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창문이 있다.
어디에나 창문이 있다. 물길에 반들 해진 초록자갈에도, 발끝에 반짝이는 모래알에도.
그것들이 모두 유리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세상이 본래부터 창문투성이었던 것만 같다. 우리는 창문을 벽에 박아두고 그 앞에 서서 바깥을 내다본다. 마치 바깥세상을 유리 너머로만 바라볼 수 있는 것처럼.
창문은 더위와 추위, 빗물과 먼지를 막아내면서도, 동시에 외부의 풍경을 고스란히 비춰낸다. 닫힌 세계와 열린 세계 사이, 안전과 위험의 경계에 유리가 서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유리 앞에 서면 잠시 안도하면서도, 동시에 바깥으로 손을 뻗고 싶어지나 보다. 상처 입지 않고 관계 맺고 싶다는 마음, 벽 속에 숨어 있으면서도 외부를 갈망하는 마음. 창문은 그 모순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서 있다.
길을 걷다 보면 깨진 유리조각이 반짝일 때가 있다. 어제는 술병이었고 오늘은 강가의 자갈로 닳아진 그것이, 작은 창문처럼 햇빛을 반사한다. 모래사장은 어떠한가. 끝없이 펼쳐진 모래알 속에는 유리의 씨앗이 깃들어 있다. 바람에 밀려, 파도에 휩쓸리며 흩날리는 그 수많은 알갱이들 또한 언젠가 불길 속에서 유리가 되고, 다시 창문이 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세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창문으로 이루어져 있었던 셈이다.
결국 세상은 유리로 되어 있다. 세상은 창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창문 앞에 선 사람들의 시선과 갈망이 모여, 비로소 서로를 향해 열린 풍경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