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아픈 손가락, 인사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부정보다 더 파렴치한 것은 사람을 망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의 강점을 살리지 못하고 잘못된 자리에 배치하는 것이야말로 조직에 가장 큰 손실이라는 뜻이다. 경영의 본질은 결국 사람을 제대로 쓰는 데 있다. 신년 초 전략적 선택을 마쳤다면 이제는 실행의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 실행은 곧 사람과 자원을 선택한 곳으로 재배치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특히 사람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가 성패를 가른다.
전문 인사 조직을 갖추기 어렵지만, 현장에서 구성원들의 장단점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중소기업 경영자에게 인사는 언제나 골칫거리다. 누구에게 권한을 위임해야 할까. 누구를 키우고, 누구와는 결별해야 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조금 더 실용적인 기준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기준은 단순하다. 역량에 대한 주관적 자기 인식과 주변 사람들이 바라보는 객관적 평가다.
이 두 축을 교차하면 조직의 구성원은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 유형은 자신도 유능하다고 생각하고, 주변의 평가 역시 높은 사람들이다. 조직의 핵심 인재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통제가 아니라 권한과 신뢰다. 보고서 한 줄까지 고쳐주거나 결재 단계를 늘리는 순간, 이들은 다른 무대를 찾기 시작한다. 리더의 역할은 방향 설정, 중간 점검, 성과 평가에 그쳐야 한다. 파격적인 위임과 명확한 보상이 이들을 움직인다.
스티브 잡스의 마이크로매니지먼트는 애플의 초기 혁신 동력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가 애플을 떠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반면 픽사에서는 감독과 핵심 제작진에게 과감하게 권한을 위임했고, 이는 픽사 애니메이션의 폭발적인 성공으로 이어졌다.
두 번째 유형은 본인도 부족함을 느끼고, 주변의 평가 역시 낮은 경우다. 흔히 문제 인력으로 오해받지만, 실제로는 교육과 훈련의 대상인 경우가 많다. 신입사원이나 직무 전환 초기 인력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에게 즉각적인 성과를 요구하면 위축되고, 팀 전체의 성과까지 흔들린다. 반대로 체계적인 교육과 멘토링을 제공하면 가장 충성도 높은 실무자로 성장한다.
BTS를 탄생시킨 한국의 아이돌 육성 시스템은 노래와 춤뿐 아니라 인성까지 포함한 장기적인 교육과 훈련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견고한 토양 위에서 성장한 아이돌은, 결국 세계 무대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을 보여준다.
세 번째 유형은 스스로는 역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주변에서는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이다. 조직 속에 조용히 묻혀 있는 '흙 속의 진주' 같은 자원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이 아니라 기회다. 작은 프로젝트라도 책임을 맡겨 성과를 경험하게 하면 빠르게 성장한다. 이런 인재를 알아보는 눈 자체가 리더의 역량이다.
최근 방영된 프로그램 '신인감독 김연경'에서 김연경 감독은 인쿠시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꾸준한 관심과 기회를 제공했다. 경기 출전과 코칭을 통해 역량을 끌어냈고, 인쿠시는 결국 프로 구단에 입단하게 된다.
네 번째 유형은 가장 다루기 어렵다. 스스로는 유능하다고 믿지만, 주변의 평가는 낮은 경우다. 회의에서는 적극적이지만 성과가 나쁘면 환경이나 조직을 탓한다. 오래된 중간 관리자에게서 자주 나타난다. 이 유형을 방치하면 조직의 에너지는 정치로 소모된다. 리더는 연민이나 애증이 아니라, 명확한 성과 기준으로 이들을 평가해야 한다. 변화가 없다면 결단이 필요하다.
노키아의 중간 관리자들이 "우리가 최고"라는 확신에 머문 채 스마트폰 시대를 놓친 사례는 경영학의 고전이다. 정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영광에서 벗어나 환경 변화를 인지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나 때는 말이야'에 머무는 사람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
대부분의 경영자가 가장 고민하는 대상은 네 번째 유형이다. 해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첫째, 인간적인 '정'보다 객관적인 평가 '기준'을 먼저 세운다. 구체적인 성과 지표와 행동 기준을 문서화하고, 이를 본인에게도 명확히 공유한다.
둘째, 성과를 내는 인재를 그들의 전면에 배치해 성공 사례를 만든다. 같은 조건에서 다른 사람이 성과를 내는 모습을 보여주면, 환경 탓을 할 명분이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변화의 동기가 생긴다.
셋째, 대화를 통한 코칭으로 마지막 기회를 제공한다. 일방적 통보가 아닌, 본인 스스로 현실을 인식하고 변화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럼에도 변화하지 못한다면, 선택의 순간은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리더십의 본질은 사람을 고치는 데 있지 않다. 사람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일을 맡기는 데 있다. 교육이 필요한 사람에게 책임만 주거나, 기회를 줘야 할 사람을 통제로 묶어두면 조직의 시너지는 사라진다.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는 자신의 역량에 맞는 일을 맡아 성과를 내고, 그 결과를 인정받는 경험이다.
중소기업 경영자에게 '인사'는 늘 아픈 손가락이다. 인재를 뽑고 키워도 더 큰 조직으로 떠나는 일이 잦다. 인사 전문가를 두기 어렵다면 한 가지만 기억하자. 모든 사람을 같은 잣대로 보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마다 다른 기대치를 설정하고, 그것에 맞게 책임과 권한을 설계해야 한다.
9980 사람경영의 작은 첫걸음을 내디뎌 보자. 종이에 2×2 매트릭스, 네 개의 네모를 그리고 구성원의 이름을 적어보자. 이제 보일 것이다. 누구에게 전략적으로 선택한 과제를 맡길지, 누구를 전진 배치할지, 누구와는 면담이 필요한지, 누구를 멘토링으로 연결해야 할지.
사람은 고쳐 쓰는 대상이 아니다.
사람은 생긴 대로 써야 한다.
각자의 특성과 강점을 파악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할 때, 비로소 조직은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투자자 관점의 질문
이 기업의 성과는 핵심 인재 몇 명의 역량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역할과 구조로 재현 가능한가. 조직 내 인재 배치는 성과 기준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가, 아니면 오랜 근속이나 관계에 의해 고착돼 있는가.
핵심 인재가 이탈할 경우에도 대체 가능한 구조와 후속 인력 풀이 존재하는가. 경영진은 인재를 키우는 데 시간을 쓰고 있는가, 아니면 문제 인력을 방치한 채 리스크를 키우고 있는가. 이 회사의 인사 결정은 감정과 관성의 결과인가, 아니면 명확한 기준과 데이터에 기반한 선택인가.
경영자 관점의 질문
나는 사람을 바꾸려 하고 있는가, 아니면 사람에 맞는 자리를 설계하고 있는가. 우리 조직의 핵심 인재에게는 충분한 권한과 신뢰가 주어지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발목을 잡고 있지는 않은가. 성과가 나지 않는 인력에 대해 나는 명확한 기준으로 대화하고 있는가, 아니면 애매한 기대를 반복하고 있는가. 교육이 필요한 사람에게 성과를 요구하고, 기회를 줘야 할 사람을 통제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지금 이 조직의 문제는 ‘사람이 부족해서’인가, 아니면 사람을 잘못 쓰고 있기 때문인가.
팀장 관점의 질문
나는 내 팀원의 강점과 한계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가. 각 팀원에게 맡긴 일은 그 사람의 역량을 키우는 방향인가, 아니면 당장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임시 배치인가. 성과가 잘 나오는 팀원에게는 더 큰 기회와 책임을 주고 있는가, 아니면 모두에게 똑같이 일을 나누고 있는가. 성과가 부진한 팀원과는 기준과 기대를 명확히 합의했는가, 아니면 암묵적인 불만만 쌓이고 있는가. 나는 팀을 관리하고 있는가, 아니면 문제를 떠안고 대신 처리하는 ‘완충재’가 되고 있지는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