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어
우물쭈물하며 속내를 잘 드러내지는 못하면서 상처는 오래가는 성향인 내가 아이들 부추김으로 용기내기에 한발 더 나가는 계기를 맞았다.
"엄마, 엄~ 마~, 엄~마 ~~"
줄넘기로 엄마체면에 반창고를 붙이고 난 다음 해였다. 큰딸은 비닐하우스 입구에서 마구 소리쳤다.
다름 아닌 지역축제마당에서 주최하는 장승 깎기
대회에 참가 신청서를 냈다고 말이다. 참외 수확철인 데다 모내기 논 장만이 한창인 5월이었다.
"바빠서 못 간다."
"뭐 그런 쓸데없는데 갈 시간이 어디 있노?"
이런저런 핑계와 핀잔의 말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가야 한다고 우기는 딸아이에겐 소용이 없었다. 한마디로 오면 좋은 아빠고 안 오면 나쁜 아빠란 느낌과 말로 설득은 계속되었다. 난감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구러 행사날이 되자 착유실에서 일하는 남편에게 왔으면 좋겠단 말을 남기고 아이들과 먼저 집을 나섰다.
축제장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제법 많이 모여있다. 더구나 장승 깎기 대회가 열리는 주무대 앞에는 대기 중인 참가팀들 앞에 적당한 굵기의 나무와 도구가 놓여있고 남은 것은 몇 안되었다.
"엄마, 우리 건 이거야!."
딸아이가 손을 가리키며 달려간 곳은 그중에 제일로 둥치가 컸다. 우리 힘으로는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 야야, 그건 너무 굵다. 모두 봐라. 적당한 거 골라다 놓았잖아?
우리는 이거 껍질 벗기기도 힘들겠다."
그러나 그 말은 소용이 없었다. 얼굴이 커야 인물도 잘 나올 거라고 우기는 통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선택했다. 제 위치로 옮기는 데도 행사진행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드디어 징 소리가 울리고 모두들 각자가 고른 나무와의 씨름이 시작되었다.
유치원생 아들은 연신 옆팀을 곁눈질로 보느라 바쁘고 전두지휘에 나선 딸과 막내와 넷이서 나무껍질을 벗기느라 낑낑댔다.
"우리가 늦게 와 제대로 못 골라서 힘만 든다. 아빠도 안 오고 , "
그때였다. 저만치서 머뭇대며 남편이 나타났다. 아이들이 소리치며 제아빠를 불렀다.
그제야 의기양양해진 모습에 주변을 맴돌던 아는 분들께서 잠깐씩 껍질을 벗겨주었다. 간신히 얼굴 부분이 드러나자 남편이 눈과 코와 입모양을 파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잘 안되고 있었다.
땀은 비 오듯 하고 팔도 아파오는데 껍질도 계속 벗겨내야 했다. 어떤 가족은 벌써 장승의 이목구비에다 먹물을 입히는 팀도 있었다.
"우리 장승은 언제 화장시키노? 글자도 새겨야 하는데." 하는 걱정보다 더 심각한 것은 남편 혼자서 조심스레 파다 보니 도화지에 그림 그리나 싶을 정도로 도무지 장승 느낌이 없었다. 그래도 껍질은 계속 벗겨야 했다.
그때쯤이었다.
한동안 연락이 닿지 않아 요청도 못한 아이들 할아버지께서 저만치 서 계신 것이 보였다. 망설임 틈도 없이 냅다 뛰었다. 설명 대신 팔을 끌어당겼다.
"아버님, 좀 도와 주이소 예, 같이 할 일이 있어 예, 저기 애들과 애들 아빠가 장승 깎고 있어예."
그랬다. 큰애가 열 살 무렵 그해 봄날에 우리 가족은 장승을 깎았다. 마무리 징 소리가 날 때까지 아이들과 껍질 벗기는 일은 계속되었지만 다행히 얼굴은 아버님과 남편이 합심하여 멋지게 다듬고 이릉마저 큼지막하게 썼다. 정말 큰 딸의 말처럼 아주 잘생기고 인자한 모습의 장승이 되었다.
그 장승은 우리들에게 최우수상을 받게 했고 군수님과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 신문 제일면에 대문짝만 하게 실리게 했다.
내게는 하면 된다는 의지를 보태었고 가족 이 합심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배우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