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책장

오래된 책장 한 칸이 텅 비어 있다.

by 단비

오래된 책장 한 칸이 텅 비어 있다. 여기에 무엇이 꽂혀 있었더라. 내 기억은 끝내 닿지 못한다.


책장은 한때 가득 차 있었다. 빽빽이, 숨 쉴 틈도 없이. 손이 닿는 모든 칸마다 책들이 눌러앉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군데군데 빈자리가 눈에 띈다. 언제 빠져나간 건지, 어떤 책이 사라진 건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그 빈자리를 바라보다 보면, 그것이 꼭 내 인생의 결락처럼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흩어져 버린 순간들. 어린 날의 얼굴, 젊을 때의 웃음, 이름조차 흐릿해진 목소리들이 조금씩 자취를 감춘다.


사라진 책들은 어디로 간 걸까. 아무도 찾지 않는 어두운 구석에 쌓여 있는 걸까. 아니면 어딘가에서 여전히 나를 기다리며 내가 돌아오지 않는 것을 원망하고 있을까. 혹은 이미 내 손을 떠난 순간부터 존재 자체가 지워져 버린 것일까.


내 삶의 한 페이지였음에도, 나는 끝내 기억해주지 못한다.


손끝이 무심코 또 다른 책을 집어 든다. 새로 산 책, 아직 빳빳한 책장을 가진 그것을 빈칸에 끼워 넣는다. 책장은 다시 채워지고, 나는 또 다른 기억을 만들어간다. 아마 앞으로도 이 책장은, 잊어버린 책들을 슬며시 밀어내면서, 새 책들로 계속 채워질 것이다.


그렇게 나는 살아간다.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동시에 기억을 새겨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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