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하고 푸르른 일요일에
바람은 보들보들하고
나는 베란다에 너풀너풀 널려 있었지.
늘 그래왔듯 아무 말 없이
내리쬐는 햇살에 몸을 말리는데
참새들만 지저귀곤 했어.
삐삐- 짹짹
완전 모닝콜이 따로 없더라니까?
그때,
내 주인이 말이야.
나를 툴툴 털어서 널어놓고는
연두빛 침대에 털썩 드러눕더니,
깜빡- 스르륵— 잠들었지 뭐야.
그 모습을 보는데,
나도 어쩐지 졸음이 솔솔 밀려오더라니..
눈을 천천히 감았어.
햇살이 나를 안고,
바람이 속삭였어.
그러다가 갑자기
손과 발이 툭툭 튀어나오고,
심장이 콩닥콩닥 뛰더라?
나는, 사람이 되었어!
아하! 내 주인의 분신이 되었구나.
기분이 좋아 몽롱하던 차에
베란다 바깥 공중 정원에
노란 꽃이 만발한 금목서가 있고, 거기 탐스런 분홍 복숭아가 덩굴덩굴 열려있는거야.
냉큼 따서 촤압-촤압-베어먹으니,
아! 달콤하구나.
인간의 삶은 달콤한 거였어!
그때였어.
드르륵— 윙윙—
조그마한 목각 헬리콥터가 날아왔고,
조종석엔 고글 쓴 참새가 앉아 있었지.
참새가 말했어.
“어...? 나 탈 수 있어?”
“그럼, 너 오늘 사람 됐잖아.”
나는 두근두근 하며 냉큼 헬리콥터에 올라탔어.
"자, 꽉 잡아- 짹짹!"
참새 조종자는 슈웅- 하고, 헬리콥터는 부웅- 떠올라
하늘을 가로질렀고,
우린 어느 아프리카로 날아갔어.
하늘 아래 광활한 초원.
거대한 바오밥나무들이 줄지어 있었어.
나는 지구에서 3000살이 되었다는 가장 키 큰 바오밥나무 위에 올라
털이 슝슝 난 열매를 우걱우걱 씹어 먹었어.
참새가 물었지.
“어때?”
“좋아. 어제까진 그저 축축한 천이었는데 말이야."
노을이 천천히 고개를 숙인 후
검푸른 하늘엔 은하수가 흘렀어.
나는 그 은하수 위를 총총거리며 산책했지.
그런데
갑자기—
우르르 쾅쾅!
하늘을 찢는 번개에
나는 휘익 -
시퍼런 바닷속으로 떨어지고 말았어.
풍덩!
바다 밑엔
모래 속에 숨은 새우들이
까만 눈을 번쩍이며 어디론가 행진하고 있었지.
“안녕, 새우들아.
난 인간이 된 빨래야. 지금은 모험 중이란다.
너희는 어디를 그리 가고있니?”
새우들이 수군거렸어.
“우리는 길 잃은 인어공주를 찾으러 가는 길이야.
어휴... 도대체 몇 번 째인지~ 쯔쯔."
“와.. 진짜?
나도 같이 가도 돼?”
새우들이 까만 눈을 꿈쩍거리며 대답했어.
“인어공주를 찾으러? 그래 뭐...따라오던지.”
우린 으슥한 미역과 다시마 숲을 지나
산호 사막을 지나
헤엄치고 또 헤엄쳤지.
그리고 도착한 곳에서
드디어 인어공주를 찾았지.
깨진 조개와 반짝이는 진주로 궁전을 인테리어 중이라나 뭐라나?
근데 말이야,
그 인어공주 얼굴이..
어딘가 낯익은 거야?
헉!
내 주인이랑 똑같이 생겼더라고.
놀라서 한참을 멍하니 서있는데..
그 순간,
누가 나를
툭툭— 털어대는 인기척에 번뜩- 꿈에서 깨어났어.
“어어...!”
눈을 번쩍 떴지.
햇살은 여전히 반짝이고,
바람은 여전히 살랑거렸어.
아, 꿈이었구나.
나는 빨래이고,
모험은 끝났구나.
그런데 더 이상한 건...
몸이 무거워.
심장도 계속 뛰는 것 같고.
고개를 들었을 땐
나,
진짜 사람이 되어 있었어.
정말이야.
식탁에서 왠 고소한 냄새가 솔솔 풍기길래,
나는 조심스레 다가갔어.
음?
식탁 위엔 기름에 자글자글 익은 빨간 새우들이
접시에 옹기종기 놓여있지 뭐야.
나는 한참을 말없이 서 있다가
어쩔 수 없이 인사했어.
“안녕, 새우들아.”
그리고,
냠냠 먹었지.
조금 미안했지만,
맛있었어.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다 문득 알아챘어.
'나는 지금 누구지?
그 인어공주는 누구였지?'
화창한 일요일 아침,
베란다에 널린 빨래는 나풀거리는데
시계바늘은 이상하게도 멈춰있어.
공중 정원에서
바람은 또
살랑— 하고 불어와.
아직 이 꿈이 끝나지 않았나봐.
회사원의 일요 망상 시리즈 1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