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딩 인어공주
20살부터 시작해 무려 15년이다.
나는 진짜 내 집이 없었다.
잠시 머무는 곳은 있어도, _내가 온전히 쉴 수있는 집_은 없었다.
가족같음을 내세우던 가짜 식구의 등쌀에 밀려
눈을 뜨면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가야 했다.
현관문이 나를 밀어내고, 거리의 바람이 나를 삼켰다.
불안은 물 먹은 이불처럼 나를 덮었고,
외로움은 함부로 오는 스팸전화처럼 달려들었다.
밑 빠진 독처럼 채워도 채워도 잔고는 비었고,
어거지로 끌고가는 관계는 가면이고 빚이었다.
거짓 웃음과 가짜 자신감은 통장보다 공허했고,
짧은 애정의 이끌림들은 날 지우는데 앞장섰다.
그런데 —
그 모든 불운이 떠나간 자리,
그 빈 곳에서 껍데기를 벗은 내 삶이 드러났다.
성공할 수 없는 시나리오의 무덤 대신
속살을 드러낸 진짜 이야기를 쓴다.
허구가 아닌 진심,
각색이 아닌 고백.
글은 대단한 판타지로 쓰는 게 아니었다.
햇살 한 줌, 바다 한 줄기, 늘 묵묵한 섬 하나.
그 모든 것이 오늘도 내게 시를 읊으라 한다.
내 안의 보석을 알아봐 준 곳은 은인이 되었고,
버티는 삶이 아닌 빛나는 하루를 선물한다.
그리고, 사랑.
나의 전부일 사랑.
불행한 인연들이 하나씩 빠져나간 자리에,
마치 정해진 결말처럼 나타날 사랑.
끊어졌기에,
비로소 이어진다.
*사실, 바다 속 세계에서
인어는 왕자를 죽이지 않았다.
그보다 더 조용히
자기 목을 찔렀다.
목소리를 버리고,
숨을 삼키고,
피로 만든 다리로
지상에 올랐다.
그 무렵 —
왕자는 병든 공주를 하늘로 보냈고,
매일 그리움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꿈에서도
파도 위에 걸터앉은
섹시한 인어를 떠올리며..
그러니까, 그 인어가 나였다고 할까?
그 이름 없던,
숨을 참는 법만 알던,
사랑도 꿈도 댓가를 요구받던 시절의
다리 없는 처녀.
그러니 이건 기적이다.
이제 나는 바다도 섬도 아닌,
13평짜리 숨 쉴 수 있는 천국에 살고 있다.
커피는 따뜻하고,
글은 살아 있고,
저 멀리 섬은 묵묵히
내가 누구인지 기억하라 말한다.
사랑, 운명, 천국 —
이 모든 이름 앞에
나는 숨지 않고, 내 두 다리로 걷는다.
작은 테이블 위 머그컵 하나,
안에 담긴 건 아메리카노가 아닌
기적 같은 시작.
창밖엔 바다, 그리고 섬,
베란다에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
나는 이 13평 천국에서 숨을 쉬고,
빛을 마시고,
여한 없이 웃는다.
반짝이는 목표는 여전히 살아 숨쉰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내 목을 조르지 않고
되려 날개를 달아준다.
어쩌면 이토록 평화로운 것은,
지옥 같던 15년을 지나왔기 때문일지도.
나는 이제 안다.
고통은 끝내 지나가고,
천국은 때론 13평에도 펼쳐진다.
두 다리를 얻은 인어는 오늘 밤도 노래를 쓴다.
"아아아~ 아아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