3차병원까지 갈 필요 없는데, 내가 하도 걱정하고 이상이 있다고 하니까 진단서를 써주신 거 같다. 말도 없고 참 점잖은 의사선생님이었는데... 노란색이 있어도 이 정도면 '정상'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드디어 내 증상에 대한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아서 의사의 말을 무시했다. 왜 선생님 말을 안 들었나 싶은데, 나는 불편한데 자꾸 문제없다는 뜻을 표하는 의사선생님을 마음 저 깊은 곳에선 믿지 못했던 것 같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다. 아니면 계속 안과 A를 찾진 않았을 거다)


고속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는 대학병원이 안과로 유명하다길래, 이곳에 예약을 잡았다. 후련한 마음으로 진료일을 기다렸다. 진료의뢰서에 적힌 내 진단명은 '녹내장 의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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