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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빌라

『처녀작-처음 쓴 녀자 작품집』 속 <소설> 송지현

by 우지 Feb 10. 2025

오전 9시 30분, 용진은 3층 중환자실 앞 의자에 앉았다. 대기 중인 다른 보호자들과 잠시 눈빛을 교환하며 소리 없이 인사를 주고받았다. 다들 건조한 얼굴과 달리 눈만은 더욱 습기가 깊었다. 이미 서로의 아픔을 알고 있는 사이에겐 더욱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걸 아는 용진은 일부러 두어 칸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습관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아버지의 휴대폰이 잡혔다. 중환자실에 들어갈 때 용진의 손에 들어왔고, 가끔 충전해서 꺼지지 않을 정도로 유지하고 있다. 중환자실의 아버지가 숨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지이잉


진동이 느껴졌지만 용진은 바로 확인하지는 않았다. 휴대폰은 가끔 오는 스팸 문자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이번에도 마찬가지겠지 하면서도 딱히 할 일이 없어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안녕하세요. 스카이뷰에 원하시던 매물이 나왔습니다. 연락주세요. -조합장-]


원하시던 매물이라니. 아버지가 원하는 매물이 있을 리가 없다.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집을 불평을 하는 건 용진 쪽이었지 아버지는 모든 걸 체념한 채 집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없었다. 어제 식당에서 얼핏 본 뉴스 중 중국에 팔려 가는 개인정보가 5000명당 1,700원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스팸 문자가 자식보다 더 자주 안부를 묻는다. ‘아버지에게 안부를 묻는 순간이 다시 찾아오기는 할까?’라는 생각에 용진의 마음이 저릿해지는 순간, 면회 준비를 알리는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잠시 후 10시부터 중환자실 면회가 시작됩니다. 감염 및 환자 보호를 위해 주 보호자 한 분만 입장 가능하며 출입증을 미리 제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면회 시간은 10시 20분까지입니다. 입장을 위해 대기하시기 바랍니다.]


용진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서둘러 출입증을 목에 걸었다.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리고 새하얀 소독약에 몸을 맡기며 아버지의 침상 방향을 바라보았다. 최대한 조용히 몇 개의 침대를 지나며 환자마다 다른 장비, 다른 기계음으로 그들의 안부를 확인하였다.


침상 끝의 ‘임춘배’라는 이름표를 찾아 드디어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의 병명은 급성 뇌출혈이었다. 담당 의사는 여전히 의식이 없다는 사실과 언제라도 급하게 호출이 오면 바로 와야 한다며 동의서를 내밀었고 사인을 요청했다. 오늘의 면회는 의사와 나눈 대화와 아버지를 눈으로 훑어본 것이 전부였다. 아버지의 마른 손을 잡아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주인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휴대폰을 만졌다. 오늘 밤이 고비라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용진은 목구멍이 뻐근해짐을 느꼈다.


-지이잉


[진짜 이 매물 귀한 거예요. 오늘 두 팀이나 보러옵니다. 제가 붙잡아 놓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계약금이라도 먼저 보내시죠? -조합장-]

좀 전에 왔던 모르는 번호였다. 이제는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 미친놈의 희망도 참 부질없네. 중환자실에서 기계음으로 생사를 확인하고 있는 노인에게 계약금이라니!


용진은 아버지를 잃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뇌출혈로부터 아버지를 지킬 수 없다는 무력감을 들켜버린 것처럼 사기꾼의 문자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무엇이든 아버지를 해롭게 하는 것으로부터 그를 지켜야 한다는 방어본능이 순간 분노로 둔갑하였다. 인간은 약점을 들켰을 때 둘 중 하나의 행동을 한다고 했다. 변명으로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거나, 자신의 약점을 남 탓하며 화를 내거나. 용진은 후자를 선택했다. 어쨌든 미친놈에게 매가 약이 맞다며 가만두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통화버튼을 꾹 눌렀다.


-야, 이 개자식아! 너 누구야!


다짜고짜 욕설을 뱉어내자 상대도 당황한 듯 멈칫하는 게 느껴졌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상대가 반응하였다.


-아니, 이보쇼! 당신 누군데 함부로 욕설이야! 영감님이 복지빌라 자리에 부탁한 매물이 있어서 전화했는데 당신이야말로 뭐요!


용진은 중년의 남성이 쏘아붙이는 대답을 듣던 중 ‘복지빌라’라는 단어에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며 호흡이 멈춰진다.


-복지빌라요? ... 그게 무슨…….


불쑥 귀에 꽂히는 그 단어가 용진의 뇌에 정지 신호를 보냈다. 20여 년 전,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던,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은 그 지하 단칸방이 기억에서 소환되었다. 용진이 갓 여덟 살 되던 무렵, 큰아버지네 지하 단칸방으로 이사를 했는데 그곳이 복지빌라 나동 지하 303호였다. 지하에 사는 애, 지하에 사는 총각, 지하에 사는 할머니 등등 복지빌라에서는 사람을 부를 때 이름보다 사는 위치로 언급했다. 지하 사람들을 위한 우편함은 따로 없었기에 학교에서 집 주소를 적으라고 하면 ‘지하’라는 수식어를 뺐다.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이나 우편함만이 복지빌라의 이름값을 못 하는 게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사계절은 국민의 주권만큼이나 평등할 텐데 복지빌라 지하는 계절마저도 복지의 혜택이 없었다. 여름과 겨울 단 두 개의 계절만이 존재했던 그곳은 한 칸짜리 방과 바로 이어진 주방 그리고 주방에 연결된 출입문이 있었고 볕이 드는 속도는 매우 느리고 짧았기에 주방까지 그 온기가 닿기는 어려웠다.


복지빌라 나동 303호 지하에 사는 동안 용진은 격동의 사춘기를 겪으며 확신하게 된 사실이 있었다. 햇빛을 보는 것도 집값에 비례한다는 것이었다. 방안에는 이렇다 할 가구가 책상 하나뿐이었는데 그 책상 위에 시집이 몇 권 꽂혀 있었다. 아버지는 해가 나는 날이면 일을 나갔고 비가 오면 집에서 소주를 마시며 시집을 읽었다. 용진은 주로 게임을 했고 게임이 몇 시간째 이어지도록 아버지는 시집을 붙잡고 있었다.


-다른 책은 왜 안 사? 엄마꺼라서 읽는 거야?


용진은 게임을 하면서도 엄마가 남겨둔 시집을 읽는 아버지를 힐끗거리며 물었다.


-엄마가 그랬었거든. 글자가 적어서 읽기 좋다고. 정말 딱이네.


여자가 남겨둔 시집에 박힌 남자. 비가 와서일까 지하방에 머물러서일까. 아버지의 얼굴은 고요했지만 슬퍼 보였고 소주 한 병에 시집을 안주 삼아 몇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비 오는 날은 아버지가 용진의 곁에 있었고 그가 마시는 소주가 천천히 줄어드는 시간이 만족스러웠다. 용진이 가만히 돌이켜보니 아버지가 복지빌라에 대해 뭐라 말한 적이 있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휴대폰에서 조합장의 목소리와 함께 비 오는 날의 여운이 싹 사라졌다.


-복지빌라 재건축한 아파트 말이요. 영감님이 ‘나’동, 꼭 그 자리를 찾으셨잖소!


-하아...네... 저는 임춘배씨 아들입니다. 그... 죄송해요. 지금 아버지께서는 중환자실에 계십니다. 갑자기 쓰러지셨어요.


아버지의 상황을 듣고 조합장도 말을 시작하려다 멈추었다. 그리고는 호흡을 다듬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 영감님 소식이 너무 갑작스럽네요.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지금 상황에서는 회복되시는 게 우선이겠어요. 알겠습니다.


-네. 연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용진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뜬금없이 복지빌라라니. 아버지는 왜 그곳에 매달려 있는 것일까?


[지하실은 사람이 살기 위한 공간으로 허용될 수 없는 위치입니다. 영국의 경우 반지하 형태의 상점이 있지만 주로 군사용 벙커로 사용되며 전쟁을 대비하기 위한 장소였던 거죠.]


어느 유명 건축학자가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중 지하방에서 와이파이를 찾아 창가에 쪼그리고 앉은 주인공들을 보며 인터뷰한 내용을 용진은 잊지 못했다.


‘그래. 그 말이 맞지. 복지빌라에 살아보지 않은 당신은 책에서 배웠겠지만, 나는 몸으로 배웠어.’라고 생각하며 용진은 복지빌라에서 이사를 나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살지 않았던 곳’으로 기억에서 사라지길 바랐다. 그런데 아버지는 달랐던 것일까? 아버지에게 묻고 들어야 할 말들이 있다고 생각하자 다음 면회까지 기다리기가 더 조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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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작-처음 쓴 녀자 작품집』에서 확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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