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덴마크 코펜하겐: 이별이 가져온 새로운 만남

by 수경

150일간의 스웨덴 교환학생 생활이 끝나던 2020년 1월. 그 시간 동안 함께 북유럽의 겨울을 보냈던 친구들과 함께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이별 여행을 떠났다.

안데르센 마을도 가보고, 생각보다 많이 작았던 인어공주 동상도 구경하고. 뉘하운의 거리를 걸으며 낭만을 만끽했다. 같은 북유럽이지만 스웨덴 보다 동화같은 감성이 더 잘 담겨 있는 나라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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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랬듯 우리는 하루종일 웃고 떠들었는데, 저녁이 되면 지금까지 당연했던 '함께'라는 말이 무의미해진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그렇게 4일은 순식간에 흘러 다음 목적지를 향한 티켓이 우리를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데려가려 하고 있었다. 나는 독일의 북부 브레멘으로, 한 친구는 독일의 남부 튀빙겐으로, 한 명은 다시 스웨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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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가장 먼저,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출발하는 플릭스 버스에 탑승해야 했던 나는 밝은 모습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그러나 뒤를 돌자마자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려, 버스 기사는 나를 보고 애잔한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이때 스스로 놀란 부분은 한국을 떠나 스웨덴으로 갈 때는 분명 설렘이 앞섰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 차이는 무엇에 있었을까 생각해보니 이제 다시는 북유럽에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너무나 또렷했기 때문이었다. 교환학생의 끝은 마치 한 시절의 종료와 같았다.


버스가 출발하고는 이런 상황에서조차 감당할 수 없는 멀미가 밀려와 그대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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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자다가 문득 눈을 뜬 나는 습관적으로 구글맵을 켜보았다. 어디쯤 왔나, 경로를 보려고 했던 것인데, 무언가 쎄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덴마크 오덴세를 지나 독일 함부르크의 육로로 향해야 하는 버스가, 이상하게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 앞은 바다인데 말이다.


지도를 확대하자 바다 위로 뻗어 있는 미약한 점선이 보였다. "아니?" 놀란 마음에 작은 외마디를 내뱉고 창밖을 내다보자, 이미 코앞에 항구의 불빛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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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상황인지 아직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한 나를 태운 버스는 멈추지 않았고, 속도를 잠시 늦추더니, 그대로 거대한 선박의 화물칸으로 진입했다. 지상에서 바다로. 낯선 엔진음, 쇳내, 그리고 파도에 맞춰 흔들리는 바닥. 모든 감각이 낯설고 당혹스러웠다.


화물칸 안에 정차를 하더니 곧 버스 기사는 모두 이곳에서 내리라고 했다. 사실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했는데, 어영부영 사람들을 따라 주차된 차들 사이 좁은 길을 지나 계단을 오르자, 갑판 위로 바람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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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자리는 추위로 인해 아무도 찾지 않았다. 겨울 바다의 바람만이 고요히 요동치는 갑판 위에 서서 바라보는 하늘은 붉게 물들고, 바다가 그 색을 천천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짙은 바다 냄새와 저녁의 냉기가 섞인 공기 속에서, 나는 150일만에 처음으로 홀로 서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고, 나는 누구에게 의지하지도, 길을 물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두려움 속에서도 묘한 생동력이 있었다. 끝이라 생각했던 순간이, 다른 감각으로 변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끝'이라는 것은 사라짐이 이니라, 다음 빛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애도는 슬픔이 아닌 충만함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는 과정이라고.


그렇게 바닷 바람을 맞으며 홀로 앉아있기를 몇십분이 지나자 마음 한켠에 낯선 확신이 자리했다. 무언가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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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브레멘에 도착했을 땐 이미 밤이었다. 낯선 도시의 공기는 차가웠고, 호텔 방의 침묵은 너무 깊었다. 잠시 외로움을 느꼈지만 나는 나에게 스스로 속삭였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 있고, 아직 내 안에서 걷고 있는 여정이 있다고. 이별은 끝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는 일일 뿐이라고.


덴마크의 이별은 그렇게 독일의 새벽으로 이어졌다. 길 위에서 흘린 눈물이 노을빛 바다로 변모하듯, 끝이 언제나 다른 이름의 시작이 되듯, 나의 여행 역시 다음 장으로 이어졌다.


- <여행이 내게 알려준 10가지>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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