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필적 고의_未必的 故意_gross negligence
프롤로그:
어느 섬에서 알아챈 그 느낌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오래된 데자뷰처럼.
Scene 1. 발단
남의 힘을 훔치고는
'우리 모두의 것'이라던 월리.
남의 이야기를 훔쳐쓰고는,
출처는 없는 작자 미상.
Scene 2. 전개
칭찬과 찬사는
오직 둘이서.
훈계와 지적은
우연처럼 대중앞으로.
Scene 3. 위기
줄무늬 옷 입은 월리를 찾듯,
내 눈엔 자꾸 그들이 포착된다.
남들은 '못 찾겠다 꾀꼬리!'
내 눈엔 '빨간펜 동그라미!'
숨은 도둑 월리를 발견해도,
잡지 않고
지켜본다.
나는 어찌하여
괴로운 걸까,
재밌는 걸까.
아직은 내 속이 나약해
미움받을 용기는 선택하지 못해.
세상에 대한 치우친 견해를
퍽 당연한 듯 유도하는 언행에
내 속은 살짝 더부룩해.
Scene 4. 절정
다름을 존중한다면서
나와 다름은 존중 안하는 이중성.
소수를 보호하라면서
다수는 공격하는 아이러니.
권력을 혐오한다더니
남의 권력만 혐오하는 황당함.
권위를 지양한다더니
아가의 지적질에
뒤틀리는 입꼬리.
나눔이 아름답다면서
내 것은 안나누는 추악함.
일단 믿고 맡기라면서
하나도 1 단(斷) 못하는 모호함.
신체의 비폭력을 주장하면서
정신의 폭력은 정의라는 잔인함.
모든 것을 비판하라면서
나만은 비판하지 말라는 비열함.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걸
하나가 아닌 하나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무지함.
약자를 대우하라면서
약자가 되긴 싫은 치사함.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다는 교묘함.
또 다시 마주한
월리와의 불편한 공생.
그러기에 오늘도 이어지는
세상사 요지경.
Scene 5. 결말
아,
다짐하고,
또 다짐해.
나는 쩜.과 같은 월리를 잡을 시간은 없어.
나는 커다란 그림을 그리느라 바쁘거든.
그리하여,
그림자처럼 조용히
눈 감지 않고
소리 지르지 않고
침묵으로 수행 중.
한때 법을 꿈꿨던 나는
묵직한 단어를 마음에 끄적끄적.
'미필적 고의'
형태없이 폭력적인
사상의 암묵적 강요.
도둑 월리를 하나씩 발견하며
나는 되새김질.
아직 이 세상은,
무식한 사람이 이기는걸?
그러니 이번 판은
이기지 말자.
조용히,
살금살금,
몸을 사려.
무응답으로 답하고
침묵으로 웃기.
그렇게,
내 일상을 평화로 보호하기.
그럼에도
비밀리에
예쁘고 쪼끄만 은장도 하나를
달 뜬 새벽마다 다듬어.
언젠가
내 삶과
내 글이
도둑 월리들의 껍데기를 벗겨 낼
언젠가의 그 날을 그리며.
슥삭 - 슥삭 - .
에필로그: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위선과 모순을 고발하는
연약하고 차가운 시선의 새까만 정렬.
글자 세상의 대단함은
까무룩 - 늦은 밤 잠에 들고,
해가 뜨면 또,
소소한 하루의 출근이 이어진다.
'어라? 간밤에 월리 꿈을 꿨던 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