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 결혼식에서 배운 사랑
시디키 디아바테가 온다니.
그의 모습이 보이기 전까지, 지금 이 상황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아 온몸이 떨렸던 기억이 난다.
코라가 아니었다면 바마코까지 올 일도 없었을 것이고, 시디키 디아바테를 만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와 짧은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은 뒤, 경건한 마음으로 2부의 시작을 맞이했다.
시디키는 첫 곡으로 람방(Lamban)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람방은 젤리(djeli, 음악 세습가)들의 가장 오래된 춤이자 음악으로, 기록으로는 이천 년이나 되었다.
'모든 것이 흘러넘친다'는 뜻을 담고 있는 이 리듬은, 13세기 만데 제국의 시기를 거치며 말링케(Malinke) 젤리들이 서아프리카 곳곳에서 권력을 장악하게 되면서, 여러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세월이 흐르며 말링케 전통은 공연화되고, 서구로 확산되면서 각기 리듬과 춤이 지닌 맥락과 의미가 점차 희석되었다.
그 과정에서 람방은 일부 지역에서 산디아(San은 year, Dia는 good, well이라는 뜻) 라는 이름으로 잘못 전달되기도 했지만, 공통적으로 이 춤은 젤리들이 신에게 자신들의 삶에 음악과 춤을 준 것을 감사하며 기뻐하며 추는 춤이다.
그래서 한국에 있을 때부터, 공연을 위해 만들어진 발레가 아닌 삶 속에 살아 있는 람방을 직접 보고 싶다는 염원이 내 안에 있었다.
시디키 자바떼의 람방 맬로디 위로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아미 디아바테의 노래가 시작됐다.
코라의 흐름에 맞춰 그랑부부(서아프리카 전통 의상)를 입은 젤리들이 한 사람씩 원 안으로 들어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멜로디의 정체성 구간이 드러나는 순간, 젤리들은 기가 막히게 고개를 하늘에서 땅으로 떨군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1968년, 유엔 무대에서 기니발레단(Les Ballets Africains)의 젤리들이 람방을 추는 영상을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이 떠올랐다.
인간이 어떻게 살면 저렇게 춤출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몸이 쓰러질 듯 바닥으로 떨어지며 물결처럼 흔들리던 그 움직임 속에 말링케 젤리들의 정수가 담겨 있다고 느꼈었다.
그 움직임이 지금, 다시 결혼식 원안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펄럭이는 그랑부부의 빛깔 사이로, 삶의 각가지 색깔이 눈앞에서 흔들거리며 다가왔다.
세상을 믿고 삶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해야 저렇게 춤출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만딩카 코라 음악에서 느껴왔던 리듬과 맞물리는 그들의 몸의 시간, 삶의 움직임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한을 풀어내듯 목을 놓아버리는 젤리들의 춤을 보고 나서야, 나는 다시 결혼식 원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하나하나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이 둥그렇게 둘러앉은 커다란 원 안에서는 동시다발적으로 수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의자를 어디에 놓을지, 누가 어떤 행동을 할지, 젤리들의 노랫말들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각자 소리를 높여 자기의 의견을 내놓는다.
그렇게 이곳, 저곳에서 끊임없이 사람들의 상호작용(의사소통)이 일어났다.
격렬하게 서로를 마주하면서도, 다른 채 함께 살아간다고 느꼈다.
울고, 화내고, 소리치고, 웃고, 기뻐하는 모든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는 원 안에 앉아
사람들이 살아가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자 하니, 삶의 진국을 맛보는 기분이었다.
그들을 보자니, 나는 그렇게 격렬히 소통하지 않으며 살고 있는 것 같다 느꼈다.
삶은 어렵지만 사랑은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다
시디키 자바떼의 노래 속에 담긴 말이다.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겪어야 했던 수많은 고통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흐려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것은 결국 다른 생명을 위해 내 생명을 내어주는 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내가 느끼는 사랑의 정수라 느낀다.
고통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불완전한 서로를 사랑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나와 상대의 고통을 마주하고, 사랑의 힘으로 생명을 바쳐 다른 생명을 살리는 길을 선택하며..
우주가 살아있도록 허락해 준 시간만큼, 살아있는 동안에.
“누군가를 살리려면 생명을 바쳐야 해.
자기 영혼을 안 팔고 다른 존재의 영혼을 쓰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는 거야.
너는 다른 길을 걸어왔어-시비리”
그날, 늦은 밤까지 결혼식에서 나를 챙겨준 바부야와 아빌라예의 얼굴이 떠오른다.
내가 고통스러운 이유가 그런 것이라면, 그날은 차라리 그것이 위로처럼 느껴졌다.
내가 감당해 온 고통이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믿고 싶어졌다.
그렇게 이 고통스러운 삶을 잠시라도 위로할 수 있다면,
람방의 의미처럼 이미 흘러넘치는 삶일지도 모른다.
그날 결혼식의 원 안에서, 나는 다시 감사와 사랑의 힘을 배웠다.
Kumbengo 쿰벵고
쿰벵고는 (“머리가 만나는 것(head meeting)”을 의미함)는 코라(kora) 음악의 반주(l’accompagnement)에 해당된다. 코라의 소리를 가장 잘 대표하는 연주 기법이자, 코라 음악의 기본 토대를 이루는 이 기법은 주로 이중음(duplets)과 삼중음(triplets)으로 구성된 오스티나토로, 선율/성악 라인인 donkilo(“춤의 호출(dance call)”을 의미함), 즉흥연주인 sataro(“관련되거나 낭송하는 것”), 그리고 두드림 리듬인 konkon(“똑똑(knock-knock)”이라는 의성어)과 서로 얽히며 다차원적인 질감을 짜낸다.(1)
Birimintingo 비리민팅고
비리민팅고는 코라 음악에서 사용되는 즉흥적인 솔로 연주 스타일을 의미한다. 고정된 리듬 패턴인 쿰벵고와 대조되는 멜로디 라인을 특징으로 한다.
(1) https://www.dianarowan.com/world-harp-techniques-chapter-3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