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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과 엄마의 가족 관찰 보고서

『처녀작-처음 쓴 녀자 작품집』 속  <에세이> 박은주

by 우지 Feb 08. 2025

이과생의 글쓰기 실습 1 ... 실습 일자 : 2024년 3월Introduction 1. #죽 쑤는 글쓰기


자기소개. 가장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다.

대학 졸업 후 휴가 때마다 배낭여행을 다니다가 외국인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내 짧은 영어로는 이름, 출신, 직업을 말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때 꼭 듣는 질문은 남한에서 온 건지 북한에서 온 건지와 더불어 전공이 무엇이냐는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직업을 자세히 말할 정도의 영어 실력이 되지 않아 그저 ‘Engineer’라고 소개하는데 정말 궁금한 것인지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어서인지 모르겠으나 항상 ‘What kind of?’라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내가 하는 일은 설명이 어려워 대신 유기합성화학(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이 전공한 학문으로 이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마약을 합성하는 데 지식을 사용한다)과 생물화학이라는 전공을 밝히는 순간, 상대는 이 세상과 동떨어진 다른 세계의 사람인 것처럼 나를 쳐다보곤 했다. 한 번이라도 이 전공수업을 들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 과목이 얼마나 ‘Fxxx Crazy’ 한지 거하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나는 ‘정의’를 들으면 ‘Justice’가 아니고 ‘Definition’이 떠오르는 사람이다. 매뉴얼에 따라 숫자와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내가 ‘글’이라는 것을 쓰게 되었다.


‘내가 미쳤지. 좋은 글, 유명한 책 그냥 사다 읽으면서 고급 독자로 살면 좋을 것을, 뭐 한다고 글을 쓴다고 해서, 고생을 사서 하고…… 괜한 욕심을 부렸네. 괜히 민폐 끼치기 전에 그냥 안 한다고 할까?’


글쓰기 첫 수업을 듣고 덜컥 공저 책 제작 모임까지 가입해 버린 후였다. 쳇바퀴 돌듯 같은 삶을 반복했던 내가 얼마나 쉽게 포기하는 초반 열정형 인간이었는지 잊고 있었다. 잘할 수 있을지, 아니 끝까지나 할 수 있을지, 앞서 나간 의욕 때문에 마음속에 두려움이 스쳐간다. 마음속에서는 자꾸


‘그거 해서 뭐 한다고, 어디에 써먹겠어. 그냥 하지 마. 포기하면 편해.’


이런 소리가 들려온다. 한두 장 쓰고 만 일기장을 볼 때의 패배감, 오래전 그만둔 운동센터에서 같이 시작했던 동네 언니들이 숨은 고수가 되어 있었을 때 느꼈던 부러움과 후회가 교차한다. 무언가를 꾸준히 해 나가는 사람을 얼마나 존경하고 있었는지도 잊고 있었다. 작은 일 하나라도 마침표 하나 찍어보고 싶었다. 첫째 아이를 마중 나가 신호등 색이 바뀌길 기다리면서 답답한 마음에 슬며시 고백해 본다.



“엄마가 글쓰기 수업에 나간다고 했잖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책 만드는 모임까지 한다고 했는데, 이럴 줄은 몰랐어. 엄마 그냥 포기한다고 빨리 말할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못 먹어도 고 해볼까?”

대답 없던 아이가 진지한 말투로 말한다.



엄마, 그럼 어쩔 수 없지. 죽이 돼야지…….




생각지도 못한 답변에 웃음이 터져 버렸다.

“어? 이왕 하는 거, 시작하면 밥이 되어야지.

왜 죽이 돼?”

“엄만 못 하잖아. 그러니까 죽 해야지.”


뜨끔하다. 맞다. 나는 글쓰기를 못한다. 그렇다고 일부러 못 쓰는 건 아니다. 써본 적도 없고, 글 쓰는 방법을 모를 뿐이다. 시작도 전에 잘하고 싶은 유치한 마음에 점령당했다. 정량도 필요 없이 물 넣고 끓이다가 모자라면 물 한두 컵 더 넣고 끓이면 되는 죽. 죽이 되고 나서 밥을 더 지어야 할지 고민하면 된다. 딸아이는 욕심 없이 포기하지 말란 말로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래 밥보다 죽이 되자. 죽이라도 끓이고 냄비를 내려놓자. 이렇게 나의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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