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의한 정치력보다, 책임이 공존하는 권한에서 나오는 힘
기업의 모든 문제는 ‘힘의 흐름’을 따라가면 보인다. 어떤 조직은 일의 논리로 움직이고, 어떤 조직은 사람의 관계로 움직인다. 겉으로 보기엔 둘 다 부드럽고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그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운영의 탁월성으로 이어지고, 후자는 정치의 피로감으로 이어진다. “어떤 말이냐?”보다 “누가 한 말이냐?”가 더 중요한 조직에서는 결국 진실보다 관계가, 실행보다 눈치가 앞선다. 이것이 바로 많은 중소기업이 성장의 속도를 잃는 결정적 이유다.
관계에서 나오는 힘 - 온기와 불신이 공존하는 조직
가상의 회사 A는 창업 15년 차, 매출 400억 원 규모의 생활소비재 기업이다. 회사 내부는 ‘가족 같은 문화’로 유명하다. 대표와 10년 이상 함께한 임원들은 매일 점심을 같이 하고, 모든 결정은 회식 자리 나 사무실 복도에서 이뤄진다. 문제는 ‘가족 같은 문화’가 업무 프로세스의 부재를 감추는 말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회의에서는 “그건 부장님 생각이시잖아요”가 논리보다 강하고, 실적보다 관계가 인사의 기준이 된다. 의견은 자유롭지만 실행은 불투명하고, 책임은 흐릿하다. 이런 조직의 리더십은 따뜻하지만, 일의 결과는 차갑다.
권한은 역할이 아니라 관계의 깊이에 따라 배분되고, 책임은 늘 ‘우리 모두의 일’로 희석된다. 그 결과 ‘누가 말했느냐’가 판단의 기준이 되고, 일의 방향은 늘 사람의 감정선 위를 따라 흔들린다. 이 조직은 겉보기엔 충성심이 강하지만, 실제로는 내부 경쟁과 정체가 공존한다.
정치는 회사를 안정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일의 속도를 늦추고 학습의 기회를 빼앗는다.
일에서 나오는 힘 - 권한과 책임이 맞물린 조직
반면 가상의 회사 B는 온라인 기반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다. 이 회사의 핵심 가치 중 하나는 “권한의 크기가 책임의 크기를 결정한다”이다. 회의에서는 ‘누가 말했느냐’가 아니라 ‘그 말의 근거가 무엇인가’를 묻는다. 리더의 역할은 통제자가 아니라 조정자다.
성과가 좋은 직원은 누구의 사람인가 보다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가로 평가받는다. 모든 프로젝트는 책임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실패는 책임이 아니라 학습으로 남는다. 결과적으로 B사는 빠른 피드백과 자율적 실행이 가능한 일 중심 조직으로 성장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B사가 특별한 IT 기업이어서가 아니라 ‘힘의 구조’를 의도적으로 설계했기 때문이다. 권한이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의 프로세스와 데이터에 위치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힘의 구조를 바꿔야 조직이 다시 움직인다
리더십은 결국 ‘조직의 힘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바꾸는 일이다. 조직의 힘이 사람의 관계로 흐르면 감정의 관리비용이 커지고, 조직의 힘이 일의 논리로 흐르면 성과의 누적이 이루어진다. 경영자가 해야 할 일은 힘의 원천을 관계에서 일로 재배치하는 것, 즉 리타겟팅 된 전략에 따라 일, 그리고 권한과 책임으로 힘의 방향을 리스트럭쳐링 하는 것이다.
리스트럭쳐링은 단순한 조직 개편이 아니다. ‘누가 힘을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무슨 권한과 책임이 어떤 일에 있는가’로 바꾸는 일이다.
O&O DD(Operational & Organizational Due Diligence, 조직과 운영관점의 기업진단) 관점에서 보면 조직의 구조를 진단할 때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이 조직에서 힘의 원천은 사람인가, 일인가?”
“권한과 책임은 데이터와 시스템 위에서 작동하는가, 관계망 안에서 작동하는가?”
“리더의 발언은 근거에서 나오는가, 위계와 정치에서 나오는가?”
이 질문을 통해 조직 내 힘의 구조와 원천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를 토대로 리스트럭쳐링이 필요한 부분, 즉 권한과 책임의 재배치가 요구되는 지점을 설계해야 한다. 결국 실행단계에서 발휘되는 운영의 탁월성은 기술이 아니라 설정된(Retargeting) 전략으로 힘의 무게중심을 이동시키는 것에서(Restructuring) 시작된다.
“누가 말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말했느냐”가 기준이 되는 조직, 그 조직만이 실행의 속도와 품질을 함께 높일 수 있다. 정치는 사람을 움직이지만, 일은 회사를 움직인다.
투자자
1. 이 조직의 의사결정 구조는 직급 중심인가, 데이터 중심인가?
2. 리더십의 영향력은 관계망에서 오는가, 시스템 설계에서 오는가?
3. 권한과 책임의 재배치(리스트럭쳐링)가 가능한 구조적 유연성이 있는가?
경영자
1. 우리 조직에서 가장 힘 있는 사람은 일을 잘하는가, 사람을 잘 아는가?
2. 회의와 보고에서 데이터가 감정보다 우선하는가?
3. 권한을 부여할 때 사람의 충성심이 아닌, 일의 중요도를 기준으로 하고 있는가?
팀장
1. 팀 내 발언권은 직급에 따라 정해지는가, 근거에 따라 정해지는가?
2. 책임과 권한이 맞물려 있는가, 아니면 책임만 남는 구조인가?
3. 일의 논리로 대화할 수 있는 팀의 문화를 만들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