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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아래 첫 집 15

밀가루 놀이

by 하리

여름 장마철이 길어지자 읍내로 나갈 유일한 교통수단인 오토바이가 불편해졌다. 찬거리인 밭 야채와 야생 풀도 제 몫을 못했다. 감자 몇 알로 버티다가 비상식량인 국수마저 사라진 뒤 보니 다행히 밀가루 한 봉지가 눈에 띄었다.


"야들아, 오늘 점심은 수제비 해 묵자."

"좋아 좋아 , 반죽할 때 나도 해볼래."

아이들 셋은 신이 났다. 그냥 밥상에 앉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같이한다는 게 그저 신나고 좋은 것 같았다.

거실 바닥에 자릴 만들어 놓고 온통 밀가루 난장판이 되건 말건 서로 더 많이 해보겠다고 경쟁을 했다. 한 번씩 밀가루 농도를 맞추며 냄비에다 감자와 멸치를 넣고 끓이다가 수제비를 떴다. 그마저 서로 하겠다는 걸 간신히 말렸다.

"엄마, 밀가루 만지니까 너무 좋아. 우리 있다가 남은 밀가루로 빵 만들어 먹자."

"좋아 , 좋아 "

"그러자!. 재미있겠다. 밀가루빵은 뭔 맛일까? 엄마가 자주 해 주는 도넛이나 핫케이크와는 다르겠지?"

반짝반짝 눈망울 여섯은 수제비 그릇 비우기가 바쁘게 그다음 할걸 생각하느라 신이 났다.

하지만 남편은 슬그머니 집을 나서고 없었다.

'밀가루로 하는 게 다 거기서 그 기지'란 말로 아이들의 들뜸을 살짝 누리긴 했지만 이미 펼쳐놓은 거실은 또다시 놀이터로 변했다.

그 전해에 흉년이 들어 안 그래도 수시로 밀가루음식이 밥상에 올랐건만 아이들은 물리지도 않는지 학원 방학 일주일 내내 밀가루와 놀았다.

베이킹파우더 안 들어간 빵과 도넛에다 우유로 간신히 맛을 낸 과자까지 도전해 밀가루가 바닥이 나고야 손을 털었다.


돌아보면 건강한 아이들 마음과 행동 때문에

잘 지나온 젊은 날의 또 다른 추억 한 페이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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