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옷 하나가 디 낡고 헤질 때까지 입는다. 외출복은 떨어지지 않으면 유행을 무시하고 입고 또 입는다. 그러니 작업복은 더 말한 게 없다.
가끔 시가나 천정 쪽에서 새 옷을 샀는데 한번 입어보니 작거나 헐렁해서 작업 복은 될 거라며 주곤 한다.
하지만 삼십 년 다 되어가는 결혼생활 동안 그렇게 어물쩍 남이 준 것을 작업복으로 둔갑시킨 적이 한 번도 없다. 단돈 천 원을 줘도 직접 사야만 자기 옷인 것이다.
'티끌모아 태산'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사니 지출에 있어서는 더 꼼꼼하다. 그러니 옷뿐 아니라 다른 어떤 물건이 멀쩡한지 온 집을 다 뒤져서라도 찾아봐야 할 지경이다.
아끼는 것은 시간도 마찬가지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젖소 착유 작업과 육우 소를 돌본 다. 늦은 아침을 먹은 뒤 설거지하는 동안에도 책상에 앉아서 붓글씨를 쓴다. 세상 돌아가는 뉴스는 밥 먹는 시간이면 충분하다.
단 몇십 분 동안 붓글씨 쓰기로 휴식이 끝나면 그날 일이 있던 없던 작업복 차림으로 집을 나선다. 논밭을 살피거나 소를 돌보거나 아님 부모님 안부라도 알기 위해 시어른 댁으로 내려간다.
어쩌다 짬이 나면 부처님 교리나 스님 강의를 즐겨 듣곤 하는데 그쯤에서 다음 절 나들이할 곳을 미리 정한다. 매주 가족을 데리고 절을 찾은지도 2년이 넘었다. 그 이전의 몇 년간은 온천과 절을 겸해서 한 번에 두 곳을 갔었다. 또 그 이전의 몇 년간은 집에서 차로 두 시간 이내 거리에 있는 여러 산을 찾아 등산을 했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가까운 온천과 절에도 갔었다. 그렇게 부모님을 모시고 가족 나들이를 한 지도 강산이 변하고도 한참이나 되었다.
그러고 보니 멀쩡한 것은 물건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효심이었다. 그 효심으로 인해 부모님과 형제를 돌보았고 자투리 남은 곳에다 아이들과 아내인 나를 끼워 넣었다. 하지만 아내인 나를 자신과 동격으로 놓고 보니 전혀 자신과 같지 않다고 배척한 지가 꽤 오래되었다. 그러다가 다행히 가족으로 받아들였음을 느낀 것도 거의 최근이라 그 때문에 내가 오래 아팠지만 말이다.
낡아도 쉬 버리지도 못하는 것은 아내인 나조차 그러할지도 모르겠다. 남편이나 나나 서로 꼼꼼 살펴주지 않고 대충 지나가는 것이 서운할 때도 많았겠지만 병들어 골골 아무것도 못하고 살아도 책임질 것 같다.
물론 멀쩡한 바지는 아마 앞으로도 눈에 잘 띄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면 어떠랴? 비록 누추한 차림이지만 마음이 곧고 가족들을 챙기며 성실 하나로 자신을 채워가고 있으니 그 어떤 것보다 삶 만은 알차고 멀쩡하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