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기 시작한 혈관종, 서캐, 수족구… 모두 엄마 탓
나는 이미 H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프리스쿨이 방학에 들어가면서, 갑자기 현실적인 문제가 생겼다.
아이들을 어디에 맡길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원장님께 아이들을 데리고 출근해도 괜찮을지 조심스럽게 여쭸고,
학비 내는 조건으로 아이들을 함께 데려가기로 했다.
그곳은 아이들이 실외 놀이터에서 자유롭게 노는 분위기였고,
정해진 수업이나 스케줄 없이 놀잇감과 공간이 충분히 제공되는 곳이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꺼라 기대했고,
나 역시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다는 안도감에 꽤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2주가 지났다.
어느 날, 둘째가 학교 놀이터에서 다리에 개미를 무려 20방이나 물려왔다.
붓고, 긁고,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다음 날부터, 눈 밑 혈관종이 부풀기 시작했다.
조용히 있던 병변이 갑자기 진해지고 단단해졌고,
나는 그걸 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그 시점, 내 머리에서는
며칠 전부터 신경 쓰였던 ‘비듬’이
사실은 서캐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얗고 단단하게 붙어 떨어지지 않는 작은 점들.
나는 소름이 돋았고, 당장 아이들 머리도 살펴보았다.
둘째 머리카락 사이에서도 같은 게 발견되었다.
이미 눈에 띄게 붙어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거의 같은 시점,
첫째 아이가 손이랑 발에 뭐가 이상하다고 했다.
열은 없었지만,
아이 스스로 “뭔가 이상해”라고 말할 정도로
손과 발이 낯설게 변해 있었다.
병원에 다녀왔고,
진단은 수족구병.
그 뒤로 아이는 입 안에 퍼진 수포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너무 아파서 계속 울었다.
진통제를 먹여도, 얼음을 물려도
통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 며칠 동안,
우리는 한 집 안에서
각자의 고통을 견디고 있었다.
둘째의 부은 혈관종,
서캐가 붙은 머리,
수포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첫째,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켜보는 나.
이 모든 일이 H에 단 3주 다니고 벌어진 일이다.
혹시 그냥 우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무렵부터, H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머리카락 속을 하나씩 들춰가며 확인하기 시작했고,
몇몇 아이들은 부모가 와서 바로 데려갔다.
단체 채팅방에는 손과 발을 찍은 사진들이 올라왔고,
‘수족구가 유행 중이니 주의 깊게 관찰하라’는 뉘앙스의 메시지가 공유되었다.
나는 그걸 보면서,
이 모든 일이 그냥 우연은 아니었구나 싶었다.
이미 알고 있었던 누군가,
눈치채고 있었던 누군가가 있었다.
그런데도,
그곳이 미워지기만 할 뿐
정작 더 미운 건, 나 자신이었다.
그렇게 위생이 허술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그 공간에 내 아이들을 데려간 건 결국 내 선택이었다.
한 번쯤은 더 고민할 수 있었고,
한 번쯤은 더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할 수도 있었는데.
그때 나는,
이미 원래 아이들이 다니던 곳에서 오퍼레터를 받은 상황이었다.
곧 이직할 예정이었고,
‘여름 한 철만 잘 지나가면 되겠지’ 하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계산과 판단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둘째의 상태는 점점 심각해졌고,
나는 일에도 집중을 못하고 둘째 케어에도 집중을 못해서
결국 출근 8주 만에 급하게 퇴사 통보를 했다.
원장님께서는
6월 급여 체크를 바로 정리해 주시며 따뜻하게 보내주셨다.
고마운 곳이었다.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런데도,
그곳에 간 것을
나는 후회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모든 게 내 선택이었기에,
아무도 탓할 수 없기에,
더 많이,
정말 너무 많이 속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