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아빠
일곱 살 들 무렵 아들은 내게 아빠보다 멋진 사람 없더냐고 물었었다. 그 말을 바꾸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울 애들이 놀기는 잘하는데요. 집중력이 달려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각자 일 하느라 바쁜 데다 만나면 의견 충돌로 안 싸우면 다행인 부부이고 보니 아이들 앞에서 이렇게 저렇게 커다오라고 요청할 건더기가 없었다. 한마디로 '나쁜 짓은 말고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라 해야 할 판이었다.
그런 주요한 문제에 해답이 될만한 조언을 해 준 분은 다름 아닌 직장동료였다.
"사실 부부사이에 굳이 서열을 정하거나 무슨 일이든 꺼낼 때마다 딴지를 건다는 건 정말 건강한 부부관계는 아닐 수 있어요. 그래도 노력은 해볼 수 있겠지요?
제가 해본 거 한번 해 보실래요?"
이미 자녀들이 대학을 다니고 취업 준비생이라 어떻게 키웠을까 궁금하던 차였다. 동료분의 이야기는 군침이 당겼다. 꼭 십여 년 전의 자기네 집 상태 같다면서 해 준 이야기는 다름 아닌 가족 산행이었다. 그것은 마음만 내면 가능한 일이고 경제적인 부담도 적은데 건강과 가족 간의 대화증진은 물론 끈기나 집중력을 배울 수 있는 멋진 일이라고 했다.
한데 스스로 정한 신념 하나로 자존심을 지키는 남편에게 아내인 내 말은 쉽게 먹히지 않았다. 수시로 상태가 좋을 때 한 번씩 건네다가 지쳐서 포기단계까지 간 어느 날 아침밥을 먹다가 남편이 말했다.
"우리 오늘 산에 가보자."
"아빠 진짜가? 어디로 가는데?"
첫말을 꺼낸 지 무려 3년 만이었다. 그날은 마침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다음날이기도 했다.
성주주변에서 산이면서 동시에 적당히 걸을만한 곳인 독용산성을 갔다. 눈이 채 녹지 않아 힘들었어도 점심 대신 과자 몇 봉지가 다였지만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다. 그다음 주에도 남편은 산을 가자고 했다.
그렇게 시작은 참 더뎠으나 그때 이후로 산행은 매주 이어졌다. 얼마가지 않아 시부모님도 합세하셨다. 가까운 산들을 몇 번이고 오르다 최대 가족 인원 동원 등산은 지리산이었다.
가족이 함께 등산을 한 지 3년 차 되던 어느 날 아들이 웃으며 말했다.
"엄마, 울 아빠도 괜찮은 아빠 같아. 다른 친구들은 아빠랑 같이 하는 게 별로 없데. 우린 매주 산에 같이 가잖아?"
그 말은 초등학생도 되기 전 자신이 말한 멋진 남자의 조건 중 최소한 한 개는 제 아빠가 채워 주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들은 그 이후 자신이 해야 할 것들에 좀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