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의 종말 26화

Y의 종말

7일간의 환희

by 이시절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제품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밝힙니다. 특정 인물, 단체, 국가에 대한 표현은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이 포함되어 있으며, 받아들이기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Y의 종말

이 넓은 세상의, 지구라는 행성의, 인간이라는 종에게 마지막 일주일이 주어졌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았다고 하면 이상해 보이려나. Y는 이상해 보일 거라는 것 정도는 상관없었다. 어쨌든 Y에게 인류 종말 소식은 반가웠으니까.

인간에게 정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아주 어려서 뭣도 모를 때가 아닌 이상 인간이라는 종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인간이 하는 좋은 일들이 있다는 건 분명 알았지만, Y의 시선은 인간들이 하는 안 좋은 일들 쪽으로 향했다. 어느 순간부터 인간이라는 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유독 동물을 좋아했다. 식당 뒤편에 묶여있는 커다란 개나 이를 드러내고 하악 거리는 길고양이들에게 서슴없이 다가갔다. 물리면 아마 응급실에 실려가야 할 커다란 개들에게도 겁 없이 다가가 만져주었다. 단 한 번도 무서웠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사회성이 좋은 건 아니었다. 주변에 친구들은 늘 있었지만 그게 다였다. 처음 보는 사람과 낯을 많이 가렸고 처음 보는 사람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더 크고 나서는 인간을 완전히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Y가 인간이라는 건 어쩔 수 없고, 인간이기에 인간으로서 나름대로 살아가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인간이라는 종이 싫었다. 인간들이 하는 짓들과 인간이 가진 본성 등을 증오하게 되었다. 바로잡을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싫어한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고 그냥 살았을 뿐이었다.

인간을 싫어하는 이유를 손에 꼽으라면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중 몇 개만 고르자면, 환경을 망친 것, 동물을 하대하는 것, 한심한 것 때문이었다.

첫 번째로 환경을 망친 것. 대부분이 아는 사실이었다. 인간 때문에, 굳이 인간 때문은 아니더라도 인간이 발명한 것들 때문에 지구 환경이 망가지고 있었고, 망가졌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 때문이 아니더라도 환경이 무너졌을 거라고 말하지만, 인간 때문에 더 빨리 환경이 무너진 건 맞았다.

인간이 없었더라면, 인간이 이렇게 많은 것을 발명하지 않았다면 환경은 조금이라도 덜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Y는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덜 무너졌다면 더 많은 생명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지금처럼 누군가는 매일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두 번째, 동물들을 하대하는 것. 인간이 동물보다 더 많이 발전했고, 더 영리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동물을 하대하는 건 옳지 않았다. 똑똑한 인간이 멍청한 인간을 하대하는 건 옳지 않듯.

인간에게는 인권이 존재하고, 동물에게는 자유권이 존재한다. 굶주림과 갈등으로부터의 자유,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 고통과 질병 그리고 부상으로부터의 자유, 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자유, 공포와 스트레스부터의 자유.

하지만 애초에 동물의 자유권에 대해 아는 사람이 적다. 동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알기는 하고, 신경 쓰기는 하나? 인권은 학교에서 배운다. 매년 꾸준히 계속 배운다. 서로를 존중하라고, 스스로를 존중하라고. 그런데 왜 동물들은 존중받지 못하지?

인간이 오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들이 뛰어나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았고, 영리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보다 못한 동물을 하대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게 문제였다. Y는 그런 인간들의 행동을,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세 번째, 한심했다. 한심하다는 표현이 조금 애매할 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Y가 보기에는 한심했다. 과하게 까다로웠고, 아름다움에 집착했고,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으며, 늘 이기고 싶어 했다. 그런 점이 한심했다. Y 스스로도 그랬지만.

또 다른 점으로는 다른 포유류에 비해 엄청나게 오래 자란다는 것이었다. 보통 대부분의 포유류는 길면 1년, 짧으면 3년 동안 성장한다. 짧으면 몇 개월 안에 끝날 때도 있고. 잡아먹히는 동물의 경우 태어나자마자 걷는 경우도 있다. 잡아먹는 동물의 경우 오래 성장하고. 어쨌든 대표적은 포유류 동물인 고양이나 개는 생후 3주 차 즈음부터 걷기 시작하고, 1년 이내로 독립한다.

그와 반대로, 인간은 태어나고 걷기까지 10개월 정도 걸린다. 다른 동물이라면 이미 독립했을 시간이다. 독립하는 데 최소 20년이 걸리는 건 말할 것도 없다.

Y가 인간을 싫어하게 된 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인간을 싫어하는 생각은 버릴 수 없었다. 굳이 버리려는 노력을 하지도 않았고, 버려지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런 Y에게 인류의 종말이라니,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이때까지 쳐놓은 사고를 방치하고 간다니 마음이 불편하긴 했지만 어차피 해결도 못할 일이었을 테니까. 아주 오래 걸릴 테지만, 인류가 없다면 지구는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다.

몇 백 년, 몇 천 년, 몇 만년, 몇 억년. 혹은 그보다 더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구는 원래의 푸른 모습을 되찾겠지. 어쩌면 멸종했던 종이 다시 생길지도 모르고, 완전히 새로운 종들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Y는 죽으면 새로운 지구의 새로운 생명으로 환생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온순하고 얌전한 초식동물 같은 걸로.

7일.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무언가 하기에는 짧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는 짧았다. 어쩌면 딱 적당한 시간이었다. 종말 전 마음 정리를 할 시간으로. 인간을 싫어하는 Y로써는 반가운 일이었기 때문에 딱히 마음 정리할 만한 게 없었지만.

창밖을 바라보니 예쁜 하늘이 보였다. 인간들이 지구를 많이 망쳤지만 아직 지구는 예뻤다. 수많은 예쁜 풍경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중 일부는 사라졌지만 그중 일부는 아직 남아있었다. 아마 예쁜 자연환경들이 다 사라져도, 하늘만은 더 오래 예쁘게 남아있을 것 같았다. 인간이 조금 더 살았다면 아마 세계 각지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사라졌을 것이고, 반려동물을 제외한 동물은 멸종했겠지. 그래도 하늘은 조금이라도 더 오래 푸른색을 유지하며 예쁠 것 같았다.

오늘도 그랬다. 창밖으로는 인간들이 지어둔 회색의 건물들이 빼곡했지만 하늘은 꿋꿋하게 푸른색으로 빛났다. 죽으면 저곳으로 가게 될까? 그렇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분명 저곳에서 보는 하늘은 이곳에서 보는 하늘보다 아름답겠지.

인간들은 후회할까? 마지막이니까, 이때까지의 날들을 곱씹어 볼까? 아니, Y가 아는 인간들이라면 마지막 날까지 자기 스스로의 행복만을 좇을 것 같았다. 이기적이게.

인간들이 자신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어디선가 죽어갈 것이고, 어느 곳은 무너지고 있을 것이고, 심지어 어느 곳은 종말 소식조차 모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인간은 그들을 생각하지 않겠지. 지금 당장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기 바쁘니까.

Y를 제외하고 한 사람만이라도 그들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까? 종말이 온다는 소식에 자기 스스로 말고 다른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Y는 자신을 제외하고 딱 한 명이라도 더 있기를 빌었다. Y는 오랫동안 그들을 생각했다.

통쾌하다고 생각하는 게 맞는 걸까? 하지만 어쩌겠어, 아주 많이 통쾌한걸. 종말의 순간 꼴좋다고 말하며 웃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전에 Y 또한 사라지겠지만. Y는 이 종말이 이때까지 인간이 저지른 모든 일들에 대한 대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Y는 창문을 열고 방충망도 연 뒤 난간을 잡고 기대섰다. 아마 안전하지 않을 난간이 조금 흔들거렸다. 창밖에서 차가운 공기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Y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창밖 도로에 몇몇 차들과 사람이 보였다. 그 와중에 개를 산책시키고 있는 사람도 보였다.

Y는 아파트와 고층건물들이 가득한 창밖을 바라보며, 미래의 지구를 상상했다. 언젠가 이 건물들이 사라지는 날이 올까? 밤에 별이 다시 화려하게 빛나는 날이 올까? 숲이 아니더라도 공기가 깨끗하고, 바다에 쌓인 쓰레기가 사라지는 날이 올까? 아마 아주 먼 미래일 것이다. 인간이 살아온 만큼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 그래도 Y는 미래의 지구를 상상하며 반드시 아름다울 거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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