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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 아래 첫 집 11

함께 해봐

by 하리

동분서주 잠자는 시간 외에는 바삐 사는 삶의 형태여서일까?

가족들 대부분은 무슨 일에 건 적극적이었다. 그것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혈액형이 O형인 것만 봐도 짐작가능이었다. 그런 중에도 순도차이가 있어 남편은 조신형에 속했다. 그래서인가?

세 아이들이 예정일보다 일찍 태어나더니 자랄 때의 행동도 나보다 훨씬 적극적이었다.


큰딸은 호기심 많은 형으로 걸음마를 시작하자마자 온마당을 다니다가 종종 안보였다. 그럴 때면 강아지들이 주변에 우르르 둘러서 낑낑 대는 걸 보고 찾곤 했다.

아래로 아들에 이어 막내가 연년생으로 태어났다. 이번엔 애들끼리 이도랑 저들을 쏘다니다가 뱀이나 쥐를 잡아 오기도 하면서 나를 놀라게 했다.

동물과 친근감을 느끼던 막내는 소들과도 잘 지내면서 집에 있을 동안에는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막상 학교에 들어가니 공부와는 거리가 먼 듯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날마다 잘 놀고 바지런했다.

아들은 마치 샌드위치처럼 끼여 있어 눈치 볼일이 종종 있었다. 때로는 누나를 밀어주고 동생을 끌어주느라 땀께나 흘렸다. 그저 함께 있다는 그 자체가 좋은 듯 다정한 성향을 키워갔다.

역시나 놀기가 좋아서 제동생과 비슷하게 공부는 마음만치 잘 안되는지 시험지 자체를 아예 보여주지 않았다.

"엄마, 운동회 때 가족 이어 달리기가 있어. 같이 해보자."

큰애가 서두를 꺼내니 밑에 애들도 덩달아 졸랐다. 달리기라면 뒤에서 손가락 꼽은 기억 밖에 없는데 연거푸 졸랐다. 최소 가족 3명 이상이라야 가능한데 많으면 더 좋겠다며 할머니도 넣자고 저희들끼리 의논을 마친 뒤였다.

"꼴찌 하면 창피스럽잖아." 하니까 같이 참여해서 뛴다는 게 더 중요하다고 우기니 이런저런 핑계를 되어도 안되어 울며 겨자 먹기로 신청했다. 결전의 그날은 기어이 닥치고 출발선 앞에 서자 가슴이 쿵쿵 뛰는 데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신경 쓰였다. 그 와중에 아이들 셋은 응원한답시고 고래고래 소리친 것도 잠시 나는 출발선에서 뛴 지 몇 걸음도 되지 않아 이내 넘어지고 말았다.

부끄럽고 창피스러위 죽겠는데 외려 아이들은 괜찮다며 어쨌건 뛰었으니 되었다고 나를 위로했다. 속으로 다시는 뛰나 봐라 하고 결심했다. 조금씩 잊혀 가던 그 일이 이듬해 운동회가 다가오자 새삼 떠올라 학교 운동장에 가기도 싫건만 이번엔 줄넘기를 해야 한단다. 그것도 가족별 대항이라 사람수가 많으니 우리 집은 나가기만 하면 상을 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야 말로 지난해 넘어진 창피를 면하려면 더 많이 연습해야 한다며 달밤에도 마당에서 줄넘기를 했다. 처음에는 몇 개 하지도 못했으나 연습 횟수가 늘어나면서 요령도 익혔다.

혼자 제자리 뛰기에 이어 빨리 뛰기와 두 번씩 뛰기 등 종류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제일 어려운 것은 하나씩 들어가 다 같이 동시에 뛰는 것까지 연습을 마친 뒤 드디어 결전날이 되었다. 아이들에 이어 학부모 개인별 종목에서 벌써 내가 제일 오래 뛰었다. 뒤이어 가족 줄넘기 또한 다른 팀에 비해 더 오래 뛰었다.

우리 가족이 그해 가족별 대항 줄넘기대회에서 학교전체 최고상을 받았다. 학교 운동장이 들썩했다. 연이어 오래 달리기와 릴레이 경기에 출전한 애들이 손에 상품을 들고 환호하며 들어섰다.

어머님께선 노인 달리기에서도 상을 탔다.

한마디로 집안경사가 났다. 그 일은 두고두고 자랑거리가 되었다.


아이들 응원에 힘입어 무모해 보였던 도전이 제대로 성과를 본 것이다. 나 역시도 한평생 주눅 들었던 운동회날의 추억을 제대로 바꾸는데 그 줄넘기 경기가 지대한 역할을 했다.

함께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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