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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o May 19. 2024

시를 위한 시 : 이문세 5집, 1988

별명 춘추 전국시대 : 우리는 모두 소녀였다.

여고생이 되고 나는 1학년 6반이었다.

돌아가면서 한명식 앞으로 나가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었는데,

그 시절 주변머리라곤 없던 내가 앞에 나가 어떤 소개를 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나와는 다르게 키도 훤칠하고 얼굴도 도시 애처럼 새하얗던 아이가 '오이'.

씩씩하게 앞으로 나선 그 친구가 했던 소갯말은 왜 아직도 기억에 선명할까.


- 저는 빌리조엘의 '어니스티'를 좋아하구요~

   아빠가 퇴근하면서 사 오는 식빵 뜯어먹는 좋아해요.


멋진 소개였다. 지금 생각해도.

취향과 개성이 있는, 그리고 그 집안의 풍경까지도 상상하게 만드는.


뭐야, 빌리조엘은 누구고, 어니스티는 뭐야.

내 발음은 honesty가 아니스티였다면, 그 친구는 분명히 어니스티로 발음했으니까.


그 친구 별명은 오이. 얼굴이 희고 길쭉해서 오이였다.

오이는 키 큰 마이콜과 가장 친했다.

희동이는 도우너와 친했고. 길동이는 나와 친했지.


그 시절 가장 핫했던 아이콘은, 아기공룡 둘리(1997)였는데

재미나게도 우리 반에는 만화영화 둘리의 캐릭터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그 시절 다른 이들도 모두 별명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반에서는 별명이 없으면 섭섭했다.

우린 모두 별명으로 불리고 부르는 사이였으니까.

그중에서도 주인공격인 둘리는 내가 맡았다.

순전히 외모 닮음꼴에서 기인한 별명이었으므로, 둘리라는 게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었지만,

나에게도 매칭된 별명이 있다는 건 분명히 좋은 일이었다.


'둘리'라는 별명을 가진 이가 전국에 몇천 명이었을 시절.

친구들과 지나다 건널목에서 누군가 "둘리야~" 하고 부르면

나 말고도 서넛 명이 "어?" 하고 대답하는 웃기는 시절이었다.


희동이 마이콜 오이, 도우너 길동이 둘리, 우리는 함께 어디든 몰려다녔다.

그때 우린 세상 근심 없이 행복했던 것 같다.

둘셋넷 모이면 깔깔 껄껄,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훗날 내가 컬러가 없는 무채색의 견디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을 때

시간을 되돌리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고등학교 1학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을 만큼.

즐거웠다. 아무 고민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친구들 사이에 있는 시간에는 어떤 고민도 잘 묻어둘 수 있었다.


그중 오이는 무엇이든 자신 있어 보이고 거리낄 것 없어 보이던 친구였다.

우리 반이 맡았던 청소구역은 음악실이었는데,

주로 청소를 하는 척하면서 시간을 때우면 그만이었던 기억이다.

오이는 긴 기럭지로 음악실 피아노에 척 걸터앉더니,

악보도 없이 그 시절 유행하던 노래를 하나하나 음을 찾아가며 치기 시작했다.

이문세, 시를 위한 시.

오... 멋있다.

오이에게 반하던 두 번째 순간이다.


어느덧 겨울이 오고 눈이 내렸다.

우린 모두 창가에 매달려 하늘로 다시 올라가는 눈송이들을 바라보며 꺄아아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는데,

함께 눈을 바라보던 오이가, 무심하게 내게 말했다.

마치 어떤 영화의 결정적 한 장면처럼.

- 선오,  너는 너무 속마음을 감추더라.  너무 힘들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우, 뭐야~~ 지가 무슨 순정만화 남주인 줄 아나 봐..

나 그때 얼마나 심쿵했는지 너는 모르지?

그리고 왠지 그 말이 고맙기도 했다.

뭔가 나를 알아봐 주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지.


그립다. 그 시절.

오이, 너는 여전히 멋있게 살고 있겠지?

너희도 가끔은 그 시절이 그리운지, 궁금해지네.





이문세 - 시를 위한 詩  (1988年) (youtube.com)


이문세 - 시를 위한 시 4:01


바람이 불어 꽃이 떨어져도

그대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내가 눈 감고 강물이 되면

그대의 꽃잎도 띄울게

나의 별들도 가을로 사라져

그대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내가 눈 감고 바람이 되면

그대의 별들도 띄울게

이 생명 이제 저물어요

언제까지 그대를 생각해요

노을 진 구름과 언덕으로

나를 데려가줘요

나의 별들도 가을로 사라져

그대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내가 눈 감고 바람이 되면

그대의 별들도 띄울게

이 생명 이제 저물어요

언제까지 그대를 생각해요

노을 진 구름과 언덕으로

나를 데려가줘요

나의 별들도 가을로 사라져

그대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내가 눈 감고 바람이 되면

그대의 별들도 띄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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