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작-처음 쓴 녀자 작품집』 속 <에세이> 김온영
2층 다세대주택에는 2개의 문이 있다. 왼쪽 큰 문은 1층 주인집으로 바로 통하고, 오른쪽 작은 문은 2층 계단으로 통한다. 문을 열 때마다 끼익 소리가 나는 작은 쇠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 뒤쪽으로 돌아가면 작은 방이 하나 있다. 이곳이 나의 첫 자취방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버리고 말 공간, 자물쇠 하나가 달려 있어 문이 있음을 알게 된다. 새로운 곳으로의 이사, 설렘으로 가득 찼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는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 자취라는 나의 로망을 이루었지만, 로망이 실현되었다는 들뜸은 오래가지 않았다.
입시 원서를 쓰며 나의 목표는 좋은 대학에 가는 것보다 집을 떠날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부모님의 싸움이 잦아지기 시작했고 집에 있는 시간이 불편해졌다. 나는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공부하느라 바쁘다는 핑계가 타당하게 받아들여지던 시기였다. 나는 되도록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을 가고 싶었다. 멀리 가면 부모님의 싸움 소리도, 불행도 따라오지 않을 것 같았다. 1순위는 서울로 가는 것이었지만 실패했고 집에서 2시간여 떨어진 곳에 입학했다.
98학번, 1997년 IMF의 직격탄을 온몸으로 견뎌야 했던 학번이었다. 아빠의 공장은 멈추었고 빚 독촉을 하는 사람들이 집에 자주 찾아왔다. 그럼에도 입학을 하고 1년을 다녔지만 먼저 대학을 입학한 언니까지 대학생 2명을 부모님이 뒷바라지하는 것은 무리였다. 나는 휴학을 했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었다. 하지만 1년여의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전세보증금을 마련하는 것은 무리였고 부모님의 사정도 좋아지지 않았다.
나는 월세로 자취방을 구해야 했다. 매달 월세를 낸다는 것이 부모님께 얼마만큼 부담이 되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스물한 살의 나는 부모님의 걱정을 공유할 만큼 성숙하지 않았다. 아니, 부모님의 경제 상황을 외면하고 싶었다. 복덕방에서 보여준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우리가 구할 수 있는 공간은 학교에서 멀지 않은 2층 다세대주택의 방 한 칸, 딱 한 칸의 공간만 빌릴 수 있었다.
아빠의 사업이 잘 나갔을 땐 방 세 개의 30평대 아파트에 살았다. 하지만 사업이 기울면서 집은 점점 작아졌고 초라해졌다. 아빠가 운영하는 공장 위에 임시 건물을 지어 지내기도 하고 이모네 아랫방을 임시 거처로 삼기도 했다. 집이 초라해지니 삶도 팍팍해졌다. 집 안에 웃음보다 냉랭한 기운이 가득 찼다. 그랬기에 대학 입학과 함께 집을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사실에 나는 속으로 기뻐했다. 그때 나에겐 방 한 칸의 넓이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나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것만 중요했다.
2층 다세대주택의 일 층은 군대를 제대한 아들을 둔 주인 가족이 살았다. 본인 아들도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닌다고 했다. 이사 왔을 땐 복무 중이었던지 본 적 없던 아들이 언젠가부터 보이기 시작해서 제대를 했나 보다 추측했다. 형광등이 고장 났을 때, 주인아주머니는 아들을 시켜 바꿔주도록 하셨고 난 머쓱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학교에서 그 아들을 마주칠 때면 그저 안면 있는 사람으로 알은체를 할 수도 있었지만 주인집 아들과 셋방 사람이라는 처지가 떠올라 씁쓸해하며 외면했다. 주인집 아들이 아니었다면 학교 선후배로 정리되었을 관계가 알 수 없는 수직 관계가 된 듯 불편했다.
자취방의 문을 열면 왼쪽엔 세숫대야 하나를 놓을 수 있는 공간에 수도가 있고 오른쪽엔 휴대용 버너 하나를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시멘트로 발라져 있었다. 부엌이면서 신발장이고 욕실이자 현관이었다. 현관과 방은 미닫이문으로 구분되었다. 방과 현관을 합쳐 3평. 좁았다. 그래도 좋았다.
옷 몇 벌, 이불 한 채, 수건이 전부인 짐을 옮기고 살림살이를 사러 갔다. 비누, 세숫대야, 슬리퍼를 사고 휴대용 버너랑 냄비 하나, 과도도 샀다. 사소한 물건 하나 사는 데도 고민을 수십 번 하며 자취 생활에 들떴었다.
캠퍼스 생활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선배들과의 술 한 잔, 과외 수업, 밤샘 공부로 피곤해도 자취방에 오면 온전하게 쉴 수 있었다. 기숙사에 살 때처럼 늦은 귀가를 눈치 주는 선배도 없었고 방이 지저분하다며 청소하라고 잔소리를 하는 엄마도 없었다. ‘방 한 칸’이라는 단어가 궁상보다 낭만으로 느껴지던 스물한 살이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진.
저녁 8시쯤 집으로 돌아왔다. 휴대용 가스버너 옆에 있던 과일 칼과 방 안 빨랫줄에 걸려 있던 팬티 한 장이 사라졌다. 짐이라고는 손가락으로 셀 정도니 사라진 물건의 빈자리는 바로 눈에 띄었다. 자취방이니 비싼 것은 없었을 테지만 사라진 물건 두 개가 하필 칼과 속옷, 공포스러웠다.
주위를 둘러봤다. 내가 사는 주택과 마주 보고 있는 뒷집이 보였다. 비슷한 구조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골목이었다. 내가 사는 주택의 문을 여는 소리보다 뒷집 현관문 닫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뒷집 2층의 창문이 갑자기 닫혔다. 옆집 화장실 전등이 켜지고 사람의 모습이 잠깐 보였다 사라졌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두려움이 몰아쳤다.
“방에 누가 들어왔던 거 같아요.”
일 층으로 내려가 주인아주머니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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