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제품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밝힙니다. 특정 인물, 단체, 국가에 대한 표현은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이 포함되어 있으며, 받아들이기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W의 종말
이 넓은 세상의, 지구라는 행성의, 인간이라는 종에게 마지막 일주일이 주어졌다.
그 소식을 들은 건 컴백하기 10일 전이었다. 녹음과 뮤비 촬영은 다 끝내고, 컴백 후 무대를 위해 안무를 외우고 있던 시기. 컴백 직전이라 노래와 춤 연습이 많긴 했지만 필요한 촬영은 다 끝나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한가했다.
W는 그 소식을 들을 때도 연습실로 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으려 하고 있었다. 적당한 오후였고 날씨가 좋았다. 겨울이라 해가 일찍 졌지만, 아직 밝았다. W는 멍하니 거울을 보고 있었다. 메이크업하지 않은 모습은 별로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처럼, 방송에서처럼 예쁘게 빛나지 않았다.
거울을 보며 앞머리를 툭툭 건드려보던 중 폰이 울렸다. 굳이 받고 싶지 않은 사람의 이름이 떠있었다. 마음 같아선 빨간 버튼을 눌러 전화를 끊어버리고 싶었다. 이 전화를 받아서 좋은 말을 들었던 기억이 희미했다. W는 한참을 화면을 바라보며 있다가 이내 전화를 받았다.
몇 분이 지나고 W는 전화가 끊기기를 기다렸다 폰을 내렸다. 역시나 이번에도 좋은 말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뭐라 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좋은 말은 아니었으니까. 짜증이 났다.
인류의 종말. 세상이 다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딱 인간만 없어지는, 이해할 수 없는 종말. 어째서 인간만, 어째서 지금. 한 달만, 아니 며칠만이라도 늦게 왔다면 좋았을 텐데. 컴백을 기다렸을 팬들이 있을 텐데.
이해할 수 없었다. 인류가 살아온 긴 시간 중 하필, 왜 W가 사는 지금 이때 종말이 닥치는 걸까. 저도 모르게 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세상은 원래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라던데 정말 이해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으면 어쩌라는 거지.
원래 그랬다. 무언가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무 어려워서, 혹은 아예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이해하는 걸 포기했다. 그냥 받아들이고 되는대로 하라는 대로 살기로. 그건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이었고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폰은 거울 앞에 놓아두고 거실로 나갔다. 혼자 살기엔 너무 큰 집이었다. 넓은 거실에 서울 도시가 보이는 큰 창, 별로 드나들지 않아 창고로 쓰이는 방들. 거실 식탁 뒤쪽 벽에는 W의 화보 사진이 붙어있었다. 큰 포스터도 있었고 잡지의 한 페이지도 있었다. 원해서 붙인 건 아니었다. 예전에 라이브에서 팬들이 붙여달라고 했던가. W는 가만히 사진을 바라보다가 중간에 있는 것부터 하나씩 천천히 떼기 시작했다. 저건 진짜 W의 모습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꾸며지고 가려진 W의 모습이었다.
하나둘씩 떼다 보니 어느새 벽이 휑해졌다. 안 그래도 단순한 가구 몇 개 놓여있어 휑하던 집인데 더 그래 보였다. 마치 전시용 집 같았다. 사람 사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짧기는 했다. 스케줄을 다니며 차에서 자고 먹는 생활이 잦았고 투어를 돌 때에는 아예 집에 없었다. 집에서는 옷만 갈아입거나 딱 필요한 일만 해결했다. 그러다 보니 굳이 불필요한 가구를 들이지 않게 되었고 집이 휑한 건 어쩌면 당연했다.
멍하니 사진을 뗄 땐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게 되자 종말에 대한 생각이 다시 W를 덮쳤다. 억울했다. 열심히 살아서 얻은 거라고는 돈이랑 인기밖에 없는데, 지금 이대로 죽으라고? 조금만 더하면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몇 년만 더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확신 없는 추측일 뿐이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니까. 딱 1년, 아니, 몇 개월 만이라도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좋았을 텐데.
W가 성공하기 시작한 건 얼마 지나지 않았다. 온갖 더러운 것들을 밟고 견뎌내서 올라온 자리였다. 연예계에 발 들여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법한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포기하고 싶었고, 진지하게 놓을까 고민했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이때까지 해온 게 아까워서.
억울하다. 어쩌면 억울함보다는 다른 더 가까운 표현이 있을 것 같은데, 깊이 고민하기도 귀찮았고 고민한다 해도 떠오르지 않을 것 같았다. 억울함 그리고... 조금의 통쾌함?
W는 한참 가만히 앉아있었다. 시선은 화보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생각은 전혀 다른 데에 가있었다. 나쁜 마약 같은 생각들. 정신을 차렸을 땐 머리가 아파서 눈이 질끈 감아졌다. 짜증이 났다. 딱히 무언가 콕 짚어 말하지 않아도 지금 모든 게 짜증이 났다. 화보 속 스스로의 모습과 거울 속 스스로의 모습이 달라서 짜증이 났고, 창밖 하늘이 빌어먹게 예뻐서 짜증이 났고, 집이 사람 사는 집 같지가 않아서 짜증이 났고, 무음으로 해놔도 끊임없이 알림이 오는 게 짜증이 났고, 할 말 끝난 것 같더니 또 전화가 오는 게 싫었다.
순간적으로 폰을 집어던졌다.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폰이 창틀에 부딪히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리고 아주 초라하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납작하고 매끈한 폰이 바닥에 떨어져 아주 초라하게 보였다. 아무리 화려한 폰 케이스를 하고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처참하게 깨졌겠지. 화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깨졌을 것이다, 아니 깨지면 좋겠다. 그래도 좋으니 그 핑계를 삼아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다.
W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일어나자 순간적으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사소한 두통에도 짜증이 났다. 너무 예민해졌다.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부쩍 예민해졌다. 성공한 뒤로 그랬다. 사소한 거에 쉽게 감정이 변했다. 그런 자기 모습에 또 스트레스를 받았고 스트레스를 받을수록 예민해졌다.
W는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평범한 차림이었다. 수수하고, 밋밋한. 머리는 대충 털고 거울을 잠깐 보았다. W는 잠깐 고민하다가 모자를 눌러썼다. 굳이 마스크까지 쓰지는 않았다. 모자를 쓴 건 그냥 머리 상태 때문이라고 자기합리화를 하며 방을 나갔다.
현관에 있는 가방을 들었다. 간단히 며칠 갈아입을 옷과 세면도구 등이 든 말 그래도 생필품만 있는 보스턴백이었다. 주로 해외 투어를 다닐 때 썼다. 너무 큰 가방은 이동 중에 불편했고 어차피 필요하면 사면 그만이었고 가서 하는 거라곤 무대밖에 없으니 상관없었다. 투어를 다녀오고 귀찮아서 짐을 아직 풀지 않았으니 필요한 건 다 있을 것이었다. 지금 짐까지 더 챙길 여유는 없었다.
W는 그대로 현관 밖으로 나가려다 잠깐 멈칫했다. 이내 다시 신발을 벗고 들어와 던졌던 폰을 집어 들었다. 액정 끝이 깨져있었지만 특별히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래도 나름 다행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스마트폰 없이 되는 일은 없고, 지금 폰을 수리할 시간 따위 없었으니까.
다시 현관 밖으로 나섰다. 밖이 고요했다. 유독 차가 많이 다니기는 했지만 소란스럽지는 않았다. 택시를 탔다. 주로 매니저 차를 타고 다니는 W에게는 조금 낯설었다. 택시 특유의 향과, 어색한 차 시트. 사교성이 그다지 좋지 않은 W의 성격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공항까지 가는 내내 차 안은 조용했다.
굳이 공항으로 가는 확실한 목적이 있는 건 아니었다. 일단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사람들이 아무도 W를 못 알아볼 곳으로, 찾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고 싶었다. 조용하고, 평화롭고, 무엇보다 아름다운 곳. 언제부터인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은 유독 아름다움에 집착했다. 사람들의 이상형 기준은 대부분 외모인데 (티 내지 않더라도 웬만해서 얼굴이 예쁘면 호감도가 올라가기 마련이다) 동물들이 그렇지는 않을 테니까. 동물들이 서로의 외모를 보고 호감을 느끼는 건 상상이 안 되었다
아무도 몰랐으면 했다. 아무도 W를 신경 쓰지 않았으면 했다. 아니, 애초에 사람이 없는 곳이 좋을 것 같았다. 자연 그대로, 인간의 발이 닿지 않은 곳을 원했다. 지구상에 그런 곳이 있지도 않을 테지만. 아주 깊은 심해 한가운데가 아니라면.
공항에 도착해서 가장 빠른 항공편을 찾았다. 지금 당장 타고 갈 수 있는 곳을 원했다.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였다. 가장 빨리 확실하게 한국을 뜰 수 있는 곳. 비록 장시간 비행에 경유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비행기를 타고 나서는 순조로웠다. 한 승무원의 이름을 어디서 많이 들어보았던 것 같아 고민했고, 창밖 풍경을 처음으로 제대로 보았고 생각보다 예뻤고, 다행히 이어폰 배터리가 많아서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음악을 듣다가 문득 생각했다. 어쩌다가 나 같은 사람이 그 자리까지 올랐지.
W는 평범했다. 어릴 때 가끔 잘생겼다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 그 정도는 일반인들도 다들 들어보는 정도였고 춤이나 노래에 재능은 없었다. 어느 날 우연히 중소기업 캐스팅 담당자의 눈에 띄었을 뿐이었고, 연습생 생활을 하다 보니 춤이나 노래는 어느 정도 하게 되었을 뿐이었다.
노력을 하기는 했다. 연습생일 때부터 무명일 때부터 스타일 때까지 노력을 하긴 했다. 언제나 더 높은 자리가 있다고 믿었으니까. 늘 노력하면 올라와졌기 때문에 이번에도 노력하면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찔한 높이까지 올라왔다. 발을 잠깐이라도 헛디디면 바로 떨어질 위치였다. 두려웠다. W에게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높은 자리였고 위험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자리였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왔을까. 고작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그러다가 문득 그런 말을 들었다. 조금 더 올라가면 좋을 거라고. 덜 위험하고 더 편안한 곳이 있다고. 그래서 더 올라가려고 했다. 달라진 건 더 이상 노력으로 올라가지지 않았다는 것. 포기하고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 지금의 자리에 적응해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종말이 덮친 게, 지금이고.
사람들은 다들 말했다. 얼굴에 그늘 하나 없고 밝다고. 곱게 자란 티가 나고 사람 자체가 화사하고 어쩌고... 그런 말을 들으면 불쾌했지만 한편으로 만족스러웠다. 그 사람들이 보는 W가, W가 만들어둔 완벽한 W였기 때문에.
온갖 잡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아이슬란드에 도착해있었다. 한국보다 조금 차가운 공기가 코 끝을 스쳤다.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뒷머리가 살랑이는 게 느껴졌다. 차소리가 들렸고 사람들 떠드는 소리, 캐리어 끄는 소리가 들렸다.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게 시끄러웠다. 더 깊은 곳으로 가야 하나, W는 희미하게 중얼거렸다.
근처 호텔을 찾았다. 밤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피곤했기에 확실하게 쉴만한 곳이 필요했다.
며칠 동안은 특별히 무언가 하지 않고 지냈다. 쌓여있던 피로에 움직일 체력이 없기도 했고, 아무도 없는 호텔에서 해방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미련하게 쉬기만 하는 것, 그건 늘 무언가를 해야 했던 W에게 완벽한 해방감이었다.
첫 번째 날은 저녁 늦게 비행기에서 내렸기 때문에 호텔에 도착하자 새벽이었다. 몇 시간 뒤면 종말이 6일 남게 되겠지.
둘째 날은 어둡고 비가 왔다. 아주 어두침침해 보여서 W가 알던 푸른빛의 아이슬란드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그날은 단 한순간도 호텔 룸에서 나가지 않았다.
셋째 날에는 너무 늦잠을 자서 무언가 하기에는 늦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기에는 몸이 더 피곤해질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넓은 호텔을 구경하며 걸어 다녔다. 하도 넓어서 한 바퀴를 도는데 2시간이 훌쩍 넘게 걸렸다.
넷째 날은 추웠다. 날씨는 좋았지만 공기 자체가 차가웠다. 그런 핑계로 호텔에만 있었다.
다섯째 날은 날씨가 놀라우리만치 좋았다. 해가 일찍 졌고 소문으로는 오로라가 보였다고 했다. 어두운 남색 하늘에 얇은 보라색 천과 푸른색 천이 흘러내리는 듯한 모양이었다고 한다.
여섯째 날에는 아이슬란드까지 왔는데 뭐라도 봐야 한다는 생각에 호텔 밖으로 나섰다. 호텔 밖에는 원래 차가 많이 다녔을 도로가 길게 이어져있었다. 차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W는 무작정 걸었다. 날씨가 적당히 춥고 적당히 따듯해서 걷기 좋았다. 그래서 그냥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일단 걷다 보면 어딘가에 닿을 거라 생각했다. 호텔 주변으로는 바위가 많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W는 바다를 구경하며 아주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멈춰 섰다. 왠지 딱 하늘이 예쁘게 보여서. 바위에 적절하게 어우러진 바다와 예쁘게 펼쳐진 하늘이 예뻤다. 일부러 그런 걸까? 종말이니까 예쁜 거나 보라고. 종말 첫날부터 오늘까지 예쁘지 않았던 날이 없었다. 다른 날 예뻤으면 더 좋았을 텐데. 후회하는 게, 후회되는 게 너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돌을 좋아하고, 아이돌은 그런 사람들 그러니까 팬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게 빈말이든 진심이든, 수시 때때로. W는 그런 말을 쉽게 내뱉을 수가 없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를 사랑해 준다는 이유만으로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어차피 팬들이 아이돌을 사랑하는 감정이 '진짜 사랑'일 확률은 희박했다. 일방적인 건 당연하고 실제로 본 시간도 짧으며, 대화를 한 시간은 거의 없을 텐데. W는 연예계 활동을 오래 했지만 여전히 그런 일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누가 W를 불렀다. 목소리를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영락없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 사람의 목소리였으니까. 보고 싶지 않았었던 사람을 만났다. 제발 못 알아보았으면 했고, 제발 없었으면, 제발 해방될 수 있기를 바랐었다. 하지만 막상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의 얼굴을 보았을 때, W는 생각했다. 내가 원하던 건 그 사람들로부터의 해방이 아니었구나.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